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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타미 Oct 19. 2020

특별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신기하게도 나는 나의 20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말을 알고 있다. 그것은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는 것.


누군가와의 대화 속이었다. 서로를 안 지 이주 정도밖에 되지 않은, 말 그대로 잘 모르는 타인과의 대화였다. 낯선 나라였고, 낯선 사람이었다. 우리는 20과 30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사회의 언저리에 놓여있었다. 잘 모르는 타인은 고시 준비를 이년 정도 했었고, 또 포기했다. 나는 반 평생 따라다닌 우울증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였다.


고시 준비를 했던 그 타인은 "나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될 줄 알았어."라고 말했다. 나는 "모든 개개인이 다 특별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내가 말하면서도 믿지 않는 말을 건넸다. 우리는 안개 같은 한숨을 쉬었다.


특별한 사람이 될 줄 알았던 어린 시절은 끝났다. 특별한 사람은 고사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렸을 때 머릿속으로 그렸던 나의 20대는 얼마나 찬란했던가. 뭐든 마음만 먹으면 이뤄낼 줄 알았는데, 그런 의지도 열정도 없는 나만 수도 없이 마주쳤을 뿐이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하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사람이란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 인생이 뒤바뀔 거란 한 때의 생각은 어리광에 불과했다. 나 한 사람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극히 적으며, 나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존재하지 않는다. 스무 살에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나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머리에서 가슴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한 때는 글을 목숨 같이 써 노벨문학상은 아니더라도 나름 유명한 작가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날들이 있었다. 베스트셀러에 내 이름이 오르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글을 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무슨 글을 써야 할지도 모른 채 방황하고 하루하루에 치여 글은커녕 일상을 제대로 세우는 것조차 버거워하고 있다. 상상력도, 사랑도, 사람에 대한 관심도 모두 부족한 내가 어떻게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만 가득하다.


그런데도 시를, 문장을 조금씩 끄적인다. 무엇을 써야 할지도 모르지만, 누가 읽는지도 모르지만 느리고 게으르게 아주 꾸준하지 못하게 글을 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을 쓴다 하더라도 과정은 그런대로 행복하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감정이 나를 짓누를 때 글을 쓰므로 나는 숨을 쉬었다. 몰입할 수 있었다. 몰입은 나의 세계를 확장했다. 가보지 않은 세계를 갈 수 있었다.


그래서 계속 글을 쓴다. 쓸모없는 일이라 말해도 괜찮다. 이 일이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않아도 괜찮다. 글이 나를 먹여 살려주지도, 내게 어떤 명예를 가져다 주리라는 보장도 없지만. 무의미한 곳에 무의미한 시간을 쏟아부은 일이 될 수도 있지만. 과정을 사랑한다. 문장이 쌓여가는 과정을 사랑한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느슨한 긴장감을 사랑한다. 글을 쓸 때 울려 퍼지는 키보드 소리를 사랑한다.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은 세상에서 사랑할 수 있는 하나의 일을 나는 알고 있다.


특별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사랑하는 일을 지속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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