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날 수 없는 미남선호사상
엄마의 오지랖이 또 일을 냈다.
얼마 전 우리 빌라 단지에 새로운 모녀가 이사를 왔다.
이혼한 PD로 어린 딸을 하나 데리고 온 신여성이었다.
80년대 중반 여전히 고리타분한 사고가 남아 있던 사회였던지라 이혼녀가 남편도 없이 당당하게 딸 하나를 데리고 변변한 빌라를 얻어 독립했다는 건 그 동네에서는 사람들 입에 꽤나 오르내릴 일이었다.
나름 자칭 깬 정신의 소유자였던 우리 엄마는 그녀와 곧 친분을 쌓았다.
평범한 주부와는 다른 분위기를 은은하게 풍기며 당시에 구하기 힘든 미제집에서 산 오렌지 주스라던가 버터라던가, 크래프트 병치즈라는 걸 선물하면서 그 피디와 친해졌다.
그래서 얻어낸 게
방송국의 어린이 합창단의 자리였다.
극 I였던 나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입학 한 후에도 누가 묻지 않으면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게 일상이었다. 이런 내가 방송사 어린이 합창단이라니!
지금 와서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 어린이 합창단이란 건 80년대식 프로듀서 101 같은 존재였다.
각 동네에서 나름 미모 또는 노래실력으로 유명한 아이들이 치맛바람이 범상치 않은 엄마의 지원을 받아서
어떻게 하면 드라마의 아역 자리라도 차지할 수 있을까 눈에 쌍심지를 켜고 들어오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끼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도 없는 극 소심한 내가 살아남을 일은 만무했다.
그래도 피디의 백이 꽤나 튼튼했던지
뭐 아침 어린이 프로그램에 그것도 어린이날 특집에 당당히 나와 내 동생이 참여하게 되었다.
그것도 센터에 떡하니!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꽤나 기묘한 캐스팅이었다.
촬영장은 지금의 에버랜드, 자연농원이었다.
아침부터 엄마는 도시락에 공을 들였다.
커다란 나무 바구니에 붉은색 깅엄 체크 천을 깔고 빨간 리본을 묶어 만화에 나올법한 도시락을 쌌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엄마 스타일의 스코티시 에그였다.
전통방식은 삶은 달걀에 다진 고기를 둘러 튀긴 것이었지만, 엄마의 것은 조금 달랐다. 엄마는 메추리알을 삶아 그 주위를 양념한 다진 쇠고기로 감싸고 기름에 노릇하게 지져 케첩과 간장을 넣은 소스에 달달하게 졸였다. 흐트러지는 게 싫어 이 조그만 미트볼을 끝에 빨강 차랑 셀로판지로 만든 술이 달리 이쑤시개에 3개씩 꽂아 졸여 바구니에 곱게 넣었는데 새콤 달콤 짭짤하니 어른들에게는 술안주 우리에게 밥반찬으로 아주 좋았다.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달콤 새콤한 향과 반짝이는 동그란 새알 세 개.
정성스레 도시락을 싸고, 흰 세일러복 원피스를 나와 내 동생과 세트로 맞춰 입히고 엄마와 우리는
기세 등등 하게 야외촬영장으로 향했다.
첫 촬영은 푸른 잔디밭.
파란 잔디에 돗자리가 깔리고
막 걸음마를 뗀 아기들이 배치(?) 되었다.
그중에 내 동생도 끼어있었다.
처음 촬영은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스태프들이 달래려 몇몇 아이들에게 과자를 쥐어주자 일이 꼬였다.
소유욕이 강한 내 동생은 자기 과자도 한 손에 쥐고 옆에 앉은 애 과자도 노렸다. 아이가 주지 앉자 그녀는 평소에 하던 대로 냅다 머리끄덩이를 잡고 흔들었다..
머리를 쥐어 뜯긴 애도 울고, 그 소리에 놀란 동생도 울고, 촬영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음 장면은 퍼레이드였다. 푸른 잔디 위, 당시 유명 가수의 손을 잡고 합창단이 뒤따라가며 노래하는 그림. 나는 오로지 엄마의 인맥(…) 덕에 맨 앞, 가수 오른편에 섰다. 큐 사인이 떨어지고, 이제 환하게 웃으며 손을 잡고 노래하면 된다—문제는, 내가 남자 외모에 유난히 예민한 아이였다는 점이다. 가수 아저씨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어린 마음의 취향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싫어! 못 잡아요!"
