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없지만 온갖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하는 시기.
임테기로 임신을 확인하고 나서, 놀랍고 신나고 기뻤지만 임테기를 확인한 직후에는 딱히 할 게 없었다.
정말이다. 딱히 할 게 없달까...
우선 생리 예정일에 딱 맞춰서 확인한 극초기 임신의 경우, 바로 병원으로 달려간다고 해도 초음파상으로 뭔가를 확인이 안 되는 상태기 때문에 혈액검사 말고는 병원에서도 하는 것이 별로 없다고 한다. 맘 카페를 열심히 찾아본 결과 또 이 시기는 임신 극초기라서 자연유산이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주변에 잘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 칼같이(?) 임신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지만 막상 임신이 됐는데도 병원에 간다던가, 주변에 알린다던가 할 수 없어서 그토록 기다렸던 임신이지만 생각보다 별거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배가 나오거나 내가 초음파로 아이의 모습을 확인하기 전이기 때문에 사실 아이가 생겼다는 게 크게 실감 안 났다. 막연히 내가 임신만 하면 나 스스로가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엄청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임테기를 확인하는 직후 말고는 내 일상이나 내 감정, 내 기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굳이 변한 것을 찾아보자면 임신 초기에는 유산의 위험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한 달 전부터 등록했던 필라테스를 홀딩하는 정도?
임신주수로 쳤을 때 6주 정도쯤 가면 아기집을 초음파로 볼 수 있다는 글을 많이 봐서 6주 차 정도에 병원에 가야지 라고 생각했다. 임테기를 확인하고 나서 한 2주 정도는 딱히 할 것이 없었다. 극초기라서 그런지 입덧의 증상도 거의 없었고 그냥 평소와 다름없는 몸상태였다.
임신을 확인한 순간 말고는 또 내 일상이 변함없이 그대로라는. 무기력하고 가라앉았던 내 기분이나 마음 상태도 여전하다는 것에 약간 충격받는, '임신해도 별거 없네'라고 생각하는 나를 보면서, 내가 임신이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막연한 환상을 가졌던가- 돌아보게 되었다.
임신 극초기는 생각보다 별 다를 것이 없다. 그저 태아에게 좋지 않은 것(술, 담배)등을 멀리하고 격렬한 행동을 조심하는 것 외에는 딱히 내 일상이 달라지는 게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임신 준비를 했을 때처럼, 임신을 하고 나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임신했다는 것을 눈으로, 의사의 대답으로 확인하고 싶어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딱히 없었다. 내 일상과 마음을 잘 돌보면서 2주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 외에는.
그래서 그런지 이 시기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온갖 것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극초기에 유산되는 경우(화학적 유산이라고 많이들 부르더라)가 생각보다 많더라. 정상적으로 착상은 되었지만 유전자의 문제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고사 난자라는 게 있다는 걸 이 시기에 알았다. 유산이 20%에 가까운 여성들이 경험하는 드물지 않은 이벤트라는 것도 이 시기에 정보를 찾아보면서 알게 되었다.
병원을 가도 뚜렷한 뭔가를 알기 힘들다고 하기에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임신 극초기에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안 좋은 이벤트들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다 보니 온갖 것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막상 갔는데 아기집이 없으면 어떡하지? 착상은 잘 됐지만 심장은 안 뛰는 고사 난자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들...
그렇게 간간히 걱정도 하면서 시간이 흘러 내 계산으로는 5주쯤 되던 날, 화장실을 갔더니 갈색 혈이 비치는 것 아닌가? 임신했지만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과 내 뱃속에 자리 잡은 생명에 대해서 무감했던 스스로가 무색할 정도로 매우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뭔가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서둘러 준비해 급히 병원으로 쫓아갔다. 접수를 하고, 대기를 하고 진료를 보기 전까지 임신한 내 상태에 무심했던 내가 얼마나 바보같이 느껴지는지...
생각보다 수월하게(?) 임신했다고 생각했지만 첫 시도에서 임신이 아닌 걸 알았을 때 느꼈던 실망감, 임신인지 아닌지를 기다리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이 아이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강하게 들었다.
다행히 진료 결과는 아기집 위치도 좋고, 아기집도 잘 자리 잡았다는 소견이었다. 내가 만난 의사 선생님은 매우 쿨한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임산부의 20~25% 정도가 초기에 출혈이 있는 편이고, 드문 상황은 아니다. 초음파상 아기집 위치도 좋고 피고임도 없어 보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무심하게 알려주셨다.
내심 많이 당황하고 놀랐었는데, 큰 감정의 동요 없이 무심하고 시크하게 진료해주는 선생님을 만난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뭔가 더 다정하거나 상냥한 선생님이었으면 놀란 마음이 더 동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내 예상보다 며칠 일찍 내 뱃속의 아이의 첫 사진을 받아보았다. 엉겁결에 받은 첫아기 사진.
임테기를 확인하고나서도 별로 실감이 나지않아 아기의 태명을 정하지 않았었는데, 기쁨이라는 태명을 지은것도 이 사진을 받고나서 지었다.
갈색혈을 며칠 지나고나서 바로 멎었기에 이 때의 출혈은 임신 초기의 가벼운 이벤트로 마무리되었다. 갑작스러운 출혈때문에 많이 놀라긴 했지만 매마른 내 마음에 아이를 생각하는 감정이 스며있었다는걸 알게된 이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