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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Jul 17. 2024

23. 탱고와 모기 대소동

2024. 3. 22 Pizzolla Tango show

  아침부터 바삐 움직인 우리는 상당히 지친 상태였지만, 한국을 좋아하는 브라질 아가씨의 언변에 넘어가 당일 탱고쇼를 예약해 버렸기 때문에 오후 7시에 숙소 앞으로 오기로 한 픽업차량을 기다리느라 낮잠을 자거나 쉬기는 어려웠다. 우리는 셔틀에 제일 먼저 탑승한 손님이었는데, 탱고 쇼 시작은 10시!! ;;;;;;

우린 쇼 시작이 10시라는 걸 제대로 몰랐고, 별 의심도 하지 않았었다. (왜 의심하지 않았냐고!!) 밥을 먹으면서 쇼를 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밥을 먼저 먹고, 쇼를 보는 거였다 ㅡㅡ;;;

Dinner 불포함으로 예매를 했는데, 우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오히려 더 먼저 셔틀에 모셔주시다니. 하하.... 우린 10시까지 공연장 제일 뒤 테이블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다른 사람들이 밥 먹을 동안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2시간 반을 그냥 하릴없이 앉아있으려니... 비행기 탑승 시와 비슷한 다리 부종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 이게 무슨 일이람!!!


  잘 차려입은 멋쟁이 외국인들이(무려 백리스 드레스, 화이트정장세트를 차려입은 세상 화려한 외국인들이 많았음) 코스요리 저녁을 즐기며 와인을 곁들여 시간을 보내는 동안, 빨지도 않은 운동복, 흙 묻은 트레킹화 차림의 동양인 여자 둘은, (동양인은 우리가 유일) 퉁퉁 부어가는 종아리에, 졸려서 반쯤 감은 눈을 하고는 굶으며 그 자리에 마치 합성된 사진처럼 이질적인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ㅋㅋㅋㅋㅋㅋ

(이번 여행에는 예쁜 옷 따위는 챙겨 오지 않았기에 오늘 낮에 floria거리에서 살려고 했던 건데... 맘에 드는 게 없어서... 여행 내내 주구장창 입던 운동복을 또 꺼내 입음)

  우리의 상태에 너무 웃겼던 우리는 계속 웃으며 (반쯤 실성한 웃음) 잠을 깨우며 기다렸다. (졸릴까 봐 무료로 제공된 와인도 제대로 못 마심...)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저녁 포함으로 예매를 하던지, 셔틀을 타지 않고 10시까지 맞춰서 따로 왔어도 됐을 텐데... 무료 셔틀이 숙소 앞까지 온다는 말에 쇼 시작 시간을 의심도 않고 덥석 타겠다고 했던 과거의 우리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ㅋㅋㅋ 아무튼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서도 짜증보다 웃음이 더 나는 우리라 다행이다.




  그림자처럼 사라지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담은 시간은 흘러 드디어 10시!

정확히 10시에 실내가 빠르게 어두워지며 핀조명이 켜지고, 악단과 댄서가 모습을 드러낸다.

탱고는 난생처음 직관한다. 아... 두 눈을 믿을 수가 없는 몸짓이 이어졌다. 다리가 분명 2개인데... 4개는 있는 듯이 보이는 스피드! ㅋㅋ 섹시하게 움직이는 여자와 박력 있게 리드하는 남자 댄서! 그 둘 사이에는 어떤 공간조차 용납되지 않는 듯, 숨결만 맞닿은 느낌. 아름다운 음악과 격정적인 몸놀림, 중간중간 삽입되는 가수의 가창!

  그리 크지 않은 무대였지만 그만큼 댄서들의 호흡과 관객과의 사이가 가까웠고, 공간에는 음악이 가득 찼다. 여자 댄서는 공중에서 돌고, 바닥을 가로지르고, 빙글빙글 돌고 빠르게 다리를 차며, 그 와중에 남자댄서와의 완벽한 스텝과 시선처리까지... 와우... 숨 막힐 듯한 격정적인 1시간의 공연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매우 높은 만족도로 숙소로 돌아왔다. (우려대로 우리를 가장 늦게 내려줌 ㅋㅋㅋㅋㅋㅋㅋㅋ) 졸려서 제정신이 아니긴 했지만, 내일 아침까지 늦잠을 잘 요량으로, 얼른 침대에 누울 기대를 하며.....




그. 러. 나. 인생은(여행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지....


  숙소의 문을 연 우리는... 눈을 의심케 하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여행 최대의 위기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야말로 모기떼의 습격...!

  "온아... 저... 저기 좀 봐........ 저게 다 모기인가바......."

  공포영화의 제일 무서운 장면이라도 본 듯 들어 올린 나의 손가락을 따라 온이의 시선이 이어진다.

천장과 벽, 방구석구석에 최소 수십 마리, 아니 수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모기가 떼로 붙어있었다.

  "히엑!!!!!!! 이게 무슨 일이지??"

  와오.. 여기가 아마존 한중간에 있는 통나무 집이라고 해도 모기가 이만큼은 안 들어올 것 같았다. 상상도 하지 못한 상황에 매우 당황한 우리는 일단 모기가 그나마 적은 화장실 앞 복도로 피신해서 연신 손부채를 하며 서로 모기를 떼어주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했다.


빙산의 일각... 모든 점이 전부 모기임....(심약자를 위해 더 적나라한 사진은 올리지 않음)


  이 숙소에서 그냥 잔다? 후훗...... 우리는 그대로 모기들의 밥상이 될 것이다. 나는 특히 초민감 피부의 소유자로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모기에 물리는 것과는 남다른 반응이 올라오는 알러지성 체질로, 이곳 모기에 물리면 어마어마하게 붓고 죽도록 가려운 알러지 반응을 일으킨다는 걸 이미 경험한 상태로, 자칫 잘못하면 진짜 병원에 가야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 이곳에서 자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을 했다. (여기 모기는 우리나라 모기랑 다르다. 모기 자체도 크고, 진짜 무지막지한 침을 가지고 있는데, 내 눈에는 솜이불 꿰매는 바늘 수준의 두께로 보였다.)


  지금 시간은 새벽 1시를 향하고 있다. 이곳 치안이 좋지 않다고 밤에는 주의하라는 소리를 여러 번 들은 상태라 지금 밖에 나가 숙소를 찾아 배회하여도 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화장실 앞에 쭈그리고 모기 쫓으며 밤을 새울 수도 없는 노릇.

우리는 용기를 내어 필수용품만 챙겨 밤길을 나서보기로 한다. (물건을 챙기는 동안에도 모기가 어찌나 달려드는지 서로 부채질을 해주며 모기를 떼어주어야 했다. ㅠㅠ 개 끔찍)

우리는 비장했다. (모기에게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는 형국이긴 했지만...)

세상에서 제일 섹시한 춤인 탱고를 보고 온 감상의 여운에 빠질 시간 따위는 없었다. 이렇게 하찮도록 조그만 곤충들에게 꼭두새벽에 숙소에서 쫓겨나는 꼴이라니...(물론 아르헨티나 모기는 하찮게 작진 않다 ㅡㅡ;;;)

그래! 한번 나가서 숙소를 찾아보자! 죽기야 하겠나!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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