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서 출산하기
작년 이맘때쯤 나는 이전에 느껴 볼 수 없는 최악의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몸 중심에 난 10센티가량의 상처는 촘촘히 꿰매어 있었지만 신경세포 하나하나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끔찍이 아팠다. 웃으며 들어간 수술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 후 내 몸은 수술대 위에서 양쪽으로 흔들흔들거렸다. 의사는 내 복부의 어떤 묵직한 것을 누르고 흔들어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남편은 나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이내 가슴 아래로 처진 천막 위로 라이온 킹에서 심바가 태어나는 장면처럼 아이가 공중 위로 올려졌다. 핏덩이인 아기는 곧 내 품 안에 안겨졌다. 길지 않은 시간.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아이를 만났다. 작년 이맘때쯤 나는 제왕절개 수술로 둘째를 출산했고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며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수술 후 말로 표현이 안 되는 통증을 느꼈지만 이제는 벌써 오래전 이야기인양 기억이 흐리다. 그 고통을 잊다니 머릿속에 지우개가 진짜 있다.
출산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는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내 나라가 아닌 외국에서 출산을 한다는 것은 그 경험을 한 층 더 ‘새롭게’한다. 모르는 것에 덤으로 모르는 것을 더했던 나의 출산 경험들. 그리고 지금도 잘 몰라 서투르게 아이를 키우는 일. 하지만 이 일들을 통해서 작은 아기 사람을 배우고, 삶을 배우고, 세상을 더 배우고, 나를 배워간다. 덴마크라는 북유럽의 어느 작은 나라에서 엄마가 되어 본다는 것은 참 특별한 경험이다. 불편하고 이해가 안 가는 일 투성이지만 눈치껏 따라 해 본다. 덴마크에서 두 아이를 낳으며 겪었던 몇 가지를 적어 볼까 한다.
덴마크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 왈가왈부라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한국에 비하면 이곳의 시스템은 의외로 부족한 게 많다. 우선은 공공 의료시스템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무료로 공평하게 기회를 가져야 하는 상황에서 추가되는 럭셔리 서비스는 없다. 제왕절개 수술도 자연분만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수술이라 수술을 결정하는 단계에서도 은연중 ‘왜 제왕수술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수술을 안 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의학적인 이유에서가 아닌 개인의 결정으로 수술을 결정하는 것이라면 이유가 확실해야 한다. 나는 첫째 아이 출산 시 난산으로 death anxiety를 겪었다. 아기를 낳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을 경험했다. 그 당시 아이를 낳고 출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고 당시 병원 기록에도 나와 있어서 설득하기가 용이했다.
덴마크에서는 출산 후 병원에서 첫째는 2일 둘째는 4-5시간 이내에(병원마다 차이가 있으며 변동사항이 있다) 퇴원하기를 ‘권한다’. 회복단계에서 연장해야 되는 사유가 있다면 모를까 이 규칙은 모두에게 적용된다. 산후 조리원은 이곳에 없다. 병원 분만실에서 나오면 병원에 딸려있은 ‘산모호텔’로 옮겨지는데 산후 조리원 수준의 시설은 아니고 몸의 회복하고 아기의 수유를 시작할 수 있도록 잠시 머무는곳으라고 하면 맞겠다. 처음에는 몸이 회복도 되기 전에 병원실을 빼라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 병원에서는 2일이 지나면 의학적으로 병원에서 있을 필요는 없다고 한다. 둘째의 경우 몸은 더 빨리 회복되니 병원에서 더 이상 해 줄게 없다는 것이다. 이곳의 엄마들도 이러한 ‘열악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리고 다들 회복하고 나면 집에 가서 빨리 아이와 일상을 시작하고 싶어 한다. 첫째 때 난산이어서 그리고 아이가 황달이 있어 며칠 병원에 더 머무를 수는 있었지만 내가 더 있고 싶다고 해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둘째 때는 5시간이다. 나는 제왕수술을 해서 이틀 더 머물렀다. 제왕수술은 몸안의 기관들을 지나 피부의 수 겹을 자르는 대수술이다. 수술 후 3일 후에 내 발로 걸어 나오는데 정말 총 맞으면 이렇게 아플까. 발을 끌며 속도 2km/hr로 걸어 나오는데 잘 가라며 손을 흔드는 간호사들이 그렇게 얄미울 수 없었다. 병원에 더 있다고 해서 빨리 회복되는 것은 아니니 집에 빨리 돌아가서 몸조리해야겠다고 일찌감치 마음을 고쳐먹었다.
