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식 육아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듣고 보게 된다. ‘자존감’이란 자아존중감(self-esteem) 이란 뜻으로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을 가리킨다.
나는 자존감이 높진 않지만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나는 자신감도 있었고 조금은 남몰래 나름대로 특별한 구석도 있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한 가지를 특출 나게 잘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눈에 띄게 못하는 것도 없었다. 그리고 ‘우리 집’ 기준으로 공부를 꽤 해서 칭찬도 많이 받고 자란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부유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나름 노력해서 극복한 어려움들과 성취한 것들은 나에게 ‘자부심’(Pride)을 더해 주었다.
그런데 덴마크에 살게 되면서 내가 ‘나를 특별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덴마크에 사는 햇수가 늘어나면서 덴마크의 ‘얀테의 법칙’을 자연스럽게 배우며 그리고 몸소 느끼며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시켰던
당신이 나보다 더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적용해 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고 혼란스러움이 몰려왔다. 이들의 ‘평등사상’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고 당연히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 ‘평등사상’을 막상 나에게 적용하니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것을 깨달았다. 이상했다.
우리 시부모님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들이 둘인 집에 두 아들이 모두 두 명의 자녀가 있다. 처음에는 시부모님의 딸 같은 며느리가 되고자 많은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무엇인가 가로막는 무엇인가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문화 차이라고 생각했다. 친정집이 가까이 없는 외국인 며느리이니 좀 더 특별한 마음으로 나를 대해주시길 기대했나 보다. 시부모님은 한 명을 특별하게 대하기 시작하면 상대적으로 누군가가 덜 특별해지는 것을 막으려 하신 것 같았다. 철없이 시부모님이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하시는 게 아니냐며 남편에게 불평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시부모님은 두 자녀의 아내들과 그의 자녀들에게 평등한 대우를 해주고 어느 한 명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려 하신 것 같다.
아이들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 엄마가 될 때 보육교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랐었다. 그리고 처음 엄마 없이 긴 하루를 어린이 집에서 보낼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에 내 아이가 조금 더 ‘관심’을 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때마다 선생님들은 ‘모두가 다 똑같이’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을 대화중에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 제 아이를 잘 부탁합니다.
라는 말에 내 아이에게 ‘더욱더’ 관심을 써주세요 라는 뜻을 보태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의 생일파티를 하는 것도 정해진 정도에서 해야 한다. 보통 같은 반 아이들을 ‘모두’(빠지는 아이 없이) 집으로 초대해서 약간의 다과와 케이크를 오전에 두 시간 정도로만 한다. 어느 한 명이 너무 도드라지거나 특별함을 느낄 수 있거나 반대로 누군가가 소외되고나 가려지는 환경을 막고 조절한다. 집에 초대하지 않고 유치원으로 다과를 가져와도 좋지만 너무 과하게 하는 것은 금물이다. 치우치지 않고 모두가 골고루 관심을 받아야 한다.
나도 모르게 나와 나의 아이들이 ‘그래도 조금 더 ‘특별’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나 보다. 나의 특별함이 ‘보통’이 되는 것이 그렇게 탐탁지만은 않았다.
덴마크의 이런 ‘평등한’ 환경에서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 칭찬을 많이 해주고 ‘잘한다’라고 자신감을 길러주는 동시에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위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가르치는 방법은 없을까? 남편과 ‘얀테의 법칙’ ‘칭찬하는 방법’ ‘ 자존감’ ‘평등사상’등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니 이곳에서 칭찬을 하는 방법에는 조금은 다른 점이 있는 것 같다.
좋은 ‘결과’에 집중된 칭찬이 아닌 ‘노력’에 대한 칭찬을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한다. 칭찬을 들으면 우리는 더욱 노력할 힘을 얻고 칭찬을 받으려 더욱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가 무엇을 잘했을 때 반사적으로 칭찬을 하는 것보다 무엇을 칭찬할지 생각하고 칭찬한다.
이곳에서는 ‘노력을 하지 않고 성취한 것’이나 ‘타고난 것’ ‘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 칭찬을 잘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외모’나 ‘지능’에 대해 직접적으로 칭찬을 하거나 코멘트를 해서 그게 ‘칭찬받을 일’로 생각하지 않도록 한다.
다른 엄마들과 아이들을 만나면 그들은 누가 ‘외모가 뛰어나다든지’ ‘얼굴 천재’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어 본적이었다. 아이들이 아무리 귀엽고 예쁘더라도 “ Hun er sød” “ Hun er fin”이라는 ‘스위트 하다’ ‘귀엽다’ ‘소중하다’라는 정도로만 표현을 한다. ‘누구를 닮았다’. 얼굴의 한 부분을 가리켜 ‘콧날이 오똑하다’ ‘눈이 크다’라는 외모 코멘트는 거의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들이 이런 말을 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것은 아낌없이 칭찬한다. 노력을 칭찬받은 아이는 결과에만 연연하지 않게 되며 다른 일에도 더욱 노력하고 과정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
뛰어난 능력(Special abilities)을 자신의 가치(Self-Worth)와 연결시키지 않는다.
사람은 각자 다른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내 아이가 학업에 있어 뛰어난 능력이 있거나 운동에 재능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치 자체가 더욱 높게 평가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친다. 뛰어난 능력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 능력이 그 사람의 가치와 동일시되어 균형을 잃지 않도록 가르친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나 능력이 뛰어난 아이이지만 그 자체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났다’ 거나 ‘더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예를 들어 이곳에서는 변호사나 의사 등은 그 사람이 그 일을 해낼 능력이 있고 노력을 해서 된 것이지 그 자체만으로 그 사람들이 더욱 뛰어난 사람이 되거나 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 중요한 직업’이 있고 ‘덜 중요한 직업’도 없다. 나에겐 생각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런 일들이 이곳에서는 일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관찰되는 게 참 신기할 정도다.
뛰어난 능력에 칭찬을 하되 콘텍스트(Context)를 설명해 준다.
잘하는 게 있고 능력이 뛰어나다면 칭찬을 한다. “Du er dygtig” (잘한다, 능력이 뛰어나다). 그 연령대에 맞게 아이가 잘하는 게 있고 뛰어나다면 ‘잘한다’라는 말로 칭찬한다. ‘잘한다’ ‘뛰어나다’ 그래서 너는 그냥 ‘뛰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잘한다’하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그 콘텍스트를 가르친다. 잘하는 게 있다는 것은 그 분야에서 일을 찾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인이고 무엇을 잘한다면 그 능력을 ‘Capitalize’(그것으로 돈을 벌다, 밥벌이하다)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덴마크에서는 적어도 ‘직위’나 ‘자리’를 차는 것이 그 사람이 가치가 더 높은 사람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막는 것 같다.
모든 일이 잘 풀릴 때 나는 자존감이 참 높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힘들고 잘한다는 주위의 칭찬과 피드백이 없을 때 나의 자존감은 참 쉽게 바닥을 보인다. 아이들이 세상을 살며 힘든 일을 겪고 쓰러지고 지쳤을 때 스스로 자신이 ‘곧 일어날 것이고’ ‘나는 여전히 가치가 있다’라는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의 힘을 길러주고 싶다. 누군가가 ‘잘한다’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 너는 ‘특별해’라고 굳이 옆에서 속삭여 주지 않아도 ‘나는 할 수 있고’ ‘나는 자체만으로도 특별하다’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런 자존감을 길러주고 싶다.
특별함은 ‘더 나음’이 아니라 존재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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