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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Oct 27. 2022

수의사는 채식주의자?!

수의사라는 직업



  "수의사이시면, 마음이 참 따뜻하시겠어요."

  '그.. 그런가... 나 좀 전에 운전하다가 앞차에 욕도 한마디 한 것 같은데...'

  "수의사이시면, 고기 안 먹어요?"

  '저... 거의 육식동물인데요...'

  "수의사이시면, 돈 많이 벌지요?"

  '저... 월급쟁이...'


  수의사를 처음 만나보는 사람들은 수의사라는 직업을 꽤나 독특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수의사는 모든 동물을 매우 매우 좋아할 거라 생각한다던지 무턱대고 돈을 많이 벌거라고 생각한다던지 고기를 안 먹고 채식을 할 거라 생각한다던지 말이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서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있는 자리에서는 웬만하면 내가 수의사라는 말을 먼저 잘 꺼내지 않는다.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고, 자칫 잘못하면 (나도 모르는) 온갖 동물들의 행동에 대한 대변(?)을 해야 하는 어색한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수의사에게 지워지는 도덕적 잣대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말 못 하는 동물을 돕는 직업이라 생각하셔서 그런지, 수의사는 마음에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들을 많이 하신다.

  길 고양이를 데려와서 무턱대고 '무료로 살려내라, 그러지 않으면 너는 형편없는 수의사임'이라는 언행을 시전 하시는 분들도 예전에는 종종 볼 수 있었고, 수의사가 왜 고기를 먹냐며 돼지랑 소는 안 불쌍하냐고 묻는 분들도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라는 영화를 보고 채식주의자가 되어볼까 5분 정도 생각한 적은 있지만 나는 고기를 좋아한다.


  자신이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 쉽다고 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겠지만 수의사는 개, 고양이를 싫어해서는 참 하기 힘든 직업이다. 그렇다고 모든 수의사가 아픈 동물을 차마 눈뜨고는 보지 못하는 정도의 측은지심을 장착하고 있지는 않다. 그들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나만해도 길에서 비둘기를 만나면 썩 반갑지 않고 슬슬 피해 다니게 되고, 다리를 저는 길고양이를 만나도 모두 데려와서 치료해줘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지는 않는다.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하고 치료해주는 직업이 썩 만족스럽고 보람도 느끼지만 솔직히 수의사는 보통 힘든 직업이 아니다.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자식을 낳으면 수의대는 절대 안 보낸다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수의사라는 직업은 특수성이 있다고 본다. 일단 진료해야 하는 질환의 범위가 매우 넓다.

  피부질환, 안질환, 심장질환, 감염성 질환, 신경계 질환, 근골격계 질환, 내분비계 질환, 종양성 질환 등 사람으로 치면 종합 병원 몇 개 동에서 진행할 검사와 치료를 한 공간에서 해결해야 한다. 물론 요즘은 전문 분야를 더 깊게 하는 전공의가 생기고 점차 세분화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거의 모든 수의사는 대부분 분야의 진료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공부해야 할 범위가 너무 넓다는 것을 차치 하고라도 다른 어려움들도 많다.

  A진료에서 상태가 많이 안 좋은 질환 말기 환자 진료를 보며 울며 불며 보호자와 죽음에 대한 무거운 이야기를 하다가도 1분 뒤에는 B진료에서 깡충깡충 뛰는 아기 고양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보호자 분과 만나 웃으며 예방접종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하기도 한다. 사람의 기분이 그렇게 순식간에 변할 수 없다 보니 그런 날은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수의사는 치료를 하고 있는 주체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없는 반려동물이기 때문에 환자의 상태와 심정을 대변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ㅇㅇ는 지금 두통이 있을 수 있어요. 머리 아프다는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 뇌 병변이면 분명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 있을 겁니다."

  "아... 그럼 어떻게 해줘야 하나요?"

  "뇌압을 낮추는 약물을 사용하고, 염증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주사 처치를 시작해보도록 할게요."

  사실, 환자의 상태를 대변한다고는 하지만 수의사로서도 이 아이가 어느 정도의 통증을 느끼고 있는지 알 방법은 없다. 사람처럼 "자, 현재 통증의 정도는 1부터 10까지 단계가 있다고 쳤을 때 몇 정도라고 보세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환자는 말이 없다. 분명 배가 아픈 것 같은데 뭘 주워 먹으셨는지 도통 말해주지 않으신다. 속 시원하게 "아 아까 장난감 갖고 놀다가 끄트머리에 있던 조그만 부위를 모르고 삼켰어요. 크기는 한 2cm 정도 되는 것 같고 지금 중복부가 되게 아파요."라고 말해준다면...




  그러다 보니, 동물병원에서는 검사가 많아진다.

  말만 해주면 쉽게 좁혀 들어갈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모두 확인하기 전엔 알 수 없기 때문에 광범위한 검사를 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너무 분명해서 포커싱이 되는 경우보다 여러 가지를 늘어놓고 좁혀 들어가야 하는 진료가 더 많다.

