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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Oct 07. 2022

우리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동물병원의 밤 풍경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 야간 당직 근무 탓에 홀로 병원을 지키면서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은 참 어지간히도 힘든 일이다. 수의학과 재학 시절, 내일 있을 시험 때문에 꾸역꾸역 밤샘 벼락치기를 하며, "내 평생 다시는 밤샘이란 없다."라고 다짐하며 빈 속에 커피를 들이부었었는데... 임상 수의사가 되면 야간 당직 근무를 설 일이 꼭 생긴다는 것을 몰랐기에 그런 다짐을 할 수 있었다.


  24시간을 운영하는 동물병원들이 많아지면서 입원 환자 관리와 야간 응급 케이스를 소화해야 하는 야간 수의사의 수요가 늘고 있다. 나의 경우에는 야간 전담 수의사는 아니었지만 병원의 필요에 따라 매 월 며칠간 당직근무를 해주는 선에서 야간 근무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야간에는 낮에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날들이 꽤나 있다. 특히 내가 예전에 근무하던 병원은 밤에도 누구나 아무 때고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데다가 번화가에 있어, 노숙자 아저씨가 들어와서 믹스커피를 한 잔 타 드시고 나가시 지를 않나, 근처에 숙소가 없어서 그러는데 하룻밤만 병원 구석에서 지내고 나가면 안 되겠냐고 생떼를 쓰는 사람이 들어온 적도 있었다. 주변은 모두 어두운데 우리 병원만 밝은 조명이 켜져 있으니 여름에는 날파리 떼의 습격을 받아, 병원 로비에 죽어 수북이 쌓인 벌레를 치우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그렇게 동물병원의 밤은 조용하면서도 소란하다.





  치료제를 가지고 나타난 보호자


  한 번은 어떤 남자분이 아주 다급한 모습으로 개를 데리고 병원에 내원하셨다. 오후에 해가 질 무렵까지 강아지와 산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는데 강아지가 산길에서 만난 뱀과 대치하다가 물렸다는 것이다.

  강아지는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고 아저씨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때 배운 것은 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은 인턴 시절이었다. 병원을 지키며 입원한 환자들의 처치를 해주면 된다는, 나름 막중하지만 준비되어 있는 임무만 수행하면 될 줄 알았는데, 뱀독 중독이라니?! 나도 아저씨만큼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독이 있는 뱀이 맞을까요? 우리나라에 맹독을 가진 뱀은 별로 없다던데?"

  제발 간단한 알러지 처치만 해도 되길 빌며 보호자분께 되물었다. 그러나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보호자분은

  "독이 있는 뱀이 확실해요. 제가 그 뱀을 잡아 죽여서 자세히 살펴봤는데, 독이 있는 뱀이 확실했어요."라고 하신다.

  뱀을 잡아서 죽이기까지 하셨다고? 뱀보다 아저씨가 더 무서워지려고 했다. 그럼 어떡하지... 우리 병원에는 해독 백신이 없는데... 야간이라 어디 전화를 돌려서 확인하기도 힘든 시간이고...


  "죄송하지만 저희 병원에는 해독 백신이 구비되어 있지 않아, 다른 큰 동물병원이나 대학병원으로 서둘러 이동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이기도 했고, 인턴이었던 나는 이런 진료는 난생처음 보는 상황이어서 빨리 이송조치를 하는 것이 강아지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호자분은 허술한 분이 아니었다.

  "저도 동물병원에 뱀 해독 백신이 구비되어 있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사실, 제가 의사인데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사정해서 사람용 뱀 해독 백신을 제가 이미 구해왔어요. 그런데 강아지에게 주사 놓는 법을 제가 몰라서 동물병원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것만 놓아주시면 안 되나요?"

  아... 세상에... 이 사람, 보통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해독 백신이라는 것을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도 없는데? 정말 울고 싶은 심정으로 보호자분께 이실직고하였다.

  "사실, 저는 인턴 수의사이고 뱀독 중독에 대한 처치는 제 능력 밖입니다."

  자, 이제 사실대로 이야기했으니 도망치듯 다른 큰 병원으로 가시겠지?

  "괜찮습니다. 인턴이시더라도 주사 놓을 줄은 아시잖아요. 더 지체하다가 위험해지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냥 주사만 놓아주세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절대로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겠구나.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내가 지금 손을 덜덜 떨고 있다는 사실을 그분이 알아채지 못하길 빌며 해독 백신을 받아 들었다.

  설명서를 찬찬히 읽어보니 일단 피내 주사(피부의 진피 내에 약을 주입하는 방법)를 시행하여 알러지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지 지켜보라고 되어있었다.

