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처럼

by NakedGod

아직 푸른 옷을 걸치고 있는

나무들 사이에서

일찌감치 다 벗어던져

누드모델같이 가련한 나무

작년 재작년

아니 태초부터 서 있었던

나무일지도

그리고 내년 이맘때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듯


그 앙상한 나무의

가장 높은 가지에 앉아

파란 하늘을 진동시키며

소리치는 까마귀

이 새도 작년 재작년

아니 그전부터 날아와서

짖었을지도

그리고 또 내년에도

같은 아우성을 치겠지


이 나무와 까마귀를

작년도 제 작년도

아니 오래전부터

내년에는 안 보겠지

하며 보았던 사람


결사적으로 도망치다

나에게 목숨을 잃은

바퀴벌레 새끼들처럼


내년 이 맘 때

저 까마귀 저 나무

바라보는 사람 내가 아니기를

그러나 여전히 나일 것 같은


그러나

내년 까마귀가

같은 까마귀가 아니라도

내년 저 까마귀를 보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도

世上은 서 있을까


끊임없이 죽는

바퀴벌레 새끼처럼

매년 가을 같은 가지에 앉아 우는

까마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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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이 말의 의미를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시인은, 회사 건물 옆의 숲에서 매년 겨울 잎 다 떨어진 메마른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를 본다. 이렇게 똑같은 장면이 십여 년 계속되다 보니, 언제 이 상황이 끝날까 혹시 시시포스의 신화처럼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도 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겨울날,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은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 벗은 나뭇가지는 그곳에 있겠지만, 그 까마귀는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지며, ‘종말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온다’는 기도회에서 시인 자신이 한 예언이 떠오른다. 이 예언을 듣고 공포에 떨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사실 이는 예언이 아니라 상식에 불과한 말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인간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다가, 끝나면 너무 빨리 끝난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루하루는 지루할지 몰라도 한평생은 빛의 속도로 지나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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