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이렇게나 슬펐나.

by 생각하는냥

나는 태어나자마자 하늘을 날고 있었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하늘을 날기보다는 떨어지고 있다는 게 맞다.


난 추락하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추락이라니 신도 너무하시지.


하지만 금세 적응이 되었는지 이 추락의 속도를 즐기기 시작했다. 세상의 눈을 뜨자마자 날개 없이 추락하는 이 짜릿함 이라니.


바람에 날리며 나보다 자그마한 녀석들을 내 몸에 흡수하며 방울을 키워갔다. 그리고 아래로 아래로 끝도 없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낙하지점이 포착되었다. 개천으로 떨어질지 나무 위로 떨어질지 달리는 자동차 위에 떨어질지 아니면 사람에게로 떨어질지는 운에 맡겨야 했다.


거리가 이내 가까워지자 어디로 떨어질지 감이 잡혔다. '저 녀석이다.'라고 감지한 순간 그의 손등에 살포시 떨어졌다.


툭.



빗방울 하나가 손등에 떨어졌다.


"어? 비다."


일기예보에는 오후부터 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급변하는 예보를 미처 보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히 가방 안에 우산을 준비했던 터라 우산을 꺼내 들어 펼쳤다. 우산을 쓰고 나서야 후드득 거리는 소리에 제법 많은 비가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손등에 떨어진 빗방울이 아니었으면 넋이 나가 있어 비가 오는지도 모른 채 제법 비를 맞을 뻔했다.


손등의 산산이 부서진 빗방울을 바라보며 넋 나간 세계에서 현실로 공간 이동을 한다. 마치 가위눌린 악몽에서 깨어나는 듯한 주술적 매개체가 되어준 고마운 빗방울이다.


하지만 빗방울은 금세 말라 버렸다.


시공간의 텔레포트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제발 부탁이니 그렇게 해줄 순 없을까 하는 희망을 가질 때가 있다. 더러는 한 달 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신비의 힘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도 해 본다. 아마 그때쯤이면 이 지긋지긋한 비로부터 해방이 되어 있을 것 같고 가슴 아린 통증에서도 벗어나 있지 않을까도 싶다.


오전에는 그치는가 싶더니 점심에 나오니 온통 세상이 또다시 비다. 장마는 아니지만 태풍으로 인한 비다. 태풍이 모든 걸 휩쓸고 갈 때 이 몹쓸 몸뚱이도 데리고 갔으면 좋겠구먼 이 몹쓸 몸뚱이는 태풍이 데려갈 정도의 몸무게는 불행히도 아니다.


습기에 전 비가 아니라서 충분히 즐겨도 좋을 빗방울인데 재미가 없다. 산해진미도 술 한잔도 누구랑 마시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빗방울을 즐기는 것도 혼자는 이제 재미가 없다. 사람처럼 난해한 동물이 또 있을까. 사람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동물이 또 있을까. 나도 나를 모르는데 내가 넌들 어찌 알리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날 사람이 한없이 고파진다.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고 다 아는 건데도 불구하고 문제의 대상이 내가 되고 나면 중이 제 머리는 깍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됨을 또다시 한탄하게 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이렇게나 슬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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