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말하지 않나. 결혼하기 전에 상대방에 대해 알아보아야 할 것들 말이다. 인생의 우선순위라든가, 돈에 대한 사고방식이라든가, 부부간의 거리에 대한 견해라든가... 결혼하기 전에 서로의 가치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이제는 너무도 당연해서 굳이 입밖에 꺼내지 않는 말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실제로도 연애기간 동안 수많은 대화를 나눴고, 서로의 가치관을 확인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모든 것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데에 문제없겠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그 결정에 딱히 의문을 품을 만한 일은 없었다. 그런데 첫째 아기가 태어나고 난 뒤, 모든 게 바뀌었다.
"아니, 밥 좀 그냥 대충 해 먹으면 안 돼?"
짜증 섞인 말투로 난 내뱉고 말았다. 그냥 김에 밥 싸서 대충 먹고 치우면 안 되냐고.
남편은 한 시간째 요리를 하고 있었다. 아이는 한 시간째 칭얼대고 있었고 나는 그런 아이를 달래는 데 진이 빠져있었다. 밥은 대충 먹어도 되니 아이나 좀 봐줬으면 싶었다.
요리 잘하는 남편과 결혼하는 건 내 꿈 중 하나였다. 남편은 결혼 전 자취를 했었고, 처음엔 별로였으나, 나를 만나고 난 후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더니 이제는 레시피 따위 보지도 않고 그럴싸한 요리를 뚝딱 만들어낸다. 요리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던 공통 취미이기도 했고,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곁들여 이야기를 나누는 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니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깨어있는 시간은 아이와 함께해야 했다.
내가 요리와 음식을 좋아했던 건, 책 읽을 시간도 있고, 영화 볼 시간도 있고, 산책할 시간도 있는 그런 삶 속에서였다. 아이의 탄생과 함께 자유 시간이 줄어들자 밥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나도 몰랐다. 책과 영화, 산책, 친구들과의 만남 등등이 있는 삶이라는 게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그럴 시간이 없는 삶은 상상도 못 했다. 우선순위를 생각해야 할 이유라곤 아무것도 없었는데, 아이가 태어나자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엇 하나를 골라야 했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첫 아이를 키울 때는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내 앞에 놓인 이 작은 생명이 어찌 될까 봐 조마조마하며 키웠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숨은 쉬는지 가슴에 가만히 손을 올려보곤 했다. 가혹한 노동량에 몸도 지치고, 예민해진 신경에 마음도 지쳤다. 사소한 불만들이 자꾸 쌓여만 갔다. 가령 이런 것들 말이다.
• 가사라는 게 칼로 자르듯 딱 반으로 나누기 어렵다 하지만, 아니 그래서인지, 항상 나만 더 많이 하는 거 같다.
• 남편 손 씻는 것도 맘에 안 찬다. 물로 먼지만 털어내는 거 같다. 세균 범벅인 손으로 아기를 만지는 것 같다.
• 내 생활은 완전히 변했는데, 똑같이 양복 입고 머리를 손질하고 회사에 나가는 남편이 얄밉다.
불만들이 쌓이다 보니 그렇더라.
밥 차려주는 데 뭐가 불만이냐 싶으시겠지만, 한 번 눈에 안 차기 시작하니 같은 행동도 달리 보였다. '애 보기 싫어서 요리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밥이 중요한가?' 싶기도 하더라. 남편은 나를 위한다고 요리를 해주는 것일 텐데 말이다.
결혼 전에 아무리 서로의 가치관에 대해 탐색한다 해도, 아이를 낳고 나면 나조차도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나의 가치관도 삶에 대한 태도도 바뀌기도 한다. 나도 그런데 상대방이라고 오죽하랴. 결혼은 모험이라고들 하나, 내 결혼은 아이를 낳고 나서 더욱더, 아니 비로소 모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