사랑이 어떻게 변하겠니. 사람이 변하는 거지.
거리에 캐럴송이 사라진 지 오래다. 저작권 때문이란다. 그래서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 않는 것이 모두 캐럴송이 사라져서 그렇다고들 한다. 정말 그럴까?
그래서 실험해보았다. 유튜브에서 캐럴송만 찾아 하루 종일 들어보았다. 그러면 크리스마스 기분이 돋을 거라고 생각했다. 퍽이나. 캐럴송을 듣는다고 어릴 적의 크리스마스 기분이 나지는 않더라.
누군가는 경기 탓을 한다. 그러나 경기가 좋아지든 나쁘든 크리스마스가 되면 특별한 음식을 먹으러 외식을 나간다거나 아니면 주문을 한다거나 혹은 요리를 해 먹는다. 이런 기분이란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라서 먹는 것으로만 따진다면 어릴 적에 비하면 더 좋아지면 좋아졌지 못하지는 않다. 그런데도 기분이 나지는 않더라. 그런고로 딱히 경기 탓으로 돌리기도 애매하다.
어느 순간부터 크리스마스는 그냥 쉬는 날 중의 하나가 되었을 뿐이고 조금은 특별한 선물과 조금은 특별한 음식을 먹는 날일 뿐 과거의 크리스마스의 영광은 사라져 버렸다.
이것은 마치 오래전 어머니가 해주신 김치찌개 맛을 커서는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며 이미 애정이 식어버린 연인에게 더 이상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도 마찬가지라 본다.
그러니 과거의 크리스마스 기분을 다시는 낼 수 없는 거다.
다만 이제 막 크리스마스를 인지할 나이의 꼬마는 뭔가 조금은 특별한 감정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나이를 좀 더 먹게 되면 지금의 어른들이 가지는 그 느낌을 그대로 느끼게 되겠지.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늘 그대로 있었지만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들만이 달라질 뿐인 게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겠니. 사람이 변하는 거지.
크리스마스 때면 아버지가 사 오시던 그 어릴 적의 야끼만두는 이 세상 그 어느 음식점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입맛이 변해버렸으니 그때의 똑같은 야끼만두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 맛을 다시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제휴사 실무자는 '답정너'를 주장한다. 본인이 이미 정답을 정해놓고 절대 물러서질 않는다. 나쁜 놈. 구구절절 이야기하며 그럴 수밖에 없음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였다고 생각했건만 남자인 그는 남자인 나의 목소리를 오래도록 들으면서 끄덕이더니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내 목소리가 좋았나 보다. 썩을 놈. 산타에게 간절히 빌어야겠다. 얘 좀 빨간 딸기코의 루돌프 대신 쓸 의향 없는지.
삭막해진 어른의 세계는 따스했던 그 어릴 적의 크리스마스 기분은 절대로 누릴 수 없게 그렇게 차갑고 모질게 받아들이는 매몰찬 어른으로 커 버렸다. 너도 변하고 나도 변하고 모두가 변했으니 그 어느 누구도 과거의 크리스마스의 영광은 다시 누릴 수 없으리라.
2019년의 크리스마스여 안녕. 잘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