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우리 K 대리의 입봉 PT가 있는 날이다. 내가 암진단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쯤 최종 리허설을 지켜보며 사진 찍고 동영상 찍고 내 아들 학예회 지켜보듯 엄마 미소를 남발하고 있었을 텐데…. 할 수만 있다면 광고주 회사에 몰래 숨어 들어가 지켜보고 싶다. 명확하게 앞단 플로우는 잘 짰는지, 발성은 좋은지, 호흡은 부족하지 않은지, 손동작은 과하지 않은지, 매끄럽게 브릿지를 잘 만들고 강조할 부분 앞에서는 충분히 멈추고 있는지… 아! 내 행운의 포인터도 넘겨주고 싶었는데….
보통의 광고대행사에서는 비딩 프레젠테이션 대부분을 팀장이나 국장급이 전담한다. 나 또한 비딩 PT는 거의 다 직접 해왔지만, 나는 규모가 작거나 수주 압박이 덜한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최대한 대리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윗분들을 설득하는 편이다. 심지어 이제와 공개하지만 <빙그레 맑은 하늘 도라지차 론칭 캠페인> 때는 당시 사원이었던 친구를 동기부여(?)해 대리 명함까지 파 줘가며 PT를 시키기도 했다. 다행히도 수주도 따내고 그 캠페인은 한 해를 빛낸 바이럴 영상 캠페인 Top 3에 선정되며 서울 영상 광고제 본상까지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게 되니, 이 얼마나 리더의 선견지명인가!… 라기보다는(나는 방탈을 잘한다.)
내가 주니어들에게 자꾸 기회를 주려는 이유는 짧게는 2주, 길게는 한 달 넘게 수많은 사람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출한 결과물을 광고주에게 제대로 팔아야 한다는 그 책임감, 그 무게를 느껴보는 것이 주니어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 성장을 지켜보는 일 역시 내게도 큰 행복이 된다. 그래서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리허설 때 엄마 미소를 마구 남발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 PT 현장은 종종 차갑기 그지없고 사소한 눈살 찌푸림, 갸웃거림에도 프레젠터의 멘탈이 흔들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훈련하는 차원에서라도 일부러 인상을 쓰려고 노력을 하기도 한다. (물론 잘 안 된다. 이미 난 웃고 있다.)
내가 등 떠밀어놓고 결국 K 대리의 입봉을 직접 지켜보지 못해 미안하다. 하지만 평소 그 정확함과 침착함이 로봇 같기로 유명한 그이니 분명 200% 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오늘 현장에서 함께 끄덕여주고 질문을 받아주고 수고했다고 등 두드려주며 맛있는 거 사줄 수는 없겠지만, 오늘의 K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진심을 담아 파이팅을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