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고역

기다리는 자에게 박수를

by 생각하는냥

어쩌다보니 미아가 되어버렸다.

서울숲 외딴섬 한 가운데에 있는 벤치에 강아지와 다정하게 앉아 비둘기떼에 둘러싸여 있다.


원래 일정은 이게 아니었는데 어제 저녁부터 순간의 선택 하나를 잘못 하면서부터 하나둘 꼬이기 시작하더니 예상치 못한 장소에 덩그러니 던져져 있다. 다른 이들은 다 놀러 온 건데 나만 시간을 떼우고 있다. 그것도 하필 왜 강아지랑?


하나 양보하다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꼬이기 마련이다.


아뿔싸.

옆 벤치에 가족이 앉았다. 그들의 가방에서는 집에서 싸왔는지 아님 분식점에서 산건지 김밥과 먹을거리들이 테이블 위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음식점에 들어선듯한 냄새들이 코를 찌른다. 아까까지 쬐끔도 배고프지 않았었는데 금새 입안에 침이 고이고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이다. 옆에 앉아 있던 강아지는 대놓고 음식을 쳐다본다. 아, 창피해. 시선을 피하고 있을 뿐 강아지랑 별 다르지 않은 마음이다.


자리를 피해 다른데로 가기도 귀찮다.

좀 빨리 먹고 가주면 좋으련만.

주위에서 놀던 비둘기 떼도 하나둘 옆 벤치의 가족들 옆을 기웃기웃거린다. 심지어는 참새까지 테이블에 올랐다. 가족들 주위에 모두 거지들이 둘러 붙었다. 물론 아닌 척 하는 나 포함.


김밥 하나만 주면 안 잡아 먹지를 하고 싶지만 그러다가 멱살 잡히거나 혹은 옛다 먹어라 하며 김밥 하나를 던져주면 개처럼 받아먹게 될까봐 입맛만 다신다. 역시 오늘은 자리 운이 없나보다.


어쩌다보니 외딴섬에서 거지가 되어 버렸다.

사람들이 더 많이 온다. 오전 11시니까 그럴법도 하겠지.


그래도 나름 테이블 위에 꺼내놓은 노트북을 툭툭 건드리며 하는 폼은 제법 어떤 이의 눈에는 있어보이지 않을까도 싶다. 옆에 강아지까지 거닐고 있으니 말이다. 실상은 배고픈 거지에 지나지 않은데.


맑았던 하늘이 금새 옅은 구름 한가득이다. 내리쬐던 햇볕은 온데간데 없다. 뭐 이리 금새? 이대로 비까지 오면 대박이다.

얼라리요? 헉. 저건 뭐야. 고양이 두마리가 새 주위를 어슬렁 거리기까지 한다. 새를 잡아먹는 고양이의 살육현장을 보게 되려나 싶었다. 다큐멘터리 찍나? 이 고양이들 뭔가 심상찮다. 마치 한마리의 야수들처럼 눈빛은 날카로웠다. 한참을 노리고 있던 고양이 한마리가 비둘기떼에 달라들었다. 점프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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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 뛰는 듯 마는 듯 너무도 살짝 뛰며 발톱으로 비둘기를 향해 발톱을 한 번 휘두르는 시늉을 한다. 그새 비둘기들은 힘차게 날아올랐다. 헐리우드 액션인건가? 저 하는즛 마는 듯한 시늉은 대체 왜 한건가? 심심해하는 고객을 위해 판토마임이라도 하는 삐에로 시늉을 너가 왜 하는건데?


그 사이에 중국집 배달원 아저씨들은 벤치 앞의 테이블 위에 전단지를 하나 둘 씩 뿌리고 간다. 쩝. 입안에 침만 한가득 더 고여간다.


기다림이란 고역의 시간이다.

기다리는 자의 인내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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