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 문턱에서

너무 하는 거 아니냐

by 생각하는냥

봄이다.

계절에 따라 태양 각도가 달라지니 동물적 감각으로 보건대 햇볕은 온전한 봄을 가리키고 있다. 꽃이 피는 것으로 보아도 봄이다.


그런데 오로지 바람만이 여전히 겨울을 고집하고 싶은가 보다.


이 녀석 어찌나 완강하게 고집이 센지 너무 거세게 불어대 길가에 놓인 플라스틱 간이의자를 씨름하듯 자빠트려 버렸다. 편의점 의자라 내 알바 아니니 그냥 지나칠 만도 한데 아내는 길바닥에 쓰러진 술 취한 주정뱅이 모양새의 널브러진 의자를 일으켜 세우더니 넘어지지 않도록 돌멩이 옆에 데려다 놓았다.


나한테도 안 하는 친절을 굳이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괜히 서럽다.

'너무 하는 거 아니냐?'


거센 바람을 뚫고 간 식당엔 손님이 한 테이블뿐이었다. 저녁 술 손님들은 더러 있다던데 아무래도 가족 나들이는 다들 자제하는 모양이다. 저녁 술 손님은 죄다 어른일 텐데 아이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어른만 술 마시러 다닌다니 아이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원성이 높을 것 같다.

어른들아, '너무 하는 거 아니냐?'


집으로 오는 길에 바람이 하두 불어 모자를 눌러썼다. 신호등 건널 때만 해도 중간까지는 아내가 옆에 있었는데 다 건너고 보니 보이지가 않았다. 한 바퀴를 돌았는데도 보이지가 않았다. 영화라도 보듯 돌연 외계인에게 납치라도 당한 것일까? 놀란 나머지 모자를 벗고 사방을 돌아보니 길 건너 나무에 핀 꽃을 열심히 찍고 계시는 게 아닌가.

여보야, '너무 하는 거 아니냐?'


건너올 줄 알았더니 건너편 길을 쭉 걸어서는 다른 신호등의 녹색 신호를 타고 오히려 먼저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는 게 아닌가. 아, 버림받았다. 엉엉.


서러워서 신호등 앞에 서서 콩고물 꽈배기만 입에 물고 있는데 고개를 돌려보니 꽃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요거 찍고 들어가련다.


손에 들려 있던 꽈배기를 입에 문 채로 양손에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숨죽여 폰을 들이대고 있는데 사람들이 지나가다 흘깃흘깃 보는 게 느껴졌다. 그제야 어인 늙다리 동네 아저씨가 꽈배기 입에 물고 꽃 사진 하나 찍겠다고 괴이한 폼으로 서 있었으니 동네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싶었다.

젠장. '너무 하는 거 아니냐?'

나도 사진 좀 찍어보자.


사람들 신경 참 많이 쓰였는가 보다. 원했던 사진은 이런 모양이 아니었는데 사진마저 나를 버렸다.

폰아, '너무 하는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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