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가 미쳤지...
눈을 꼭 감고 변기를 부여잡고 되뇐다.
내가 미쳤지.. 해낼 수 있을까..? 못하면 어쩔 건데....
임테기 두줄을 본 순간 가장 두려웠던 것은 수술도(첫째가 제왕절개였다), 훗배앓이도 아닌 입덧이었다.
첫째 때 임신을 알았던 5주 차부터 21주까지 장장 16주, 네 달을 토쟁이로 살았었다.
먹덧(속이 비면 토함), 토덧(먹으면 토함), 침덧(침을 삼키면 토함), 양치 덧(양치하면 토함)이 환장의 콜라보로 들이닥쳐 심신이 너덜너덜 해졌었더랬지.
어떤 기분이냐면
신입생이 MT를 가서 주량도 모르고 소맥을 원샷하며 진탕 마신 다음날 초록색만 보면 토할 것 같은데, 에어컨이 고장 난 만석 버스 제일 뒷좌석에 거꾸로 탄 기분이랄까. 이런 울렁거림이 네 달간 밤낮없이 지속됐었다.
하루 일과가 먹고 토하기였는데 두 달은 집 밖에 나갈 수도 없었다. 코는 또 얼마나 개코가 됐던지 세상의 모든 냄새가 날 공격하는 것 같아 냉장고 문은 열 엄두도 못 내고 샴푸, 로션도 쓰지 못했다. 그토록 생명수처럼 마시던 커피 냄새에 토했던 날은 치미는 짜증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었다. 난 삶의 낙이 없어졌어 엉엉엉.
그때 약간의 우울증이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증상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과 무지가 제일 큰 이유였다. 학교에선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하고 착상돼서 열 달 있으면 태어난다고만 했지 이런 걸 알려주지 않았잖아.
드라마에선 밥 먹다 읍읍! 하며 뛰쳐나가는 정도였지 변기에 앉아 응가를 할 때마다 토가 나오면 어쩌지 변기는 하나인데.. 라며 세상 구질구질한 걱정을 하는 건 안 나왔잖아....
냉면을 먹고 토하면 뱃속에 불어 엉킨 덩어리가 올라오지 못해 얼굴에 실핏줄이 다 터지니까 피하라던지 주스를 먹고 토하면 위산이랑 합쳐서 목구멍이 싹 벗겨진다는 이야기도 안 해줬잖아.
둘째라고 별반 다르지 않은 입덧이지만 나름의 소소한 노하우로 지내는 요즘이다. 변기 뚜껑을 열 때부터 눈을 감고 한 번에 왁 토하고 잽싸게 물을 내린다던지.. 먹고 토하기 쉬운 부드러운 음식 위주로 골라먹는다던지..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하네....
그래도 이번엔 몸은 힘들어도 우울감은 덜하다.
엄마 엄마 놀아줘 엄마 이리 와 엄마 엄마 외쳐대는 세 살짜리 에너자이저가 내 정신을 쏙 빼기도 하지만 이제는 입덧도 끝이 있다는 걸 확실히 알기 때문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
바람 빠진 고무풍선처럼 침대에 널브러져 주문처럼 되뇐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