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서스 03 - 진흙 화산 머드 볼카노와 고부스탄 암각화
바쿠 인근에 있는 진흙 화산지역인 머드 볼카노 와 고부스탄을 가기 위해 투어를 신청했다. 말이 투어지 차량만 제공되는 것으로 박물관의 입장료 등은 자체적으로 납부하는 것이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엔 소요시간이 길게 걸릴 뿐만 아니라 어차피 진흙 화산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형차량으로 다시 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머드 볼카노를 거쳐 고부스탄 암각화를 향해 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바쿠 시내를 벗어나면서 왼쪽으로는 카스피해가 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원유 생산국답게 시추현장이 자주 보여주고 있었는데 원유를 갖고 있는 나라,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가 바라보는 마음은 부러움 그 자체였다.
시추하는 현장도 지나고 허허벌판 같은 곳을 한 시간여를 달리게 되면 머드 볼카노로 들어가는 차량을 바꿔 타는 곳이 나오는데 차량들이 진흙 밭을 달려서 그런지 한결같이 멀쩡해 보이는 차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탄 차는 족히 30년은 됨직한 작은 고물 택시였는데 굴러가는 것 자체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쨌든, 언제 서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고물차에 몸은 실었고 차는 이동했다.
머드 볼카노는 진흙 화산으로 아직도 진흙이 뽀글뽀글 기어 올라 산을 이룬다. 온천수처럼 뽀글뽀글 올라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였지만 뜨거울 것 같은 생각으로 잔뜩 웅크리면서 손가락을 대어보니 미지근한 정도였다. 진흙이 흘러나와서 산을 이룬 곳은 아직 흘러내리면서 마르지 않은 곳은 상당히 미끄럽기 때문에 걸어 올라갈 때도 신경을 쓰면서 걸어야 한다.
우리네도 보령에서 머드축제를 진행하고 있으니 머드가 몸에 좋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특히 이곳은 뜨겁지 않고 오일과 가스가 섞여있어서 이곳 현지인들은 아예 뽀글거리는 진흙 한가운데 들어가서 머드 욕을 즐기고 있었다. 늪처럼 밑으로 계속 빠질 것 같은데 무섭지도 않은가 보다. 온몸을 떨면서 무섭다는 느낌으로 어쭙잖은 표현을 했더니 현지인이 웃으면서 '엄지 척!'을 한다. 그리고 진흙 탕에서 나오더니 팔뚝을 만지며 '굿!!' 하는 것이 아닌가?
아하~ 역시 전 세계적 언어, 바디랭귀지 짱!!!
차는 다시 달려 고부스탄 암각화 박물관 앞에 도착했다. 이곳은 박물관의 영어가이드가 암각화 지역을 함께 다니면서 설명을 해주는데 영어가이드라 신청을 망설였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로 가지고 설명을 해줘야 알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안 듣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영어가이드를 신청했다
대기하고 있으면 가이드가 대기하는 곳으로 오던지, 아니면 우리가 위쪽으로 가서 대기하고 있는 가이드를 만나야 하는데 현재 가이드가 위쪽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우리를 그곳으로 불렀다.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는 우리의 수준에 맞춰 단어와 단어로만 설명을 이어갔는데 그럼에도 우리가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 몸짓, 손짓을 사용해서 최대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얼굴도 예뻤지만 나름의 배려도 고마웠다. 고부스탄 암각화는 2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동굴에서 살았던 흔적이 암각화로 남겨놓은 곳이다. 그러니 설명을 들어야만 그림이 보이고 그것도 한참을 쳐다보아야 가이드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영어를 모른다고 가이드를 신청하지 않고 우리끼리 와서 봤다면 "그냥 돌에 낙서를 해놨구나~"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것 같았다. 형상화해놓은 그림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박물관에서 차량을 이동해 고부스탄 암각화 지역의 입구에서 만난 가이드는 이어지는 코스를 돌면서 각각의 설명을 했다. 어느 바위에 멈춰 서서 이것은 들소, 이것은 사람이라고 알려는 주는데 유심히 쳐다보지 않으면 어느 선이 사람인지, 어느 선이 들소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옛날 선사시대 사람들도 여성은 그려놓은 게 없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 시대에도 성차별이 존재했나 보다.
그래도 난 그림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 그냥 의미 없는 선들만 보인다...
가이드가 어느 넙적한 바위에 멈춰 서서 바위를 돌로 툭툭치고 있다. 둔탁한 소리가 나야 하는데 소리는 생각보다 맑고 높은 소리가 들렸다. 바위의 속이 비어서 생각지도 못한 맑은 소리에 눈이 동그래진 우리는 신기한 듯 너도 나도 자그마한 돌을 들고 한 번씩 두들겨 본다. "통, 통, 통..."
바위를 돌로 치면 맑고 높은 소리가 나서 마을 전체에 들려 비상시에 사용했다고...
지나가다 보면 우물이 보인다. 바위에 연탄하나 들어갈 정도의 구멍에 빗물을 저장해서 식수로도 사용하고 빨래도 했다던데, 구멍은 생각보다 작았다. 그만큼 물이 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선사시대도 빨래를 했었나?
가이드와 헤어져서 매점이 있다고 들렸는데 아이스크림만 팔고 있었다.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잠깐의 허기를 달래며 아래에 있는 박물관으로 내려왔다. 박물관은 선사시대에 만들어 사용했을 도구와 유품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사실 난 별로 흥미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