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곳은 여전히 힘들다.
안전지대 밖으로. 어디선가 읽었던 구절이다. 내 경계 바깥으로 나가봐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기에 도전하라는 말인데, 나서기 싫어하던 어릴 때 모습이 생각나 기억에 남았나 보다. 뭐 그렇다고 지금도 크게 적극적으로 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달라진 건 하나 있다. 도전을 예전만큼 주저하진 않는다는 거.
산타모니카에 도착한 첫날 저녁의 일이다. 숙소에서 시내 도보 투어를 한다는 포스터를 발견했는데 예전의 나였다면 분명 재밌겠단 생각만 하고 말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여행 중이었고, 또 여행이 주는 그 특유의 활력 덕분이었는지 생각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신청까지 해버렸다.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니겠지만 나에겐 그렇게 사소한 것부터 하나씩 바깥으로 나선 셈이다.
도보 투어엔 나와 비슷한 여행객들이 많았다. 다른 점이라면 출신 국가. 대부분 유럽 아니면 남미 사람들로 아시아인은 나뿐이었다. 뭐 이런 경험이 없었던 건 아니었기에 놀라진 않았다. 오히려 놀랐던 건 따로 있었다. 투어 직원이 데려간 곳. 지하의 어느 바였는데 내부는 어둡고 시끄러운 게 썩 마음에 들진 않는 곳이었다. 아니 분명 도보 투어라고 했는데.
사람 많은 곳은 여전히 싫다. 차라리 조용하고 정적인 대화를 선호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건 예외다. 그건 시끄럽든 말든 상관없다. 하지만 여긴 노랫소리보다 사람들 말하는 게 더 시끄러워 적응하기 힘들었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 아니겠냐며 적극적으로 대화에 껴볼까 싶다가도, 괜히 '억지텐션' 같고 딱 질색이라 그냥 가만히 있었다. 사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그건 이미 실패다. 마음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지 않는 일들은 대부분 결과가 좋지 못했으니까. 나의 경우엔 그랬다.
하지만 세상엔 마음에 드는 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건 모두가 안다. 가끔은 의무나 책임 때문에 해야 할 일도 있고 참아야 할 게 생기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들은 만족감이 떨어진다는 것 또한 모두가 잘 알지 않나.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속 편하게 도전하라고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어둡고 시끄럽던 바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억지로 찾고 싶진 않다. 그것도 그 나름대로 '억지'라 질색이니까. 다만 그때의 경험에서 느낀 건 있다. 돌이켜보면 그때 아니면 절대 겪지 못했을 일들이었고, 때때로 예상치 못했던 재미도 있었으니. 싫은 걸 억지로 하진 않았지만 나름의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싫은 일에 책임과 의무가 엮여있다면 확실히 다른 얘기다. 이것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할 자신은 없다. 그리고 생각보다 싫은 일에도 필요한 게 있고 도움이 되는 일도 있으니 단번에 무시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여전히 이 질문은 나에게 어렵다. 어떤 번뜩이는 생각을 쓰고 싶다가도, 막상 보면 어쭙잖은 모습이라 다시 머뭇거릴 때가 많다. 차라리 그런 애매한 모순적인 말보단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더 낫겠다 싶어 글을 고치고 또 고친다.
'Connecting the dots'란 말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 했던 얘긴데, 과거의 경험들이 결국 현재 그리고 미래와 연결된다는 이야기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예전엔 별로였던 경험들이 언젠가 다른 의미로 연결될 때가 있다. 나의 경우엔 사소하지만 영감이 되었고, 또 어쩔 땐 인연이 되기도 했다. 정말 사람 일은 모르나 보다.
도전이라는 메커니즘도 그렇다. 처음엔 호기롭게 도전하지만 막상 해보면 괜히 했나 싶은 기분. 하지만 그게 언젠가 여러 방면으로 결국 내 자양분이 된다. 깔끔하게 포장된 식물영양제, 아니면 밭에서 본 퀘퀘한 거름. 그 차이겠지만 둘 다 도움이 되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도전하자고 외칠 자신은 없다. 모두가 같은 상황이 아닌 걸 아니까. 다만 이 얘기는 하고 싶다. 크진 않지만 사소한 걸음들이 하나씩이 쌓여 나의 경계를 넓혀줬다고. 처음엔 맞지 않은 옷처럼 답답할 순 있지만 거기서 적당한 즐거움을 찾는다면, 혹 그렇지 않았더라도, 결국엔 그게 내 이야기가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