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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냥 Apr 13. 2023

해방의 구원자

아무도 없다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의 숨소리였다. 폰 들여다보는 걸 멈추고 숨소리를 찾아 헤매었다. 거친 숨소리의 진원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떠나려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전력 질주를 해 온 탓인지 마스크 틈새로 삐져나온  거친 숨이 그녀의 앞머리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저렇게 힘겹게 버스를 탔을 때 신선한 공기가 모자라 토 나올 것 같은 느낌을 잘 안다. 나라고 안 뛰었을까. 누가 창문이라도 열어주면 좋을 텐데 멀리 떨어져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혹사나 하는 마음에 지켜보며 너무 힘들어하면 나서서 창문을 열어줘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거친 숨소리가 진정이 되었다.


그제야 그녀의 뒤에 쓰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해방이화' 


해방? 왜 해방일까? 

구글링을 해보니 당시 독재사회에서 억압당하는 이의 해방을 추구하는 이화인의 바람을 담은 단어라 한다.


독재? 당시의 군사독재를 말하는 것일 게다.

네이버국어사전에 의하면 독재란 '특정한 개인, 단체, 계급, 당파 따위가 어떤 분야에서 모든 권력을 차지하여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리함.'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 시대를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독재의 시기였다. 그 독재가 막을 내렸지만 과연 사람은 그 해방이 되었을까?


눈에 보이던 '독재'로부터는 해방이 되었지만 지금은 양의 탈을 쓴 그 무엇이 나를 계속 억압한다. 그 무엇에 의해 농락을 당하고 있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그 무엇은 갈수록 다양해진다. 양의 탈을 쓴 그 무엇은 주변 곳곳에서 어떻게 하면 나를 맛있게 요리해 먹을까를 궁리하며 숨 쉬고 있지 않은가. 식별능력을 위해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스카우터처럼 위험요소를 알려주는 장비라도 있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독재'에서 해방된 지 오래되었음에도 이화인들이 아직도 '해방'이란 단어를 버리지 못함은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홀로 생각해 본다. 얼마 전 방영했던 '나의 해방일지'에서 '구 씨'로 열연했던 손석구의 인기가 최고에 달했던 것도 해방의 구원자를 기다리는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런 구원자는 애초에 없다. 밀린 숙제와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이 기나긴 출근길로부터 해방시켜 줄 이는 아무도 없다. 오로지 나 말고는. 고로 마시지도 못하는 커피에 빨대를 꽂고 오늘도 충전을 하며 달린다. 이 길을 달릴 사람은 오로지 나 말고는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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