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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에 대한 생각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by 도랑 그림에세이
잠수.jpg

대학교 4학년쯤 나는 어떤 힘든 일을 겪었는지 이런 글을 썼다.


수심 몇 킬로미터의 깜깜한 바닷속을 혼자 걸어 다니는 것 같다.

빛조차 삼켜버리는 그런 바닷속.

가끔 심해어의 몸짓을 담은 잔물결을 실어 보내는.

여기가 바다인가 아니면 우주인가.

공허함과 두려움이 가득한.

얇은 잠수복으로 겨우 수압을 이겨내는.

한 걸음을 걷는 것이 두려운

그런 깜깜한 어둠의 바다를.


그때는 수면에서 헤엄치기만 했지, 실제로 바닷속을 들어가 본 적도 없었는데 각종 영상 자료에서 본 이미지와 일말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이런 글을 썼다. 그 당시 일기는 대부분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그 당시의 느낌 위주로 쓰는 식이라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정제되지 않은, 넘쳐흐르는 감정의 물결을 그냥 흘려보내는 느낌. 그러나 어떤 느낌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몇 년 후 실제로 스쿠버 다이빙을 하면서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은 날씨가 궂어서 수면 위는 거친 파도가 쳤지만, 수면 아래는 그보다는 잠잠했다. 물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산호나 물고기보다도 오히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텅 빈 곳이다. 산호 절벽을 따라 이동할 때 왼쪽에는 벽 가득 색색의 산호를 볼 수 있었지만,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공허한 공간이다. 물속에서는 동작이 느리기 때문에 나는 천천히 시계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보는데 검푸른 물밖에 보이지 않는 공간이 한참을 이어지다가, 이내 두려움이 느껴질 때면 동료의 얼굴이 보이고 다시 산호 절벽이 나타난다. 나는 그 짧은 회전에서 어서 동료의 얼굴이 나타나기를 빌었다. 그 기분은 경이롭지만 두려웠다. 그리고 우주에 혼자 떠 있으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에는 산호 절벽이 있는 대신 물고기조차 안 보이는 깜깜한 곳도 있고, 20대 청춘에도 밝고 희망찬 날도 있지만 '심해를 홀로 헤엄치는 듯한' 궂은 날도 있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은 그 물속에서 우리는 동료를 찾아내고, 그와 함께 이정표를 찾아 수면 위로 다시 천천히 올라올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조용한 집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잠수의 경이로움이 산호 때문인지 공허 때문인지 아니면 두 가지의 조화로움 때문인지 생각하며 추억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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