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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Oct 21. 2022

버려진 너를 사랑한다는 것

동물병원의 유기동물



  안돼, 써니야! 가지 마!!

  써니가 떠나는 꿈을 또 꾸었구나... 울면서 잠에서 깬다.

꿈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내가 잊은 줄 알았던 깊은 감정이 방심하면 올라온다.




  햇병아리 수의사 시절, 내가 근무했던 병원은 모든 인원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꽤 큰 병원이었다. 다들 빠른 걸음을 재촉하며 동분서주하는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하루 종일을 구석진 철제 케이지에 갇혀 지박령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이름은 써니.


   처음에 그 개가 있는 줄도 몰랐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

  병원 분위기에 적응하고, 일에 익숙해지는 것만으로도 벅찬 초입 시절이었고, 내 하루는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 개는 일반적인 입원장이나 처치실과는 거리가 있는 병원 2층 외떨어진 위치에 있었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 누구도 신경 써서 산책을 시켜주지도, 관심을 주지도 않았고 겨우 밥만 먹으며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저 아이는 왜 저기 계속 있는 거예요?"

  "예전에 아파서 온 환자인데 보호자가 돈이 없어서 데려가지 않고 병원에 버렸대요."

  아... 아픔이 있는 아이였구나. 차츰 일에 적응하여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가기 시작할 무렵, 써니가 새삼스레 눈에 밟히기 시작하였다.

  



  써니는 몸집이 작아 6kg 정도밖에 안 되는 옅은 갈색 코카스파니엘이었다.

  간이 망가져서 입원했는데 수백만 원의 입원비를 내지 못한 보호자가 아이를 병원에 버리고 연락을 두절하는 최악의 선택을 하셨고, 써니는 병원 한쪽 구석에서 그야말로 숨만 쉬며 눈칫밥을 먹으며 사는 신세가 되었다.


  써니가 지냈던 철제장은 사람이나 다른 개의 이동이 거의 없는 곳에 있었고, 써니는 어쩌다가 테크니션 선생님들이 밥을 주거나 배변을 치워주러 가끔 들르는 외에는 혼자 갇혀 지냈다. 케이지 바닥에 철푸덕 엎드려 밖으로 코만 내밀고 미동조차 없이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털이 관리가 안된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엉키고 제멋대로 자라나 눈도 털에 다 가려져 보이지 않고 코만 겨우 보였는데, 대충 보면 대걸레와 흡사한 외양이었다. 냄새는 어떻고. 목욕을 언제 한 건지 알아보고 싶지도 않았다.


  어느 날, 난 갑자기 계속 써니를 저대로 둘 수는 없다는 강한 생각이 들었다.

  근무 시간이 끝나고 써니를 남들 몰래 병원 내 으슥한 목욕 시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털을 싹 밀고 목욕을 시켜주었다. 엉킨 털에서부터 드러난 써니의 실체는... 거짓말 살짝 보태서 나는 이제껏 써니만큼 예쁘게 생긴 코카스파니엘을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까만 눈동자가 드러나고 약간 우울하지만 순하기 그지없는 표정이 드러났다.




  그날부터 써니는 이제 2층 구석에 상주하는 지박령 강아지가 아니라, 내 마음속 중심부에 자리 잡은 강아지가 되어갔다.

  병원 소유인 강아지를 내가 멋대로 목욕시켜주고 털도 밀어주고 밖에 산책도 데리고 다니는 게 여간 눈치 보이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원장님 눈을 철저히 피해, 퇴근 이후 밤 시간을 이용해 목욕, 미용만 시켜주는 정도였고, 점점 내가 근무 중에도 시간이 날 때에는 써니를 원내에 풀어놓아주고, 산책할 수 있는 시간을 늘려주었다. 더 나중에는 써니를 아예 쉬는 날 우리 집에 데려가서 산에도 데려가 주고 운동장에 데려가 달리기도 시켜주었다. 야외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 가서 같이 앉아있기도 했다. 써니는 이제 내 개였다.


  어느 순간부터 병원에 있는 시간 동안 써니는 내 발걸음 소리만 기다렸다. 여전히 2층이 주된 써니의 공간이었는데 내가 2층 근처에 오는지 보고 있는 게 써니의 일과였다. 창문을 통해서 내 머리꼭지라도 보이면 뛰쳐나와서 눈을 빛내고 엉덩이를 흔들며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테크니션 선생님들도 써니가 관리를 잘 받으며 그나마 개답게 지내는 것을 조용히 기뻐했고, 나와 써니의 시간을 응원했다.




  나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써니가 나를 그렇게 좋아하게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그러려면 원장님과 먼저 담판을 지었어야 했다. 써니, 제가 입양하겠다고. 그렇게 해주신다고 하시면 그때부터 사랑했어야 했다.


  그 병원에서 1년여를 일한 뒤, 나는 다른 병원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이미 써니는 병원에서 암묵적으로 내 개였고, 모두들 당연히 내가 데려가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원장님께 용기를 내어 말씀드렸다. 써니를 데려가게 해 달라고.

