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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Apr 05. 2023

꿈 보고서

23년 3월 어느 날

꿈나라 보고서다.


동남아의 어느 나라를 아내와 함께 여행 중이었다.


어떤 전시회를 보다가 밖에 나와 벤치에 앉아 태블릿을 보다 보니 많은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놀랍게도 호랑이 등 야생 동물들이 주변을 어슬렁 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와중에도 등을 보이면 안 될 거 같아 호랑이와 눈빛 교환을 하였다. 이 녀석이 움직이는 순간 제삿날이 되는 순간이었다. 일단 피해야겠다 싶어 눈을 바라보며 최대한 옆으로 살금살금 매우 천천히 돌아 전시회를 했던 건물로 향했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사자까지 어슬렁어슬렁 내 쪽을 향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다행히 걔네들은 우리를 먹이로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단지 폼 잡고 겁을 주는 정도였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무섭던지 식은땀을 흘리며 겨우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하였다.


가쁜 숨을 차리기도 잠시 갑자기 아내가 건물 위층으로 뛰어 오르시 시작하였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이 긴박감은 무엇일까. 어디 가냐며 같이 뛰어오르는데 아내의 목소리만 들리기는 하는데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계단을 뛰어오르던 중 층마다 풍만한 몸매의 모델들이 너무도 화끈한 속옷 차림으로 워킹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때 같았으면 눈을 떼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테지만 앞질러 간 아내를 잃을 순 없어 뛰고 또 뛰었다. 그러다 갑자기 길이 막혔고 아내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순간 어찌해야 할지 멍 때리다 일단 전시회 옆 건물에 차를 주차했던 게 생각나 일단 그곳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방금 전까지 뛰어 올라왔단 건물 내의 계단은 사라져 있었고 건물 밖 계단이 1층까지 일렬로 나열되어 있었다. 1층으로 급하게 뛰었다.


그 순간이었다. 꿈이라는 걸 자각하게 된 것은. 어떤 매개체가 발동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순간 꿈과 현실의 어느 중간쯤에서 '이것은 꿈이다'라는 걸 자각한 것이다. 


순간 주위의 모든 캐릭터들이 게임 속의 NPC들이 되어 버렸다. 이제 이 세계는 온전히 나의 것이 되는 순간이었는데 남자란 족속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다른 남자들도 마찬가지인 것일까. 그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한 여인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자연스럽게 수작을 걸고 있는 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무한 엔도르핀을 생성하고 있을 무렵 잠에서 바로 깨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옆에는 계단에서 잃어버렸던 아내가 이미 와 있었다. 한 편으론 안심이 되었는데 다른 한 편으론 잃어버린 자각몽의 짧은 순간에 대한 안타까움이 마음을 오락가락하게 한다. 


그러다 또 잠에서 깨었다. 현실이었다. 까무잡잡한 어둠 속의 천장에 매달린 동그란 형광등, 그리고 손에 잡히는 보드라운 이불, 시끄럽게 돌아가는 컴퓨터소리, 이 익숙한 것들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갑자기 속이 쓰렸다. 전날 매운 음식을 먹었던가? 곰곰이 생각해 봐도 매운 음식을 먹은 건 아닌 거 같은데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잔 탓인지 속이 쓰렸다. 아니다. 어쩌면 이 속 쓰림은 오랜만에 꾼 자각몽 중에 이루지 못한 수작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자게 되면 꾸게 되는 게 꿈이다. 그 꿈은 이루어지라고 꾸는 게 아니라 자니까 꾸게 되는 꿈이다. 어차피 꾸는 꿈인데 가급적이면 행복한 꿈인 게 좋겠지. 온전한 내 세상이거나 혹은 예지몽이라서 강남 갔던 제비가 물고 온 로또 번호라도 건네줄지. 오늘 밤 꿈속에는 또 누가 찾아오려나.


근데 그거 아나? 그런 꿈도 꾸려면 그전에 해야 할 현생의 숙제들이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자, 덤벼라 현생의 숙제들아, 갈 때까지 가보자고. 누가 오래 버티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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