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에 대해서 한참 고민할 때도, 임신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도 나에게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은 이 생명이 오롯이 나 때문에 태어나는 존재라는 점이었다. 내가 아이를 가지겠다고 '선택' 했기 때문에 태어나는 생명이라는 게 생각보다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한 생명이 태어나고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갑갑해졌다. 심지어 내가 태어나게 한 이 생명을 최소 30년가량 책임져 줘야 한다니... 쉽지 않은 일이니까.
그러나 하늘은 나를 몇 달 동안 고민하게 한 저 생각이 얼마나 교만한 생각이었는지, 임신을 시도(?)한 지 한 달 만에 알게 해 줬다.
나는 누가 ‘건강하냐?’고 물어보면 썩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려운 체력을 가진 편이지만 다른 건 몰라도 산부인과 계열로는 자신 있었다. 정말 칼 같은 주기로 생리를 하는 사람이어서 오죽하면 남편이 '기계냐?'며 놀랄 정도였다. 정확히 28일 주기로 생리 패턴이 정확했기 때문에 나는 내가 계획만 하면 당연히 임신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임신 준비 전에 나와 남편 모두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문제없다는 대답을 듣기도 했거니와 생리주기가 정확한 만큼 배란 예정일도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었다. 덕분에 가임기 계산도 수월했기 때문에 가임기 내에 적절히 시도(?)를 해주면 당연히 임신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 예상과 달리 제대로 계산하고 도전한 첫 달에 임신 시도는 실패했다. 임테기 한 줄을 확인하고 생각보다 많이 실망하는 스스로가 당황스러웠다.
첫 임신 시도가 실패하면서 오히려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아이를 가지는것이 내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이 아주 교만한 생각이라는걸 깨달았다. 나의 계획과 준비, 선택이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일 수는 있지만 아이가 생기고 자라는 것은 하늘이 주셔야 가질 수 있다는 것과 임신성공은 내가 계획하고 준비한다고 당연히 따라오는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주는 부담은 조금 가벼워졌지만, 겨우겨우 온갖 고민 끝에 임신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제대로 도전(...)을 했는데 결과가 비임신으로 나오니 마음이 심란했다. 웃기지만 ‘안될 이유가 없는데 왜 안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갖 임신, 난임 관련 콘텐츠들을 닥치는 대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정상적인 주기를 가지고 있는 신혼부부가 자연임신을 시도할 경우 성공확률은 평균적으로 20~30% 정도라고 한다. 35세 미만의 여성을 기준으로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했을 때 1년 이상 임신이 되지 않을 경우 난임으로 판단한다고 하니, 제대로 시도한 지 11개월 만에 임신이 되어도 문제는 없다는 뜻이다. (이 당시에 내가 도움을 많이 얻은 유튜브 채널 : 이재호 난임 전문의 채널, 산부인과 전문의 3명이 운영하는 우리 동네 산부인과 )
제대로 도전한 건 첫 번째였지만 피임을 하지 않아 온지는 몇 개월이 지난 상태라서 그런지 조급함이 미친 듯이 솟아올랐다. 임신 시도라는게 정상적인 생리 패턴을 가진 여성이라면 한 달을 주기로 시도해야 하는지라 한번 실패하면 영락없이 몇 주라는 시간은 그냥 흘려보내야 한다. 여기서 만약에 여성이 생리주기가 일정하지 않다고 하면 한번 실패할 경우에 훨씬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임신 시도를 위해 준비하는 많은 분들이 느끼시겠지만 생각보다 임신 확률이 높은 기간인 가임기는 그렇게 길지 않다. 성공확률을 높이려면 가임에 맞춰서 부부관계를 시도해야 하는데, 부부관계라는 게 가장 높은 수준의 스킨십이다 보니 기계적으로 접근(...)하는 게 쉽지 않다.
만약 가임기 기간에 남편과 싸우기라도 해서 냉전 중이라면? 한 달을 그냥 또 보내야 하는 거다. 임신은 시간싸움인데, 이 기간에 서로 감정이 틀어져서 한 달을 보내버리면 또 거기에 대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더해져야 할지... 생각만 해도 깝깝하다.
