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개 May 01. 2024

1. 나는, 떠나야만 했다.

Prologue (Chile-Argentina)




  꿈이었던 것 같다.

그를 만나고,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하기로 했지만 결국 미워하고 헤어진... 짧은 시간이 선명하지만 또 희미하다.

잊고 싶지 않지만 무엇보다 잊고 싶다.


  사람을 만난 다는 것은 항상 나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20~30대는 기다림과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었고, 나는 꽤 늦은 나이까지 한 사람에게 온전히 마음을 주지 못하고 헤매었다.  

결국 느지막이 그를 만나게 되었고, 그와 사랑하게 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라 생각했다.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청춘을 보냈고, 이제 드디어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살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른다며 잠시나마 행복감에 휩싸였었다.

그 당시 나는 '남들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던 것 같다.


  '남들처럼'이라는 말에는 외로워지기 싫다는 속내가 들어있다.

  나만 남들과 다른 유별난(?) 사람이 되기 싫다는 마음. 나도 평범하게 '남들처럼'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행복을 느끼면서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

  평생을 나 자신을 토닥이며 조금 평범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되뇌며 살아온 나조차, 결국 인륜지대사 앞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속내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평소였으면 모두 짚고 넘어갔을 우리 관계의 문제점을 뭉개어 은근히 넘겼고, 다 잘 될 거라는 근거 없는 불안한 기대를 확신처럼 되뇌었다. 나답지 못했다.


  결국 나의 섣부른 판단과 실수는 파국을 불렀고,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모든 것은 상처로 돌아와 나를 할퀴었다.


  이 모든 과정을 겪고, 나는 더 이상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게 되었다.

  난 평범함을 갈구하는 사람인가, 평범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인가.

  나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을 하며 살았는가, 남들이 보기에 행복해 보일 만한 선택을 하며 살았는가.

  꽤 당당하고 꽤 자신에게 솔직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던 나는, 이런 실패 속에서 나를 다시 보아야만 했다.




  슬펐다. 꽤 많이 울고 좌절했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다시 나를 찾아 떠나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 길을 떠났다.

  남미. 그곳이 내가 떠올린 곳이었다. 

  수년 전부터 꿈꿔왔던 그곳. 땅끝이 있다는 그곳에 가서 행복을 되찾고 싶었다. 



  이 여행에서 돌아올 때 즈음, 나는 나에게 적용되는 행복에 대한 정의와, 내가 의미 있게 생각하는 가치들에 대해 어느 정도 뚜렷한 관점이 생겼다.

  길고도 짧았던 26일간의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내가 여행하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꼈던 일들을 나누고 싶었고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예시를 들어주고 싶어졌다.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에 이런 여행을 떠나는 수도 있겠구나.


  내 글을 보는 독자분들이 계시다면,

상처 입은 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흘러가는 방향에 대해 하나의 예시를 보시고, 그 안에서 아주 조금의 위로를 받으시면 좋겠다. 그리고 아무 때나 훌쩍 떠날 수는 없는 꽤 먼 그곳을 경험하고 온 한 여행자의 경험담에서 간접 경험을 하실 수 있으시길... (이건 내가 평소 여행수필집을 끼고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이 내가 이 여행기를 쓰는 이유일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