  학부 시절에 쥐 피부에 알러지 반응 검사 실험을 했던 기억을 최대한 끄집어내어 강아지 피부에 털을 깎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피내 주사를 실시했다. 몇 분 뒤, 알러지 반응은 없는 것으로 보였고, 보호자분은 이런 모습을 내내 자세히 지켜보시다가 말씀하신다.

  "검사를 아주 제대로 하시네요."

  학부 때 쥐 실험을 열심히 해서 칭찬받는 날도 다 오는구나.


  자, 이제 정맥으로 주사를 넣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액을 그냥 넣으면 안 될 것 같고, 거의 오전 출근반 선생님들이 오실 때가 다 되었으니, 내과/응급 과장님께 전화를 해보자. 과장님께서 다행히 전화를 받으셨고, 희석 용량을 알려주신다. 확신이 생긴 나는 해독제를 희석해서 그 아이에게 투약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과장님이 드디어 출근하셨다!!

  그날만큼 과장님이 반가웠던 날이 있었을까? 믿음직한 과장님께 그 아이의 처치를 맡기고 퇴근을 하였다가 다시 출근을 하여 보니, 얼굴이 퉁퉁 붓고 힘없이 우울해 보였던 아이는 어디로 가고, 날씬한 얼굴로 팔팔하게 살아나서 건드리기만 해도 물려고 으르렁대는 에너지 넘치는 아이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 녀석아, 내가 너 때문에 어젯밤에 수명이 단축되었었다는 것을 알긴 아니? 어쨌든, 멀쩡하게 살아나서 퇴원하게 된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은, 나의 야간 근무 역사 상 가장 간 졸였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길고양이를 살려주세요


  대학병원에 있을 때에 있었던 일이다.

  당직을 서며 다음날 있을 발표 준비를 하던 고요한 밤 시간. 몇 명의 앳된 얼굴의 학생들이 다 죽어가는 고양이를 박스에 넣어 데리고 왔다. 알고 보니 이 학생들은 우리 학교 수의학과 학생들이었고 집에 가다가 길에 쓰러진 길고양이를 모른 체 하지 못하고 살리고자 데려온 것이었다.

  한눈에도 그 고양이는 곧 죽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세상엔 기적이라는 것도 있고, 걱정 어린 눈으로 고양이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는 그 학생들의 희망에 소금을 뿌리고 싶지 않아 적극적으로 필요한 처치를 해주기 시작했다.

  

  아픈 길고양이를 데려오면 전염병이 있을지 모르니 다른 동물들과 접촉시키기 전에 조심해야 한다느니, 이렇게 어린 동물들은 혈당과 체온을 잡아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느니, 혈관을 잡기 어려우면 피하로 수액을 주되, 따뜻하게 데워 체온과 비슷하게 주어야 한다느니 하는 기본적인 응급처치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가며 어느 정도 처치를 해주고 집에서 이어서 해줄 수 있는 일들을 알려주고 있는데 불행히도 그 고양이는 사망하고 말았다.

  슬퍼 보이는 학생들을 보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사실 난 그 학생들이 너무 예뻐 보여 이런저런 조언을 더 해주었다. 그 학생들은 분명 마음이 따뜻한 수의사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다음날 당직의 피곤함을 애써 지우고 오후 근무에 복귀했더니 누군가가 나에게 선물을 전해준다. 어젯밤에 왔던 학생들이 부끄러워서 나에게 직접 주지는 못하고 다른 친구를 통해 선물을 전해준 것이다. 예쁜 핸드크림과 손편지였다. 야간 근무가 힘드실 텐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지금도 이날의 일을 생각하면 항상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기특한 녀석들. 언젠가는 반드시 훌륭한 수의사가 되어 만나길 바란다.


  



  응급 진료가 없다면 야간 시간의 동물 병원은 매우 조용하다. 불도 약간 어둡게 해 주고, 입원해 있는 아이들이 모두 쉴 수 있도록 처치도 되도록 같은 시간으로 통일해주는 편이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색색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낮에는 느끼기 힘들었던 또 다른 어떤 감정을 느낀다.

  감긴 눈꺼풀에, 앙 다문 입꼬리에, 천천히 내뱉는 숨소리에 사랑스러움이 묻어있다. 

  물론, 밤새도록 짖어대며 나를 이곳에서 당장 꺼내라고 떼쓰는 아이들이 없어야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지치지 않고 목이 쉴 때까지 짖는 아이들에게 시달리며 며칠간 야간 근무를 하고 나면 유체 이탈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피곤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누군가는 이 밤을 지켜야 하는 것을.

  반복되는 야간근무의 고단함에 원형탈모가 오더라도, 오늘도 밤을 지키는 그대들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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