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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Oct 12. 2022

마음을 빼앗기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 0.1초

아기동물들과 만나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가능할까?

  13세기 시인 단테는 서로 대화 한마디 해본 적 없는 여인 베아트리체에게 한눈에 사랑에 빠져 평생 동안 잊지 못했다고 하며, 고전소설 레미제라블에서는 코제트와 마리우스가 거리에서 보자마자 천둥같이 서로에게 이끌리게 되기도 하고,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셀린과 제시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한마디를 나누었을 뿐인데 마법처럼 서로에게 빠져들어 평생을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이렇듯 유명한 세기의 러브스토리나 영화에서의 사랑은 시작부터 첫눈에 반한다는 설정이 종종 등장하곤 한다. 이로써 그들의 관계는 좀 더 운명적인 것이 되고, 로맨틱한 이야기가 극적으로 전개되게 된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첫눈에 사랑하게 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게다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것은 고사하고 진정한 사랑이나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지... 점점 푸석푸석 메말라 가는 느낌이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다


  그렇지만 동물을 한눈에 사랑하게 되는 일은 자주 목격하게 된다. 재미로 훑어보던 분양 사이트에서 한 아이에게 (특별히 예쁘지도 않은 것 같은데도) 어쩐지 눈을 뗄 수 없어 며칠을 상사병을 앓다가 결국 입양을 결정하기도 하고, 보호를 위해 병원에 맡겨져 있던 유기견에게 마음을 빼앗겨 둘째로 덜컥 맞이하게 되기도 하며 출퇴근 때마다 길목에서 눈인사를 하는 고양이에게 영혼을 팔려 정신 차려보니 가족이 되어있기도 하다. 

  우리 집 고양이도 어느 날 한 웹사이트에서 아기 고양이를 가정 분양한다는 글을 보고 홀린 듯이 직접 찾아가 본 집에서,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다가 엄마 고양이에게 목덜미를 물려 질질 끌려오는 덜떨어진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해 바로 입양을 결정하게 되었었다. 

  정말 마음을 뺏기는 데 걸리는 시간은 0.1초인 듯하다. 



  마음으로 낳는다


  동물병원에 입원해 있는 여러 동물들 중에, 아무래도 많이 아프고 손이 많이 가는 환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비율이 높지만, 아주 어린 동물들도 입원을 상당히 많이 한다. 기생충 감염으로 인한 설사에서부터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심각할 질환까지 다양한 질병으로 입원하게 되는데, 중환자의 경우에는 어르신 동물 못지않은 위중함을 가진 경우도 많고, 보호자분들의 걱정도 또한, 15년을 함께 산 경우와 5개월을 함께 산 경우가 크게 다르지 않다. 

  아기 동물들은 보호자와 같이 지낸 시간이 얼마 안 되어서 정이 깊게 들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였기 때문에 보호자분이 큰 금액이 드는 치료에 적극적이지 않을 것 같지만 놀랍게도 사실상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며칠만 집에 같이 있어도 이미 그 아이들은 보호자분이 마음으로 낳은 아이가 되어있다. 



  동물병원의 아기 환자들


  아기 동물들이 병원에 오게 되는 이유는 선천적인 기형이 있어서 문제가 생긴 경우, 너무 작은 탓에 보호자가 못 보고 밟아서 다친 경우, 면역력이 아직 없어서 전염병에 걸려버린 경우, 보호자가 넘어뜨린 물건에 깔린 경우, 길에서 데려온 아이라 각종 피부병에 걸려있는 경우 등 아주 다양하다. 

  아기들은 특유의 발랄함이 있기 마련인데 아픈 아이들은 그 정도에 따라 그 발랄함을 잃게 된다. 지금 자기가 아프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입원장 안을 질주하며 달리는 아이들부터 기력이 전혀 없어 추울까 봐 깔아준 담요 속으로 기어들어가 꼼짝을 안 해서, 대충 봐서는 환자가 입원장 안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가만히 있는 아이들도 있다. 

  아주 작아서 한 손에 포옥 들어오는 크기의 아이들이 힘이 없이 옆으로 추욱 쳐져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 다 큰 아이들이 아픈 것을 볼 때와는 또 다른 가슴 아픔이 있다. 자꾸만 눈이 가고, 좀 더 안쓰럽다. 

  혈관이 너무 얇아 보이지도 않는 아이들은 투약용 카테터를 그나마 가장 두꺼운 혈관인 목정맥에 단 채로 붕대를 하고 있기도 하고, 아무리 작게 잘라 채워줘도 목 주위에 씌워둔 넥 카라는 너무 커 보인다. 몸이 정상적인 발육을 하지 못해 머리만 너무 커 보여 자동차 대시보드에 붙여두는 머리가 힘없이 흔들흔들하는 인형 같아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몸무게가 1kg이 채 안 되는 아기들은 수액도 너무 조금밖에 줄 수가 없고, 항생제 하나를 써도 너무 독할까 봐 매우 조심히 처치해야 한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입원장 한 구석에서 참새처럼 몸을 웅크리고 하루 종일 졸고만 있는 모습이나, 스스로 먹지 못해 새끼손가락으로 그 작은 입에 먹이를 억지로 넣어주어도 입 옆으로 흘리며 삼키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된다. 



  아기 동물들의 보호자


  어제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왔어요. 퇴근 후 집에 가는 길에 아파 보이는 애기 고양이를 만났는데 며칠을 지켜봐도 어미가 주위에 없는 것 같아서 데리고 왔어요. 차 타고 길을 가는데 이 고양이가 차도에 혼자 있길래 치어 죽을까 봐 데리고 왔어요. 아직은 세상이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게 해주는 선한 사람들이 방금 만난 개, 고양이를 아직은 어색하게 안고, 혹은 주위에서 되는대로 구한 골판지 박스에 어떻게든 넣어서 데려오신다. 

  그런데 차마 외면하지 못한 따뜻한 마음으로 데려온 그 아이가 알고 보니 많이 아픈 아이였다면? 

  하루에 몇십만 원씩 들여서 치료해야 하고, 입원을 며칠 동안이나 해야 나을지 기약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수의사가 말한다면? 그래도 방금 만난 이 아이를 최선을 다해 살리려고 할 수 있을까? 

  정말 놀랍게도 이런 경우 (조금 고민을 하시기는 하지만) 최선을 다 해보겠다고 하시는 경우가 치료를 포기하고 그냥 데려가시는 경우보다 더 많다. 

  어제 데리고 왔는데?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 어떻게 저러실 수가 있을까 싶지만 보통 그 어린아이의 눈을 저버리지 못하고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조건 없는 사랑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나이가 지긋한 동물들의 중환을 지켜보는 묵직함도 그렇지만, 아직 어려 그토록 작은 몸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는 안타까움 또한 못지않다. 작은 생명 하나를 온 마음으로 사랑하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마음으로 낳은 아이.

  찰나의 시간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평생을 함께 할 인연이 되어버린 그 작은 생명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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