  동물 병원은 비싸다며 왜 이렇게 많은 검사를 하냐며 수의사가 딱 보면 어디 아픈지 정도는 알 수 있지 않냐고 하시는 보호자분을 만나면 저도 내림굿 받은 무당은 아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물론 경력을 더해갈수록 몇가지 문진과 검사만으로도 감을 잡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지만 결국 검사로 확인하지 않고 짐작만으로 치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동물병원 수가가 비싸긴 하다. 나는 10년 동안 이런 금액에 익숙해져 있어서 몇 가지 검사를 하면 몇십만 원은 금방 나온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지만 동물병원에 처음 오신 분이 놀라시는 건 이해가 된다.

  몇 년 전, 내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피 좀 뽑고 하더니 10만 원이 나왔단다. 이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왜 그렇게 비싸요?"라는 말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며 그간 비싸다고 실랑이를 벌이던 모든 보호자분들을 단박에 이해하고 말았다.

  동물병원은 의료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다 보니 비쌀 수밖에 없는 것인데, 보호자분께서는 사람 병원에서도 이 돈 잘 안 내는데 여긴 왜 이렇게 비싸냐 싶으실 수 있을 것 같다.




  금액에 대한 상담을 수의사가 직접 한다는 것도 이 직업을 힘들게 하는 여러 원인 중 하나이다.

  피부과에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의사는 이 시술이 얼마인지는 잘 말을 안 해준다. 피부 상태만 파악해주고 시술의 원리를 간단하게 설명해주는 정도로 진료를 끝내고 나오면 '상담실장'이란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여러 가지 시술의 금액과 패키지에 대해서 따로 설명해주고 이분과 결제에 대해 이야기를 마무리하게 된다.

  

  그러나 수의사는 만 원짜리 진료부터 수백만 원짜리 진료까지 모두 직접 설명하고 왜 이런 금액이 나오는지 해명(?)해야 한다. 한창 힘들 때는 보호자 분과 돈 얘기만 안 할 수 있어도 이 직업은 할만한 직업일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웬만한 경우에는 큰 틀에서의 금액만 말씀드리고, 변수에 대한 설명만 간략히 드리면 쿨하게 끝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앞서 말했듯 동물병원은 '비싼'편이고, 모든 보호자분이 돈에 '쿨'하실 수는 없다. 집이 부자이고 가난하고를 떠나서 성향의 탓이 더 크다.


  진료실 안에서 검사비를 만원,천원 단위까지 시시콜콜 확답을 받고, "아 이 정도 검사는 공짜로 해줘~ 서비스도 있어야지~" 이런 대사를 서슴없이 던지시는 보호자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전에 다니던 병원에서 성격이 화통한 한 수의사분은 보호자분이랑 진료실에서 거의 싸우다시피 대화를 하시는데 "아니 여기가 시장도 아니고 뭘 자꾸 깎으려고 하세요?"라는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삐져나온 경우도 있었다. 하아... 수의사도 돈 얘기 안 하고 진료만 볼 수 있는 날이 대한민국에 올까?




  수의사는 체력이 좋아야 한다. 거짓말 좀 보태서 천사장사여야 한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이고 큰 개나 사나운 고양이를 상대하고 나면 내가 치료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곧 치료받게 될 사람이 될 것 같다. 난동 부리고 검사 안 받겠다고 발버둥 치는 아이들과 씨름하는 일이 매일 반복되면서 허리며 손목이 고질적으로 아픈 수의사나 수의 테크니션들이 많다.

  이 녀석들... 너희 아프지 말라고 하는 검사라는 걸 알아달라고!




  나는 내가 수의사인 게 좋다. 그냥 동물을 좋아해서 진료 오는 아이들에게 사심을 채울 수도(?) 있고, 그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고, 진단해서 무슨 질병인지 알아내고 그것을 치료해 나가는 과정이 보람 있고 자아성취도도 높아 나에게 정말 잘 맞는 직업을 용케도 잘 만났다 싶다.


  아픈 동물의 눈을 몇 날 며칠이고 깊이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에 한 번 하기 힘든 경험을 수의사들은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하게 된다.

  환자들의 눈에 비치는 아픔, 공포를 이해하고, 말이 아닌 몸짓을 보며 그들의 상태를 가늠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만 그만큼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큰 보람과 가슴 뭉클함을 자아내는 일이다.

  내 체력이 허락하는 그 날까지 나는 아픈 동물들의 눈을 계속 들여다 보며 살 예정이다. 물론 영상진단의로 살고있는 지금은 아이들의 눈보다 엑스레이나 초음파 검사 사진을 더 많이 보고 있긴 하지만... 나의 진단이 환자의 빠른 치료에 도움이 되었을 때 느끼는 희열은 아마 마약보다 강렬한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마약같은 직업. 수의사. 나는 수의사라는 직업을 정말 사랑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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