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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Mar 20. 2023

조문

택시 타고 조문 다녀오는 길

전주 고향집에서 장례식장에 가려던 참이었다.


큰 도로에 나가면 택시가 순조롭게 잡힐 줄 알았는데 택시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카카오택시를 켜고서도 약 10분쯤 지나서야 겨우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어렵게 탄 택시라 기사 아저씨에게 택시가 너무 안 오더라며 푸념을 하였다. 그러자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 전주 택시의 문제점을 토로하기 시작하였다. 열어서는 안 될 지옥의 문을 건드려 버린 건가? 20분 내내 쉬지 않는 아저씨 입은 상류로 올라가는 연어 떼와 같이 쉼 없이 솟구쳤다.


- 전주 택시가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하다 보니 주말이면 택시들이 너무 바빠진다. 더군다나 관광객뿐만 아니라 전주 사람들도 택시를 많이 이용한다. 네 사람이서 타는데 기본요금 3,300원 밖에 안 낸다는 불평은 보너스다. (그런데 말이다. 서울은 기본요금도 비싸고 시간 할증까지 붙어서 택시이용률이 줄었다. 기본요금이 낮아서 많이 이용하나 기본요금이 올라 적게 이용하나 도긴개긴 같긴 한데, 그러나 요금에 적응하면 다시 이용자는 많아질 것이다. 담뱃값이 올라도 흡연자는 그대로인 것처럼.)


-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으니 장례식장처럼 도시의 한적한 곳은 잘 안 간다는 것이다. 근처에도 택시가 없을뿐더러 누가 여기까지 데리러 오겠냐며 장례식장 가는 동안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며 겁을 주었다.


- 택시가 안 잡힐 것을 대비해 30분은 더 일찍 택시를 불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걸어서 나오든지 조문객들 편에 태워 달라고 해야 한다며 계속 겁을 준다.


- 그 외에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여러 가지를 얘기했는데 나머지는 집중력이 떨어져서 무슨 이야길 했는지 모르겠다.


듣다 보니 슬슬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여 이야기를 듣는 척하면서 '조문예절'에 관한 영상 자료를 찾아보았다.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조문 갈 일이 없어 오랜만의 조문인지라 혹여 실수라도 할까 봐. 조문이라는 자리가 그렇다. 아무래도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보니 괜히 예절이 아닌 행동을 해서 상주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순 없지 않은가.


1. 상주, 상제와 가볍게 목례 후

2. 헌화

3. 분향

4. 묵념 혹은 2번 절하기

5. 상주와 맞절


과정을 되새김질하는 동안에도 아저씨의 수다는 멈추질 않았고 '네'라는 추임새는 그때그때 적절하게 넣어주는 걸 잊지 않았다. 이쯤 되면 택시비를 내가 받아줘야 하는 게 아닐까? 장례식장에 도착해서야 겨우 기사 아저씨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같이 조문하기로 한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걸어서도 볼 수 있는 거리에 사는 친구인데 그런 친구를 고향 장례식장에서나 보게 된다. 각자의 삶을 살다 보면 나이가 들수록 친구 만나는 일이 더 쉽지 않다.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


장례식장에 들어가 상주, 상제가 가볍게 목례를 한 후 헌화를 하려고 하는데 '응?', 갑자기 친구가 넙죽 엎드리는 게 아닌가? 그 바람에 헌화는커녕 본향도 못하고 5G와 같은 속도로 덩달아 넙죽 엎드렸다. 이왕 망가지게 된 거 혼자 망가지는 건 아니니 든든(?) 하기도 하고 예법에 어긋나긴 했을 망정 일단 조문이 끝나고 나니 큰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상을 당한 친구와 합류해 오랜만에 서로의 이야기를 가볍게 나눈 후 택시 기사 아저씨의 협박을 상기하며 카카오택시 앱을 일찍 실행시켰다. 그런데 실행시키자마자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택시가 잡히는 게 아닌가. 이렇게나 빨리? 좀 더 머물러도 되었는데 어쩔 수 없이 강제로 귀가 조치 되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이전 택시 기사 분이 한 말을 정리해서 이야기하니 이번 기사 아저씨는 별말 없이 '피식'하고 웃을 뿐이었다. '역시 고수는 장비 탓을 하지 않는구나'. 그런데 이 아저씨는 질문을 해도 단답형이거나 아예 말을 안 하는 게 아닌가. 고수보다는 성향의 문제라는 결론을 맺으며 고향 방문기는 여기서 접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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