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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서인 Jun 28. 2022

눈물의 LA도착

 기대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생각지도 못한 일 때문에 좌절을 겪을 때가 있다. 내겐 미국 여행 첫날이 그랬다. 항공사 측에서 캐리어를 잃어버린 것이다. 최악의 시작이다. 어쩐지 공항은 더 낡아 보이고 직원들은 불친절해 보인다. 바깥 날씨는 또 왜 이렇게 흐린지. 공항 밖 도로에 주저앉아 내 캐리어를 놓고 온 누군가를 그렇게나 원망했다. 왜 그러셨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지갑과 핸드폰이다. 이거라도 없었으면 더 암울했겠지. 공항에선 캐리어를 찾으면 숙소로 보내준다고 했다. 별일 아니라는 직원의 태도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게 아메리칸 스타일인가, 궁시렁대는 사이 버스가 왔다. 숙소로 가는 버스였다. 불친절인지 불운인지 알 수 없는 지금의 우울한 상황에서, 혹시나 버스도 잘못 탄 건 아닐까 연신 핸드폰 지도를 확인했다. 다행히 버스는 제대로 가고 있었다.


숙소는 산타모니카 해변 근처였다. 공항과 멀어질수록 분위기는 확실히 달랐다. 그즈음 나는 버스를 내려 산타모니카 중심부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관광지 특유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느껴지던 때, 갑자기 어디선가 익숙한 노래가 들려왔다. 좋아하던 래퍼 J.Cole의 She knows라는 노래였다. 두 명의 무명 음악가들이 밴드 세션을 이뤄 연주하고 있는 중이었다. 노래가 드럼과 스피커에서 거리로 울려 퍼지는 모습이 묘한 느낌이었다.


노랫소리로 가득 찬 산타모니카의 거리는 평화로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딘지 설렘에 가득 찬 모습이었고 덩달아 나까지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 순간 지금이 미국 여행 중임을, 그것도 첫날임을 실감했다. 나는 잠깐 버스킹 연주를 들으며 거리를 감상하기로 했다. 캐리어가 없이도 나는 산타모니카의 분위기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잃어버린 캐리어는 언젠가 돌아올 거다. 누가 훔쳐 간 건 아닐 테고, 직항이었으니 중간에 잃어버릴 일도 없었을 거다. 하늘을 보니 해는 점점 지고 있었다. 해가 지는 산타모니카의 거리는 유난히 더 운치 있어 보였다. 좀 전까지 느껴지던 분노가 어느새 설렘으로 바뀐 걸 알아차렸을 때, 사소한 사건이 하루 전체의 기분을 망치도록 내버려 둘 필요가 없다는 책 속의 어느 구절이 머리에 떠올랐다. 하물며 내 여행도 마찬가지 아닐까.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기건 그게 여행 전체를 망치게 내버려 둘 순 없다. 여행은 이제 막 시작했고 나는 지금 여기에 서있으니까. 알 수 없는 의연함과 통제감이 들었다. 그런 기분 속에 바라본 산타모니카의 거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산타모니카 거리에서 본 버스킹
진짜 '미국' 그 자체인 할아버지의 감동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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