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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타미 Dec 21. 2020

겨울 땅


이곳의 땅은 굳게 얼어 있고 갈라져 있고

곳곳에 흰 눈이 서려 있고 꼼짝 않는 흙들이 박혀있다

눈보다는 노란 피부보다는 하얀 짧은 패딩을 입고

주머니에 손을 꽂고 그곳에 잎 없는 나무처럼 서 있다

나무는 앙상하고 봄이 오는 것을 모르는 나무다

계절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무다

목까지 올라오는 검은 스웨터는 땅을 겨우 부여잡고 있는 나무의 뿌리

땅의 가장자리까지 올라와 생명과 몸부림치는 나무의 뿌리

대지는 높고 먼 지평선에는 누가 살지 모르는 혹은 아무도 살지 않는 산들이 서있다

하늘과 땅이 맞닿는 선에는 사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나 홀로인 것은 같다

바람은 얼굴에 작고 옅은 칼자국을 남겼고 턱선보다 짧은 머리칼은 한 방향으로 거세게 흔들렸다

이곳은 단어가 없고 단어가 없으니 문장도 없다 속이 텅 비어 뱉어낼 것이 없다

광활하고 마른땅에서 나무는 걸음을 옮겨야 한다 걸음을 옮겨 말을 찾아야 한다

토해낼 말 속삭일 말 외칠 말 털어놓을 말 울부짖을 말 기뻐할 말 분노하는 말 기대하는 말 그 밖의

세상의 모든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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