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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란 Apr 17. 2020

덴마크 사람 남편과 살기

눈치파이(Nunchi-fi) 켰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그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옷깃을 붙잡아 눈 마주치고 그의 발걸음에 나의 발걸음을 더해 평생을 함께 같이 걸어가는 게 결혼이라는 것 아닐까.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인연을 찾기 위해 때로는 주위를 살피고 어딘가는 있을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한다.



나의 옷깃을 살며시 잡아 준 사람이 있다. 엄청나게 나의 옷깃을 펄럭이고 다녔었지... 내 인연은 어디 있을까 기다려도 봤고, 이 사람일까 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의 옷깃을 잡아도 봤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옷깃은 내 손에서 이내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는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곳에 있었다. 덴마크라는 나라는 내 인연을 곱게 길러 나에게 보내주었다. 수줍은 듯 하지만 곧고 한결같은 이 사람은 나와 평생 같은 길을 함께 가자고 했다.



사랑도 컸지만 두려움도 컸다. 차가운 밤과 깊은 겨울이 있는 낯설기만 한 북쪽 나라의 무뚝뚝한 사람들과 문화 속에 내가 외롭진 않을지... 내 따뜻한 가족들과 기약 없는 이별을 하며 그리운 나날을 보내진 않을지...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두렵지 않기도 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지구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나의 인연. 두손 꼭 잡고.


구하기도 힘든 덴마크 남자를 구했어요

나뿐만 아니라 세계의 어떤 여자들에게도 덴마크 남자와 결혼해서 살 확률은 지극히 낮다. 우선 덴마크는 인구가 5백만(정확히는 5백6십만 명 정도다. 인구수가 적은 덴마크에서 6십만 명을 빼고 말하면 덴마크 사람들은 서운해한다. 하지만 간단한 계산을 위해 5백만이라고 하자) 밖에 되지 않는다. 그중 인구 중 남자의 비율을 반이라고 한다면 고작 2.5백만. 거기에서 연애를 할 나이나 결혼 적령기의 20-35세라고 치면 숫자는 확연히 줄어든다. 거기에 여자 친구가 이미 있거나 외국인이어도 상관없는 사람을 추리고 나면 정말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그리고 그중에 내가 있는 공간으로 찾아와 내 눈앞에서 나의 눈을 마주 보고 옷깃을 스치고 깊은 대화를 나누고 평생을 약속할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클럽에 가면 덴마크 남자들은 새벽 4시까지 아무것도 안 해


예전 이곳에서 싱글이었던 친구가 한 말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남자 만나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봤더니 덴마크 남자들이 맨 정신으로는 여자에게 대시를 잘 못하고 술기운을 빌어야 대시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줍음을 타는 것도 있겠지만 덴마크 남자들은 꼭 남자만 대시하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한단다. 이곳은 남녀평등사상이 강해서 여자도 마음에 들면 남자에게 대시를 해도 된다고 생각한단다. 여자가 여자다워야 한다든지하는 고정관념이 없다(참고로 덴마크 남자들은 ‘영국식 젠틀맨’ 은 아니다. 여자를 문을 열어주고 무거운 것을 들어줘야 하는 나약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여자도 힘이 있고 남자가 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 머릿속에 바람 불면 쓰러질듯한 청순가련형의 여자가 없다. 이곳에서 여자는 강하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기 센’ 여자 보스들이 많다. 이곳은 총리도 여자다. 첫 번째가 아니고 두 번째 여자 총리다) 나는 다행히도 남편을 미국에서 만났다. 미국이 남편에게 이미 약간의 대시 기술을 가르쳐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처음에는 부끄러운 듯 조심스럽게 더디게 다가오는 남편 때문에 애간장 참 많이 녹았었다. 결론은, 많지도 않은 덴마크 남자를 만나 수줍어하고 들이대지 않는 그를 만나서 덴마크라는 나라에 와서 살 확률은 참 낮았다는 이야기다.



