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밥을 지어주는 마음

생각도 못한 밥을 받았다.

by 구르는 굼벵이

3명이 4~5시간 정도면 끝날 양이었다. 집 정리인데 안방과 옷방을 바꾸고 옷을 정리하면 된다. 혼자 사는 남자 고객님. 옷도 물건도 적다. 점심을 먹지 않고 9시에 시작해 1시에서 2시 사이 끝내기로 했다.

한참 일하는 중, 고소한 부침개 냄새가 난다. 어느 집에서 창문 열고 부침개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고객님이 감자전을 했다며 내주신다. 치즈가 깔린 감자채전. 손이 많이 가서 잘 안 해 먹는 귀한 음식. 감사인사를 여러 번 하며 맛있게 먹는다. 일하는 동안 주방에서 뭔가 씻고 써는 소리가 났는데 이걸 만드셨구나. 나를 위한 수고에 마음이 몽글.

일은 1시 전에 끝났다. 일이 끝날 때까지 고객님은 주방에 계셨다. 씻고 썰고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계속. 쉬는 날 이렇게 계속 집안일을 하다니, 쉬는 날이면 거의 종일 누워있는 나를 반성했다. 저런 부지런함은 어디서 나올까, 체력이 받침 되어야 할까 혼자 고민.

그런데 일이 끝나고. 고객님은 점심을 차려놨다며 같이 먹자고 하신다. 식탁엔 갖지은 밥과 김치찌개, 오리고기배추찜, 호박무침, 파채무침, 김치 등이 예쁘게 차려져 있다. 어머나...

남이 차려준 밥상은 처음이다. 하물며 오늘 처음 본 사람이다. 남을 위해 밥을 지어 상을 차려주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나는 못할 것 같은데. 아까의 감자전보다 더 수고가 깃든 식탁에 마음이 뭉클.


먹는 양이 적고 잘 체하는 나는 감자전을 먹은 지 얼마 안 되고 밥과 찌개의 양이 적지 않아 소화가 걱정이 되었지만 떠주신 걸 남김없이 먹었다. 즐거운 대화가 오가고, 체하진 않았다.

오늘 받은 식탁은, 나를 위한 남의 수고, 주방에서 났던 물소리,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살아가는데 남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