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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Jan 26. 2023

조개찜, 그리고 단백질

소실된 단백질을 치유한 건 조개찜이었다.

한 겨울에는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을 찾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포장마차 안에서 하얀 김을 모락모락 뿜어대는 어묵은 상당히 매혹적이다. 그런 와중에 지인이 조개찜을 먹자고 하니 어묵급 이상으로 가슴을 콩닥 거리게 하였다.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총알처럼 튀어나가 밀리는 퇴근 인파 사이를 간신히 뚫고 제시간에 도착을 하였다. 지인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자마자 시선은 이미 대형팬 안의 뽀샤시한 각종 조개들에게 향해 있었다.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오느라 땀이 났다. 점퍼를 벗은 후 셔츠를 팔목까지 걷어 올렸다. 수저 등의 테이블 세팅을 하는 동안 직원이 와서 가스불을 켰다. 그때였다. (내 글의 대부분은 '그때였다'라고 하는 순간 늘 뜻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이날도 어김없이 뜻하지 않은 일이 어김없이 일어났다.)


갑자기 눈앞에서 화염이 '번쩍'거렸다. 직원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는데 조개에 마음을 빼앗겨 딴생각을 못했던 난 잠시 멍해 있었다. 잘못 본 것인가? 매직인가? 뭐지? 몇 초 지나서야 가스불이 순간적으로 타올랐다는 것을 인지하였다.


그제야 손등과 옷을 훑어보았지만 딱히 상한 곳은 없어 보였다. 불을 켰던 직원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피해 있었고 다른 직원이 와서 정리를 해주었다. 이상하다 싶어 다시 세심히 둘러보았다. '어라?'

방금 전의 화염이 손등에서 팔꿈치까지 길게 뻗어 있는 수풀을  훑고 지나간 모양이었다. 털이 1~2mm씩 살짝 태워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으니 단백질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문득 중학생 때 급우들끼리 장난친다고 라이터로 턱에 나 있던 털을 기습적으로 태우곤 했었는데 (TMI. 난 피해자였다.) 그때의 트라우마가 떠올랐다. '이런 젠장.'


피해는 극히 미미하기는 하였으나 하필이면.

물티슈로 열심히 닦고 또 닦았지만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피해 아닌 피해를 받았기에 직원에게 팔에서 단백질 타는 냄새가 난다고 말하니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간다. 사이다 한병이라도 줄줄 알고 떼를 써보려고 했는데 얼굴을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어요'라는 직원 마인드의 표정이었다. 사이다여 굿바이.


대신 잘 구워진 팔뚝을 지인에게 내밀며 물었다. '고기 한입 하실래요?'


어느새 팔팔 끓어 오른 조개찜의 향미에 빠져 소실된 단백질의 기억은 금세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소실된 단백질을 치료한 건 조개찜이었다. 더불어 알코올에 취한 겨울밤은 달달하게 달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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