임신을 하면 해야 할 일이 많다. 몸에 일어나는 변화 그리고 그로 인한 반응들로 초기에는 정신이 없다. 3달이 지나니 좀 정신이 든다. 막연했던 생명이 내 안에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 조금은 어떤 의미인지 뚜렷해지고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고 태교책을 찾아본다. 발견한 사실은 ‘태교’라는 개념이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태교를 말 그대로 영어로 번영한다면 Birth education 이 될 텐데 덴마크 사람들에게 이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나는 샤머느즘이나 이단 종교가 대해 설명하듯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이 개념에 머리를 갸우뚱거린다.
태교를 설명하려고 하니 우리나라에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1살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부터 해야 했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 생겼을 때 이미 생명으로 생각한다는 것부터 설명해본다. 그런데 덴마크 사람들이 묻는다. 뱃속에 있는 시간은 9개월인데 왜 1살이냐고.
저도 그 이유는 잘 몰라서요
이렇듯. 뼛속부터 다른 문화와 생각의 차이를 시작부터 겪는다. 좋은 음악을 듣고,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좋은 생각을 하여 아기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은 이해를 하지만 머리를 좋게 해 준다거나 누구를 닮도록 태교를 한다는 것은 합리적 사고를 하는 이 사람들에게 납득이 안 되는 이야기다. 이곳에서는 굳이 태교를 하지 않아도 일상이 ‘태교적 환경’이 잘 만들어져 있으니 따로 프로그램을 만들어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다.
이곳의 출산에서 남편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남편은 진통이 시작될 때부터 분만 과정에서 그리고 출산 후 몸조리까지 남편의 책임하에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덴마크에서 남편은 출산 후가로 2주를 쓸 수 있다. 친정가족이 없어서 이기도 했지만 친정엄마가 있더라도 남편이 출산한 부인 회복을 돕는다. 시부모님의 경우 첫째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 와 주시긴 했지만 나의 몸을 챙겨주고 아이를 돌보는 일은 남편이 함께해 준다.
출산 전에 한국의 친구들에게 들은 산후 도우미 이야기를 들었다. 첫째 출산 후 친정 가족들이 없는 이곳에서 나는 특히 남편에게 많을 것을 기댈 수밖에 없었다. 출산 전 미역국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줬다. 미역국에 따뜻한 밥을 끓여주며 내 몸의 회복을 확인한다. 남편은 그렇게 나의 산후도우미가 되었다. 출산 전에 산후 도우미 이야기에 솔깃했던 나는 내가 한국에서 출산을 하는 건 어떻겠냐고 떠 보았다. 남편은 그때 그 말에 정말 많이 실망했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아이를 낳는 일은 아빠들에게도 생애 최고의 사건이야.
당신이 한국에서 좀 더 심적으로 편하게 아이를 낳을 수는 있겠지만
아이를 낳는 과정을 함께하고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아빠와 눈 마주치고 서로를 알아가는 기회를 나는 무엇과도 바꿀 수는 없어.
엄마로서 내 몸으로 출산을 감당하는 두려움에 한 이야기였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남편에게 내 생각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몰려왔다. 출산과 육아의 책임은 부부로서 함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소중한 경험이다.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현재 인생학교에서 임신, 출산, 육아를 수강하고 있다. 전공은 인간 성장학이다. 이 학교 수강료는 따로 없지만 나의 ‘시간과 열정’을 내야 한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내 인생도 내가 책임지는 아이들의 인생도 성적이 좋지 않을 수 있다. 배우는 게 너무나 많은 학교다. 한 생명을 내 몸안에서 키워보고, 죽을듯한 고통을 맛보며 낳아서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본다. 내 상상만으로만 지켜 왔던 세상에 내가 얼마나 틀릴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는 것을 느낄 때 책임감으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자라며 1년 후 나는 성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자원이 많은 부모이고 싶다. 어려움이 있어도 그 어려움을 포기하지 않고 이겨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가르쳐주고 싶다. 1년 후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나도 성장하고 싶다. 아이들 키우느라 희생만 했다고 후회하지 않을 거다. 너희들과 함께 나도 성장했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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