가족들이 그를 좋아한다

이렇게 나는 나의 인연을 희박한 확률을 뒤집으며 만났다. 이미 가족들은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내가 외국인과 결혼할 것이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았단다. 그래서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외국인이지만 어떤 외국인인가가 중요했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외국인이지만 신기하게도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우리 가족은 남편을 엄청 맘에 들어했다. 나보고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표현했다. 유엔에 한국인 반기문이 사무총장님으로 있던 시절 유엔 뉴욕 본부에서 일하고 있던 남편은 가족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세계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반듯하고 책임감 있는 이미지는 내 딸을 믿고 맡겨도 좋겠다 라고 생각하게 했단다. 한국의 가족들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부드럽고 차분한 덴마크 남편을 좋아한다. 그리고 많이 고마워한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완벽하리라 생각했던 콩깍지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서로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게 된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이를 낳으며 아이 때문에 함께 울고 웃으며 뼛속까지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참 신기하다. 처음엔 나와 달라서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던 그 모습이 가끔은 얄밉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덴마크라는 곳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습득해야 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하고(30 넘어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의 정서까지 읽어야 한다. 나에게도 꽤 힘든 일이지만 자신의 나라에 데려와 좋은 것만 경험시켜주고 싶은 남편도 항상 그럴 수 만 있는 것은 아니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자신의 문화를 최대한 잘 받아들이도록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돕고 지지하지만 항상 성공만 하는것은 아니다. 내가 ‘여기는 왜 이렇냐’ ‘이해가 안된다’라고 불평이라도 할 때는 자신의 문화지만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에 좌절감을 느낄 때도 있겠지. 학교 다닐 때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으면 ‘그냥 외워’의 방법이 있다. 하지만 문화는 그냥 외워서 될게 아니다.



눈치에 와이파이가 달려 있다면

얼마 전 우연히 본 잡지에 NUNCHI라는 단어가 있었다. 눈치는 한국인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적인 정서란다. ‘눈치가 한국산이었어?’ 몰랐다. 눈치가 한국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설명이 됐다.

한 심리잡지에 실린 기사 The power of Nuchi 저자 Euny Hong


눈치란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 상황을 읽는 능력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눈치’는 좀 더 지능적인 사고 활동이다. 역시 한국 사람은 사회족 지능이 높았다. 지금 상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의 니즈가 무엇인지를 빠르게 파악하고 행동하는 것이 눈치다. 잡지책에 소개 된 The power of Nunchi라는 책에는 한국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성공을 이루는 것도 이 눈치가 발달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남편에게 원하는 것은 남편이 나의 마음을 읽고 헤아려 내가 필요한 부분을 집어주고 그것에 대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질문을 하고 조언을 해주는 거다. 남편은 웃었다. ‘미안한데 그건 이 생애에서 불가능하다’고 한다. 남편은 내가 원하는 것을 소통해 달라고 한다. 직접적으로. 확실하게. 또박또박. 나는 남편에게 ‘눈치’를 가르쳐주고 싶다. 눈치도 학습이 가능한가? 눈치가 와이파이처럼 켰다 껐다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단 어이없는 생각도 든다. ‘눈치 파이’ 좀 켭시다!^^




남편에게 눈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덴마크에도 덴마크식 눈치가 있다고 남편은 주장한다. 덴마크식 눈치는 나의 가득 채운 눈치의 시그널로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것다. 눈치를 준다는 것은 나의 요구를 강요한다는 의미일지 모른다. 이곳에서는 ‘눈치’를 준다는 게 눈치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분이 다운됐거나 위축되어 있으면 남편은 슈퍼마켓으로 달려가 김치와 한국음식을 한 무더기 사 온다. 한국 음식을 먹고 나면 마음에 풀어지는 나를 이제는 알기에. 김치가 가득 든 봉지를 들고 나를 바라보며 ‘눈치?!’ 하며 미소짖는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웃는다.



결혼이란 내가 풀 문제를 선택하는 것

보통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태두리안에 다른 환경과 문화에서 자란 사람과 함께 산다것 조차 쉬운일이 아닌데 문화와 언어도 다른 외국인과 국제결혼은 얼마나 힘들겠냐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흔히 결혼 후 이혼하는 부부들은 이유를 성격차이라고 한다. 가장 쉬운 핑계다. 국제커플도 이혼의 이유가 문화 차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쉬운 핑계일 것이다. 맞다. 서로가 이해가 안 가고 힘들다. 하지만 문제가 전혀 없이 행복하기만 하는 결혼 생활은 없다. 다 각자의 고민이 있고 부족함이 있고 고충이 있다. 하지만 난 내가 선택한 문제를 감사하며 풀고 있다. 나는 내가 풀고 싶어 하는 문제를 선택했을 뿐이다. 남편이 육아를 잘 안 도와줘서, 집에 늦게 들어와서, 참견하는 시댁 식구들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는 나에게 없다. 하지만 난 다른 문제들이 있다. 결혼이란 이런 나에게 맞는 ‘문제’를 찾아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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