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대화란?
대화란 무엇일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가장 끔찍한 대화는, 주말 오후 강남역 인근 사람들이 가득 들어찬 매우 시끄러운 카페에서 말을 절대 끝내지 않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잔인하게 평가하는 것이 마음 불편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그건 말 그대로 끔찍했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뿐더러 열심히 알아듣기 위해 노력할 정도로 의미 있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주말 낮 어느 카페의 소음에 그대로 파묻혀도 아쉽지 않을 뿐인 이야기들이었다. 그 사람은 마치 우리가 잠시 폰이라도 보면 큰일이 날 것처럼, 단 한 순간도 대화의 단절을 견디지 못하면서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냈고, 나와 옆에 있던 다른 이는 폭포수같이 쏟아지는 무의미한 단어 속에서 서서히 질식해 가고 있었다. 무작위로 글쓰기 주제를 던져주는 어떤 책에 맥베스에서 인용한 다음 문장이 쓰여 있을 때도 나는 이 기억을 떠올렸었다.
"그것은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와 같아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결국엔 아무 의미도 없도다."
나는 그 사람의 얼굴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고, 그 사람의 직업이나 각종 배경지식도 모두 증발했지만, 아직도 그날의 그 순간만큼은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왜 이렇게 그 경험은 강렬하게 남아있을까? 왜 이렇게 그 대화가 무의미하고 또한 끔찍하기까지 했을까?
그에 반해 아름다운 대화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그런 대화는 셀 수 없이 많다. 나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가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래서 살면서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다정한 순간들, 멋진 밤은 참 많았다.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서 해가 넘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우주에 대한 관심, 과학적 사실의 신비로움, 그것들이 우리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학교 선배와 한참을 이야기했다. 다른 대학 동기와 좋아하는 음악과 독서 취향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고, <달과 6펜스>를 인생 책이라 꼽던 그 사람은 결국 책의 주인공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지켜보았다. 마음 맞는 회사 동료 몇 명과 스터디모임을 하면서 곁다리로 센 이야기들은 한국 사회의 정신적 문제의 심각성과 어떻게 하면 평범한 30대인 우리가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것들이었다. 친구 집들이에서 온갖 세상살이에 대해 이야기하다 결국에는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우주나 철학에 대한 것들에 대해 취중 무논리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불교를 공부하는 어머니와 불교 철학이나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던 기억은 내 마음에 좋은 의미의 스크래치를 남겼다. 이런 아름다운 순간들을 모아보면 끝이 없다... 나는 인간을 멀리 보았을 때는 약간의 혐오감을 가지고 있지만, 한 명의 한 명의 사람에 대해서는 계속 일말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데 바로 이런 순간들이 모여 인간에 대한 나의 철학이나 의식을 긍정적으로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대화란 무엇일까?
왜 어떤 대화는 의미가 있고 어떤 대화는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을 뿐 아무 의미가 없을까? 이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결국은 모두가 똑같이 얘기하는 대화의 진리에 닿게 될 수밖에 없다. GPT 가라사대 "진정한 대화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것을 넘어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진심으로 듣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바탕이 된 소통"이다. 여기서 말을 주고받는 것은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진심으로 듣는 것에는 적극적으로 듣는 행위에 대해서 표현하고 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도파민이 나온다고 하는데 반대로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 도파민이 나오는 듯한 강렬한 경험을 한 기억을 더듬어 보시라.
내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대화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부터 이미 굉장히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그 이야기에 더해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안달 났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이야기를 진짜로 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전제조건이 있다.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공동의 관심 주제와 대화를 하려는 마인드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건이 잘 맞아떨어진다면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런 순간은 아무리 길어도 그냥 순간으로 느껴질 뿐이고, 인간에 대해 계속해서 희망을 품게 만들며, 무채색 일상에 물감을 풀어낸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말을 걸자. 대화를 시작하자. 때로는 듣고 있어도 들리지 않는 순간도 있겠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순간도 얻어걸리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