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다.
퇴사를 한 후 깨달았다. 왜 나는 서울에 살게 되었을까? 원래 집은 서해의 작은 섬이고, 고등학교는 전라북도 완주에서 나왔고 대학교는 부산에서 나왔다. 그리고 첫 취업을 서울에서 하게 되었다. 서울 가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대학을 나온 부산에서 일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취업 기회는 서울에 훨씬 많았고 나 또한 그때는 서울에서 살고 싶었다.
온갖 재밌는 것들은 모조리 서울에서 한다. 팝업, 전시, 뮤지컬, 미술관 등 서울에 참 재밌는게 많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일할 곳이 많다. 당장 구인구직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면 서울이 압도적으로 많다. 다른 지방은 가뭄에 콩나듯 일자리가 있고 그마저도 양질의 일자리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먹고 살려면, 서울로 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울에서 산지 4년이 넘었다. 서울에서 가볼만한 곳은 모두 간 것 같고, 즐길만한 것도 모두 즐겼다. 그리고 이제는 점점 서울살이가 지치기 시작했다. 강남 출퇴근은 끔찍했고, 어딜가나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 숨이 막혔다. 무엇보다 빌딩숲이 싫어졌다. 맨 처음 서울의 빌딩숲을 봤을 때, 그 별천지는 잊을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르자 갑갑하게 느껴졌다.
회사를 퇴사하고 프리랜서 몇 개월 살다보니 서울에 있을 이유가 딱히 없었다. 대면 미팅은 거의 없고, 대부분 클라이언트와 온라인으로 소통을 하니 굳이 서울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해외를 가면 가장 좋겠지만, 일단은 제주도로 떠나, 지금 제주도에서 글을 쓰고 있다.
제주도 동쪽의 한 숙소에서 스태프로 일하며 숙식을 제공받고, 2일 근무 4일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제주에 온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여름이 다가오며 푸릇해지는 자연이 주는 생명력은 어마어마하다. 차가 거의 없는 제주 시골 도로를 달리는데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차분하게 들었다.
물론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서 부담없이 제주로 올 수 있었던 것도 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아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다. 사무실로 출퇴근 하는 삶이 다시 인생에 없을 거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이젠 서울도 서울의 사무실 출퇴근도 하고 싶지 않다. 서울의 회사원이 되고 싶지 않다.
조용하고 자연이 아름다운 시골에서 내 일을 하며 살고 싶다. 프리랜서로, 디지털 노마드로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는 내 하기에 달렸다. 이젠 난 서울을 탈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