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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깰바자 Nov 13. 2017

걷다 보면

머릿속 이야기보다 몸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여야겠습니다


밤새 비가 내려도 내딛는 발걸음이 더디지 않습니다.

삼삼오오 혹은 혼자서 걸어가는 긴 행렬이 한 치의 의심 없이 굳게 이어지는 건

저마다 가진 무게를 이기기 위한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라 여겼습니다.

반드시 이기고 돌아오리라

혼자 출발한 이 길에서 혼자 답을 얻어 가리라

많은 의미를 부여해놓고 사뭇 비장하기까지 한 마음이었습니다.     


밤새 걷다 쉬다 또 걷다 보니 짓누르던 무게도, 얻어야 할 답도 곁에 없었습니다.

사지육신을 쉼 없이 움직여서 목적지까지 도달한다는 의미가 이런 것이구나                      

인간으로 한 차원 높아지는 게 아니라 

자연으로 한 발짝 동화되는 거

머리보다 몸이 먼저 깨닫습니다.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는 길

부슬 내리는 촉촉한 안개비

흠뻑 빨아들인 듯 생경한 기운의 나무와 풀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싶으면 슬그머니 나타나는 고갯길

금세 죽겠다고 숨을 내뱉다 스치는 찬바람에 얼굴을 들이미는 사람들     

마치 약 올리듯 유혹하듯 

밤새 어르고 달래는 자연에 나도 모르게 온전히 자연스러워집니다.

이미 풀지 못한 숙제는 도망 간지 오랩니다.

머릿속 이야기보다 몸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여야겠습니다.     


이걸 이 많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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