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하는냥 Dec 23. 2022

소소한 일상

소소하게 흘러간다

지구가 빠른 속도로 공전과 자전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우주로 튕겨 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천만다행인 일이다. 또한 나의 정신조차 살아있는 동안 제정신에서 튕겨나가지 않고 있음에도 감사 기도를 드려본다.


꿈. 한 손으로 상대를 가볍게 제압하고 땅을 딛더니 공중으로 붕 떠 하늘을 걸었다. 마치 와호장룡의 주윤발처럼 나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런데 그 타이밍에 갑자기 마취총에 맞고 기절하였다. 응? 웬 마취총? 그리고 잠에서 깨었다. 마취를 당하면 더 깊은 잠에 빠지는 게 맞는데 잠에서 깨우다니. 대체 누가 깨운 거야?


눈. 눈을 뜨고 보니 유난히 출근하기 싫었다. 이런저런 사유로 우겨서 재택을 하게 되었다. 추운 날 재택은 뭔가 꿀 빠는 벌 같다. 오후가 되자 업무적인 전화를 받았고 업무 관련 얘기가 다 끝나고 나서야 함박눈이 내렸다는 사실을 전해 듣게 되었다. 현관문을 열고 빼꼼히 얼굴을 내밀어보니 눈이 좀 쌓였다. 쌓인 눈을 보려고 했던 게 아니라 내리는 눈을 보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재택인 날에 이렇게 몰래 펑펑 내리다니. 자꾸 숨바꼭질할 거야?


꿈. 뜬금없이 레이저가 앞사람을 분리하더니 내게로 향하는 게 아닌가. 꼼짝없이 당하게 생겨서 두 눈을 감고 주먹을 불끈 쥐며  공포심에 온몸을 떨었다. '찌잉' 소리가 가까이 들려왔고 목 쪽으로 다가옴을 직감하였다. 드디어 목에 레이저가 닿았다. 응? 당연히 아플 줄 알았는데 레이저가 진동마사지기처럼 목을 마사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 간지러워 목과 어깨가 서로 맞닿으며 히죽히죽 웃고 말았다. 한참을 웃다가 잠에서 깨었다. 깨고 보니 어이없어서 천장을 보며 멍 때렸다.


지하철 빌런. 출근길이었다. 지하철에는 어김없이 빌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몇 날 며칠을 계속 짜증을 내보지만 빌런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은 당신 얼굴을 바라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버젓이 마스크를 턱까지 내리고 다니는군요. 당신의 코도 호흡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입만 가리고 다니는 당신의 코는 콧구멍 후빌 때만 쓰는 용도인가 봅니다.  대부분의 지하철 대기실도 실내입니다. 실내 마스크는 아직 해제되지 않았답니다. 

빌런을 피해 10미터쯤 이동하면 또 다른 빌런이 꼭 그곳에 서 있다. 꼭 누가 일부러 일정한 간격으로 빌런을 배치한 것만 같았다. 빌런이 없는 공간을 찾아내면 희한하게도 멀리 있던 빌런이 꼭 그 쪽으로 다가온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으니 그들과의 공존의 길을 선택하는 게 낫겠다.


전화번호. 통통하게 생긴 남자 사람이 걷다가 주머니에서 지폐를 떨어뜨렸다. 반사적으로 주워주려는데 앞서 걷던 여자분이 잽싸게 주워 통통하게 생긴 남자 사람에게 가져다주었다. 영화 속의 한 장면이었다면 번호라도 물었을 텐데 현실 속에서는 눈 마주치기 무섭게 쌩하고 가버린다. 그래도 눈이라도 마주치고 감사하는 마음이라도 주고받으며 한눈에 반해 번호라도 주고받았더라면 제삼자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였을 텐데 아쉽다. 


얼어 죽을 것 같이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얼어 죽지 않음을 감사한다. 

작가의 이전글 빌런의 법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