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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Mar 03. 2020

임신 6주~7주  : 입덧, 입덧, 입덧.

먹는 게 삶의 즐거움의 87%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입덧이란?

임신테스트기 2줄을 확인하고, 임신 주수로 5주쯤 됐을 때부터 미세하게나마 속이 울렁거리거나 미식거리는 느낌이 조금씩 있었다. 이때는 정말 정말 미~세한 수준이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었다. 미세하게 울렁거리던 속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분명하게 미식거리고 토할 것 같은 울렁증으로 진화했다. 6주가 좀 지나니 점점 입덧 증세가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속이 비어있으면 울렁거리고 구토감이 올라와서 힘들고, 그래서 뭘 먹기 시작하면 금방 배가 부르고 꼭 체한 것처럼 속이 아프거나 더부룩해졌다. 흡사 술 마시고 난 다음날의 숙취가 지속적으로 계속되는 느낌. 절대 깨지 않는 숙취랄까...


나는 원래 먹는 것을 좋아하고,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 많은 스타일이다. 수시로 먹고 싶은 게 생기는 스타일인데 어느 정도냐면 너는 왜 먹으면서 자꾸 뭘 먹고 싶다고 말하냐고 엄마한테 혼나기도 했다. 한창 많이 먹던 중학생 시절에는 내가 수시로 냉장고를 거덜 내니 너보다 소를 키우는 게 더 편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렇게 먹는 걸 좋아하는 나인데... 이 놈의 입덧이 시작되니 가장 짜증 나는 건 음식을 내가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가 없다는 거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으면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금방 배가 부르고 속이 더부룩해져서 먹기가 힘들다. 나는 아직 더 먹고 싶은데! 거기서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음식을 먹어버리면 어김없이 약간 시간이 지난 후에 속을 다 게워내야 한다. 적당량으로 먹는 데 성공하더라도 곧 소화가 잘 안돼서 트림이 계소 올라오거나 가스가 가득 찬 느낌이 계속된다. 식사 후에 속이 불편해서 한동안 음식을 안 먹고 있으면 속이 비어서 울렁거림과 토할 것 같은 기분이 계속해서 유지되다가 급기야는 토할 것도 없는데 계속해서 구역질이 나왔다. 정말 미칠 노릇이다.


이맘때 뒤집어지는 속을 그나마 달래주는 것은 귤, 딸기 같은 상큼한 과일들이었다. 이 시기가 귤이 많이 나는 겨울이 아니었으면 난 대체 어떻게 버텼을까...? 상상만 해도 아득하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건 냄새에 예민해지거나, 음식을 먹으면 역해서 음식을 못 먹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라는 거. 먹을 수 있기는 있다. 금방 배불러지거나, 소화가 안돼서 문제지. 정말 웃긴 건 이런 와중에도 끊임없이 뭔가 먹고싶은게 생각난다는 거다. 반전은 먹고 싶다가도 바로 안 먹고 싶어 지고, 뭔가가 먹고 싶어서 겨우 먹으면 체하고 토하고, 토하고 나면 또 배가 고프니까 또 뭔가가 계속 생각나고.. 이건 무슨 멍청한 레퍼토리의 무한 반복인지...


맘 카페와 인터넷에 입덧을 검색해서 수많은 동지(?) 들의 후기를 읽어보면 나 정도면 그나마 양반인 듯하다. 물도 못 먹고 토하는 사람도 부지기수고 분수토를 수시로 해대는 임산부들도 많더라. 심각한 케이스들의 고통스러운 런 후기들을 한참 구경하면서 그나마 나 정도면 감사해야지 싶다가도, 생각해보면 전 인류의 절반이 높은 확률로 이 입덧 때문에 고생했거나, 고생하고 있거나 고생할 예정인 거 아닌가? 이 정도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직 입덧의 원인도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게 신기하다가 나중에는 조금 화가 났다. 인류를 달에 보내는 첨단과학시대에 이런 입덧 증세에 대한 뚜렷한 치료방법이 없다는 게 한탄스러웠다. 입덧 증세를 완화시켜주는 입덧 약이 있기는 하지만 뚜렷하게 증세를 없애주는 것보다는 증세를 약화시켜주는 정도라고 하니...


나는 아직 임신 초기인지라 이제 입덧이 막 시작한 단계이다. 여러 후기글을 읽어보면 주수가 지날수록 강도가 심해지거나, 일반적으로 16주 즈음에 입덧 증세가 완화된다고 하지만 출산 직전까지 입덧하는 사람, 괜찮아졌다가 출산 즈음에 다시 입덧 증세가 시작되는 사람 등... 마음 놓고 안심하기에는 다양한 케이스들이 있더라. 즉, 나는 이제 막 7주 차이므로 못해도 한 달에서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이 고생을 더 해야 하고 증상이 더 심해지면 더 오랫동안 이상태가 유지될 수 도 있다는 거다. 오 세상에.....


이제 막 내 뱃속에서 1cm 남짓되는 존재가 내 컨디션을 이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바꿔놓다니... 새삼스럽다.

아기를 갖기로 결심하고 나서는 빨리 아기가 생기기를 바랐는데 막상 임신이 되고 이런 증상들을 그냥 버텨내야만 한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나니, 앞으로 내 몸에 생길 더 많은 변화와 증상들이 막연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배가 부르기 시작하면, 출산 직전이 되면, 심지어 출산할 때는 훨씬 고통스럽다던데... 와.. 어떡하지..

한참 끙끙대다 겨우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하면서 남편에게 절망스럽게 말했다.


'이제 초기인데도 이렇게 힘든데, 나중에 배가 불러오고 출산할 때는 뭐가 더 얼마나 힘들까? 나 진짜 불쌍하다.'


남편은 내 말을 듣더니 내 배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자기 안 불쌍해... 엄마는 대단해요!'


'엄마는 대단해요'라는 말은 임신 어플의 아기 캐릭터가 자주 하는 대사이다.

그 말을 듣고 순간 웃음이 났다. 그래. 한 생명을 몸 안에서 키우는 건 대단한 일이지. 생명이 태어나는 일은 정말 대단한 거라고, 아기가 무사히 자라서 건강하게 태어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나와 남편은 서로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수많은 임신 출산 후기를 아무리 읽었고, 입덧이 힘들다는 이야기도 많이 보았지만 글로 후기를 읽는 것과  내가 직접 당하는 것(?)은 완전 다른 이야기였다. 입덧부터 이런데 이후에 내가 마주할 수많은 상황들은 어떨까?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하다.

이제 막 1cm 남짓되는 존재 때문에 내가 이렇게나 고통받는다는게 어이도 없고, 신기했다.


먹는 것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내가 겨우 들어가는 음식을 찾거나, 겨우 먹은 음식을 토해내는 사람으로 변하다니... 앞으로 이 아기가 내 몸안에서 건강하게 자라면서 나를 얼마나 바꿔놓을지, 우리 가족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두렵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아기와 나, 그리고 우리 남편까지 모두들 건강하게 잘 자라서 기쁘게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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