계속되는 NG에도 못생긴 남자의 손을 절대 잡을 수 없다며 엄마를 향해 있는 대로 짜증을 내고 진상을 피우는 모습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드디어 어린이날이 되었고
우리 두 자매가 공중파 출연을 앞에 두고
친가 외가 양쪽 집안 가족들이 티브이 앞에 모였다.
드디어 로고송이 끝나고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는데
화면에 나온 것은 잔디밭에 짐승처럼 머리끄덩이를 잡고 뒹굴고 대성통곡하는 동생
내가 유명 가수의 손을 뿌리치며 살려달라는 표정을 짓는 나였다.
거실에는 정적만이 맴돌았다.
엄마는 아무 말도 못 했고
외할아버지는 어미나이레 욕심부리다 결국 개망신시켰다며 다시는 쓸데없는 짓 말라! 한 소리 하시고
삼촌들은 데굴데굴 구르고
친가에서는 무응답.
당연히 그 이후 그 피디 아줌마와 우리 엄마와의 관계는 소원해졌고
나는 다시 평범하고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어린이로 돌아와
책상 밑에 들어가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세상풍파를 겪다 보니 지금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 성격이지만
지금에 와서 그때의 일을 더듬어 보면 기억에 또렷한 것은 나와 동생의 흑역사보다는 엄마의 도시락에 담겨 있던 달콤 짭짤한 스코티시 에그였다.
더불어 여전히 떨쳐내 못한 것은
잘생긴 남자를 향한 나의 취향.
잘생긴 남자와 눈이 마주칠 때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속물적 취향이 난 너무나 좋다.
그때 그 가수 아저씨가 조금만 더 잘생겼었다면 달랐을까?
확실한 건 외모가 부족한 그 유명 가수는
엄마가 정성스럽게 싼 도시락을 받고 무척 행복해하셨다는 것이다.
정통 스코티시 에그가 아니다. 우리 집 방식이다. “애들 간식 겸 어른 술안주”가 목적이라 한입 크기로 만든다. 달달 짭짤한 글레이즈가 포인트.
재료 (약 4인분)
메추리알 18~24개(삶아 껍질을 벗긴다)
다진 소고기 300g (취향에 따라 소·돼지 혼합 가능)
다진 마늘 반 큰술
소금 1작은술, 후추 약간, 간장 1큰술, 설탕 1큰술 참기름 1큰술
식용유(지짐용)
글레이즈
케첩 3큰술, 간장 3큰술, 미림 1컵,
(선택) 식초 또는 레몬즙 1작은술, 후추 약간
만드는 법
1. 메추리알 준비: 끓는 물에 4~5분 삶아 찬물에 식힌 뒤 껍질을 벗긴다. 키친타월로 물기를 없애고 밀가루를 뿌려 놓는다(접착제 역할)
2. 고기 반죽: 다진 고기에 양파·마늘·빵가루·달걀·간장·설탕·참기름·소금·후추를 넣어 끈기가 생길 때까지 치대 준다. 10분 냉장 휴지.
3. 감싸기: 메추리알 하나에 고기를 얇고 고르게 감싼다. (두께 3~4mm 정도. 너무 두껍지 않아야 한입에 먹기 좋다.)
4. 지지기: 달군 팬에 식용유를 돌려 중 약불에서 굴리듯 지져 겉면을 고르게 익힌다. 뚜껑을 덮어 약불로 2~3분 더 익혀 속까지 완성.
5. 글레이즈: 팬의 기름을 키친타월로 정리하고, 글레이즈 재료를 넣어 약불에서 보글보글 끓인다. 농도가 잡히면 미트볼을 넣고 1~2분 간 고루 졸여 윤기를 낸다.
6. 마무리: 이쑤시개에 3개씩 꽂아 담는다. 뜨거운 밥 위에 올리면 반짝이던 바삭함이 살짝 눅눅해지며, 그게 또 좋다.
팁
식감: 고기 반죽에 다진 두부 2~3큰술을 넣으면 부드러워지고, 전분 1작은술을 넣으면 탄력이 생긴다. 고기가 너무 얇으면 벌어져요 틈이 안생기도록 꼼꼼하게 동글동글
달짠 밸런스: 미림 자체에 당이 있어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달다 미림을 졸이면 쫀뜩한 식감이 생긴다. 어른 입맛이면 식초 한 방울.
대체: 메추리알 대신 일반 달걀을 쓰면 6~8개 분량으로 충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