  나는 너무 순진했다. 써니는 병원에서 공혈견으로 이용되는 강아지도 아니었고, 병원 입장에서는 데리고 있어도 아무런 이득이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밥만 축내고 인력만 축내는 강아지를 계속 병원에 데리고 있고 싶어 하지 않으실 거라고 내심 확신했다.

  그렇지만 결론은 No. 원장님은 써니를 놓아주지 않으셨다. 나는 애걸복걸했다. 쉬는 날에도 문자를 보내 귀찮게 해 드렸고, 이건 제가 원하는 것일 뿐 아니라, 써니를 위해서이다, 써니가 또 버려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써니를 위해서 한 번만 더 생각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렇지만 원장님은 생각을 바꾸지 않으셨다.

  



  내가 이직을 한 병원은 지역이 달랐고, 버스로 3시간 거리였다.

  써니가 남겨진 병원의 소식을 친하게 지내던 테크니션 선생님이 간간히 알려줬다. 써니는 내가 안보이기 시작하고부터 병원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불안해했고, 급기야는 (아마도 나를 찾으러) 병원 밖으로 탈출을 하는 바람에 유기견이 될 뻔했다는 것이다. 테크니션 선생님이 써니가 사라진 걸 알고 부리나케 뛰쳐나가 근처에서 찾아내어 데리고 오긴 했지만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 한다.


  나는 죄책감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시는 때도 없이 눈물이 계속 났다.

  써니한테 내가 정말 못할 짓을 했구나. 영문도 모르고 또 버려졌다고 생각하겠구나. 미안해서 마음이 아렸다.


  난 이 일 이후로 병원에 버려진 개들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한다.

  잠시 정들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겠지만, 내가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수 있기 문에, 그 아이의 마음에 다시 한번 큰 상처를 남길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적당히 거리를 두는 법을 익혀간다.

  보호자가 있고,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갈 것이 확실한 아이들은 마음껏 예뻐해 줄 수 있지만, 버려진 아이들은 그만치 티 나게 사랑해주기 어렵다. 제2의 써니처럼 될까 봐. 그 아이가 나를 사랑하게 될까 봐.




  동물병원에서는 이런 유사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

  예전에 다니던 병원에서는, 한 보호자분이 병원비가 너무 비싸다고 하시며 완치가 보장된 게 아니라면 치료하지 않겠다며 포기한 강아지를 원장님이 일단 무료로 수술을 해서 살려 놓으면 보호자분이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시고 수술을 진행한 적이 있다. 수술 후 강아지는 목숨은 건졌지만 뇌에 손상이 영구적으로 남아 안타깝게도 완전히 정상 생활을 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눈이 멀었고 밥도 일반적인 강아지들처럼 먹지 못하였다.

  수술과 회복, 재활 등 한참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아이가 기적처럼 나아 정상화되길 바라며 뒷바라지를 도맡아 했던 테크니션 선생님이 있었다. 20대 초반의 마음이 아주 착한 선생님이었는데, 나는 그 선생님이 더 이상 정을 주지 않기를 바랐다. 저 강아지는 보호자가 데려가지 않으면 결국 안락사될 가능성이 높은데... 저렇게 정을 주다가 어쩌려고... 하는 마음이 들어서 안쓰러웠다.

  슬프게도 나의 예감은 적중했다. 결국 그 강아지는 보호자가 정상이 아니라면 데려가지 않겠다고 포기하시는 바람에 안락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몇 달간 병원에서 정이 들었던 그 강아지는 병원 냉장고 냉동실에 보관되었다. 그 아이에게 유난히도 정성을 다 했던 그 테크니션 선생님은 하루 종일 누가 봐도 엉엉 울었구나 알만큼 눈이 퉁퉁 부은 채로 근무를 했다.




  써니는 나중에 이야기를 전해 듣기로, 그 병원을 다니던 보호자분의 눈에 들어 결국 입양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 우리 써니 미모가 보통 미모가 아닌데! 누구든 데려가고 싶어 했을 거야.

  그 집에 가서 처음에는 적응을 못하고 풀이 죽어있다가 나중에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잘 지냈다는데... 좋은 분과 결국 가족이 되었다니 정말 안심이 되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써니는 두 번의 버림을 받았고, 세 번 이어서는 안 된다. 그 분과 죽을 때까지 잘 지내겠지... 이제 써니의 연락을 건너 건너서라도 들을 방법은 없겠구나...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써니는 나이가 아주 많거나 아니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써니가 아프지 않았길... 몸도 마음도. 끝까지 행복했길...


  동물병원에서 버려진 동물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은 생각보다 낭만적인 일이 아니다.

  내가 다칠 수도 있고, 그 아이가 다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동물들을 버리는 사람들이 야속하고 더욱 미워진다. 그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 이해를 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아무래도 너무 밉다.

  보호자에게 반려동물은 보호자가 속한 여러 세계 중 하나이지만, 반려동물에게 보호자는 단 하나의 우주라는 것을 기억해주시길.

  내 앞에 있는 사랑스러운 이 아이를 기를 쓰며 사랑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하는 이런 상황이 정말 다시는 동물병원에서 발생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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