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은 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을은 갑을 필요로 한다.
아마도 태어나서 술집에서의 혼술은 처음인 것 같다. 집에서 혼자 병맥을 분 적은 있었지만 소주를 마신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 술집에서 처음으로 혼술을 하였다.
한 병에서 나오는 게 대략 7잔 반인데 다섯 잔까지 마시니 알딸딸하니 좋다. 기분이가 슬슬 올라간다. 나의 주량 3잔을 넘어서니 그야말로 붕붕 뜬다.
한 병을 다 마시면 좋았겠지만 일단 안주가 떨어졌고 그리고 집에 가야 할 것만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리니 어떤 놈이 자신의 노란 분비물 일부를 바닥에 지린 흔적이 보였다. 이런 개나리. 조준도 못하는 걸 봐선 대충 뭐하는 놈인지 알 것 같았다. 조준은 잘하고 살아야지.
집으로 향하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주인 말을 더럽게 안 듣고 있었다. 주인이 가자 가자 하는데 나무 밑에 뭐가 떨어져 있는지 코를 박고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인은 그저 애만 태울뿐 강아지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다 받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주인아, 너의 스트레스는 누가 받아주는 거냐?
그래서 한마디 거들어주었다.
"야, 너 거기서 뭐 주워 먹냐. 얼른 주인 따라가야지."
주인의 심정을 아는 척 거들어주었다. 이 말이 주인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큼 선한 일은 없으리라. 그의 마음을 알아줬으니 누군가 내 맘도 알아주었으면 좋으련만.
다시 집으로 향한다.
갑은 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갑에게는 을이 하나가 아니다. 더럽게 을이 많다. 그래서 꼭 얘가 아니어도 되는 것이다. 갑은 그렇게 진정한 갑이 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을은 갑을 필요로 한다. 꼭 얘가 아니어도 되는 게 아니라 꼭 얘여야만 하는 것이다. 을에게는 갑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을은 갑에게 늘 그렇게 굽신굽신 거리는 것이다.
회사에서의 관계도 그렇고 친구 관계로 그렇고 연애 관계로 그렇고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순간 당신은 을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한 번쯤은 갑이 되어보고 싶다.
아니다.
갑이 아니어도 좋으니 을의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다. 을 인생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겁나게 구리거든.
술이 참 달았다.
나머지 두 잔 반이 너무도 아쉽게 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