임신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결혼 준비 때 가입해 두었던 맘 카페에 다시 들어가서 여러 가지를 검색해봤더니, 이 과정이 길어질수록 힘들어하는 사람도 많더라.
맘 카페에서는 임신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게시판, 그리고 각종 테스트기(임신테스트기, 베란 테스트기)등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는 게시판들이 많았다. 정확한 의학적 지식이 아니라서 걸러들어야 하는 내용도 적지 않으나,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대략적인 흐름이나 소소한 팁들을 참고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도 적지 않았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맘 카페에 가입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이렇게 첫 시도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어쩔 수 없으니 마음을 가다듬고 몸을 따뜻하게 해 준다는 생강차도 마시고, 찜질도 하면서 몸을 좀 챙기기 시작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임신을 고민할 때는 그렇게 마음이 오락가락하더니, 임신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나니 얼마나 마음이 조급해지는지... 그전까지는 그런 마음이 든 적 없없는데 첫 임신 시도 후 다음 주기를 기다리는 기간 동안에는 친구들의 아기 사진을 보거나 온라인에 유명한 아가들을 보면 왜 나는 내 애기가 없는 거냐며 얼마나 부러워하고 조급해했는지 모른다. (애기가 물건도 아닌데, 아기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더라.)
임신 준비를 하면서 느낀 점은 시간이 참 안 간다는 거였다. 임신테스트기를 써볼 수 있는 시기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다음 가임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등등 대부분의 순간들이 참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더라. 막연히 시간이 흐르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겪으면서 임신이 내 노력으로 된다고 여겼던 것이 얼마나 교만한 생각이었는지 느꼈다.
시간이 흘러 두 번째 시도 후에도 나는 생리 예정일까지 기다리질 못하고 생리 예정일 2~3일 전에 테스트해도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얼리 테스트기를 사서 생리 예정일 2일 전에 냉큼 시도해봤다. 결과는 이번에도 한 줄. 에이씨 하고 얼리 임테기를 화장실 선반 위에 던져놓고 할 일을 하고 나서 오후에 버리려고 봤더니 엥? 희미하게 2줄인 게 아닌가? 바로 맘 카페에 검색해봤더니 시간이 지난 테스트기는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고, 비임신이면 시간이 지나도 단호박 한 줄이라며 임신인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어찌 됐든 하루 지나고 다시 해보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을 터!
임신 초기에는 임신테스트기에 작용하는 호르몬 농도가 낮아서 아침 소변으로 검사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고 하니, 다음날 오전까지 기다렸다 다시 검사해봐야지 생각하고 하루를 기다렸다. 온 신경이 임신테스트기에 쏠려있어서 그런지 어찌나 시간이 안 가는지! 끙끙대며 하루를 기다리고 다음날 테스트기를 다시 해보니 희미하지만 확실히 임테기에 두 줄이 떴다. 오랜 시간 고생하고 애쓰며 준비했던 시험에 찰떡같이 붙은 기분이었다.(딱히 나는 오랜 시간 준비하고 고생하진 않았지만) 침대에서 자고 있던 남편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 한참을 둘이서 테스트기를 쳐다봤다.
어쩐지 유독 시리 기분이 좋아서 이상하다 했다. 원래 나는 생리 시작 전에 PMS(월경 전 증후군)때문인지 유독 시리 짜증이 많이 나고,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기분이 많이 가라앉는 편이다. 그런데 두 줄을 보기 며칠 전부터 남편에게 요즘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고 몇 번이고 말했을 정도로 유독 기분이 좋고 컨디션이 좋았다.
임테기 두 줄을 보고 나서 우리는 조금 이르지만 아기의 태명을 정했다. 이 아이가 내 뱃속에 올 때 내 기분이 정말 좋았으니까, 태명은 기쁨이로 하기로 했다. 엄마를 기쁘게 하는 아기니까!
지금부터는 임신 몇 주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서 검색해보니 임신주수는 첫 생리 시작일을 기준으로 계산한다고 하더라.
임신 4주 차. 기쁨이가 우리한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