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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Feb 07. 2023

건강검진 후기

운동과 금주가 필요하다고?

우리나라는 만 20세 이상의 성인에게 무료로 2년마다 건강검진을 실시한다. 출생 연도 기준으로 홀수 년에는 홀수년도 출생자가, 짝수 년에는 짝수 연도 출생자가 받게 되어 있지만 여기에 직장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순서가 섞이곤 한다.


기억으론 21년도에 위내시경을 했던 걸로 아는데 22년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건강검진을 해야 한다는 톡이 날아왔다. 하지 않으면 회사에 불이익이 간다나? 귀찮기는 하지만 한번 더 한다고 손해 볼 건 없었다. 남아도는 연차도 쓸 겸 더불어 꿀 같은 휴가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계획은 늘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 어쩌다 보니 22년 마지막 토요일까지 몰리게 되었다.


22년도 마지막 건강검진 가능일이다 보니 병원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릴 줄 알았다. 그럴 줄 알면서도 느긋하게 열 시 넘어 병원에 가는 건 게으름일까 아니면 배짱일까. 그런데 이게 웬 걸. 의외로 대기자가 없었다. 내시경만 예약이 줄을 섰을 뿐 일반 건강검진은 한마디로 껌이었다.


건강검진을 하러 왔다고 등록을 한 뒤 이름이 불려지면 불려지는 대로 가서 하라는 대로 하니 채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검사가 끝났다. 수차례의 건강검진에도 불구하고 피를 뽑을 땐 괜히 긴장된다. 뾰족한 바늘이 몸 안으로 들어올 때 한번 긴장되고 멀쩡한 피가 주사기 안으로 빨려 들어갈 때 또 긴장된다. 검사를 위해 어쩔 수 없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피 빨리는 건 거부감을 일으킨다.


일련의 모든 검사가 끝나고 나면 마지막으로 의사와의 짧은 면담 시간을 가지게 된다. 분명히 어디 아프냐고 물어볼 테니 여기저기 아픈 데를 손가락으로 세어가며 어디 어디 아픈데 이야기하겠노라고 암기를 하였다. 이윽고 진료실로 불려 들어가니 비슷한 나이대의 의사 선생님이 친절한 눈빛으로 맞이해 주었다.


'어디 아픈 곳은 없으세요?'라는 질문에 방금 전 외웠던 곳을 손가락으로 셈하며 나열을 하려는데 첫 번째 말한 부위의 임팩트가 별로였는지 시큰둥한 표정이 보였다. 그러더니 뭔가 귀찮다는 식으로 '됐어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외웠던 손가락 순서와는 상관없이 좀 더 쎄 보이는 증상을 얘기했는데 그런 증상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만 나가도 된다는 사인을 주었다.


그제야 건강검진에서의 의사 면담시간에 진지한 상담을 받았던 기억이 없었다는 기억이 떠 올랐다. 아 맞다. 오버했네. 한 편으론 심각하지 않으니까 그랬겠지 싶어 아쉬움과 후련함이 범벅이 된 기분으로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며칠 후 받은 건강검진 통지서를 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운동과 금주가 필요하다'라고 한다. 대체 몇 회의 운동과 얼마 큼의 음주를 해야 저 잔소리를 피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말 듣기 싫어서 운동 횟수는 늘려서 쓰고 음주 횟수는 줄여서 썼건만 충분하지 못했나 보다. 혹시 얘네들 그냥 상습적으로 하는 말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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