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다른 이름들
우리는 모두 행복한 삶을 꿈꾼다.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우리는 그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찾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운이 좋아 행복한 삶을 찾을 수도 있지만 평생을 살아봐도 그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
전 세계 나라를 통틀어 그래도 행복을 말하자면 북유럽 나라들은 빠지질 않는다. 주관적인 행복의 기준도 있지만 누군가가 객관적 지표로 행복에 대한 점수를 산출해 매년 순위를 매긴다. 그 기준들을 보면 주관적인 행복이라는 정의를 객관적으로 숫자를 매기는 것에 의의를 제기할 수 있겠지만 삶의 질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등은 개인의 행복에도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높은 GDP, 경제적 여유, 안정된 정치제도, 잘 돌아가는 복지시스템도 이에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 일까?
이곳에 사는 햇수가 늘어나면서 그 행복이라는 게 무엇인지, 행복의 비밀까지는 아니지만 이곳 사람들이 말하는 ‘꽤 만족하는 삶’에 대해 알고 싶어 진다. 막상 덴마크 사람들에게 행복하냐는 질문을 하면 ‘정말 행복해서 미치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보는 많은 사람들은 ‘불행하진 않으며, 꽤 만족한다’라고 말한다.
한국사람으로 이곳의 행복을 대하니 내가 과연 이들의 ‘만족하는 삶’에 나는 ‘만족’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는 사회학자도 통계학자도 아니고 행복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한국사람으로 이곳에 살아보니 행복이 내가 생각해 온 것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낼지는 모른다. 몇 년 더 아니면 남은 평생이 될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말하는 행복한 삶을 좀 더 이해할 필요가 나에겐 있다.
내가 보는 덴마크는 양팔저울을 가지고 있는 나라처럼 보인다. 두 개의 저울 위 무게가 항상 같도록 재는 양팔저울. 목표는 무엇인가 한 가지를 아니면 여러 개를 쫒아가며 숨 가쁘게 달려 그것을 잡아 성취하기보다는 그저 이 저울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균형을 맞추어 무게 중심을 지켜내는 것이다. 밸런스(Balance)를 맞추고 또 맞춘다. 그래서 어디를 향해 바쁘게 달리지는 않기게 자칫 지루하고 멈춰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이곳 사람들은 선택과 결정을 한다. 밸런스가 깨지는 너무 무거운 것은 다듬어 작게 만들고 너무 작아 무게감이 없다면 다른 쪽의 저울의 것을 가져다 무게를 더한다. 그러한 이유로 이곳의 삶은 내가 핏줄을 세워가며 침을 튈 정도로 확실히 자랑할게 조금은 적어 보이고 육안으로 관찰이 잘 안될 때도 많다.
그들의 밸런스를 위한 선택은 이런 것 들이다.
덴마크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불편하다. 돈만 주면 쉽게 될 수 있는 것이 여기서는 안 되는 게 많다. 나의 편함과 편리함은 무시되는 일이 다반사다. 편리한 ‘서비스’들은 이것에서는 무조건 긍정적으로 평가되진 않는다. 날씨가 좋은 날엔 자전거 타는 게 ‘로맨틱’하다. 하지만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맞바람 맞으며 시속 0 km로 달려보면 참 이게 행복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건강에도 좋고 환경에도 좋으니 불편한 것은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 이곳에서는 맞는 얘기다. 차 값은 또 왜 이렇게 비싼가. 자동차 자체 값에 취득세 180%가 붙어 자동차 하나 굴리기가 쉽지 않다. 불편하기 짝이 없다. 외식값은 또 왜 이렇게 비싼 것인지. 외식 한번 나가려면 특별한 날이든지 아니면 그래도 외식이 하고 싶다면 한 달 가계부를 확인하고 눈 딱 감고 가야 한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산재 보험료, 삶의 질을 높이는 휴가비, 그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사는 최저의 인건비를 계산하면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서비스’는 낮을 수가 없게 된다. 잘 들여다보면 이런 ‘서비스’들의 가격이 다 높게 책정되어 있다. 편리한 것은 우선순위가 아닐 때가 많고 많은 경우 포기된다. 자전거 타는 게 불편하지만 건강과 환경이라는 것에 균형을 잡고, 외식은 비싸지만 집밥으로 건강한 식사를 하는 게 ‘휘게’스럽고 아이의 생일 케이크는 그냥 사면 일도 적지만 직접 엄마 아빠의 손으로 만들어 주는 것에 가치를 더 둔다. 행복이란 편함과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삶은 아닌 것 같다.
다른 사람이 특별대우를 받는 게 싫은가? 공평하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포기할 게 있다. 나도 남에게 특별한 대접을 바라지 말아야 한다. 처음엔 평등사상, 얀테의 법칙이 참 매력적이고 이상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개념들을 나의 일상에 적용하니 내가 특별하지 않는 것 같아 약간 서운하다. 신기하다. 나를 높게 인정하고 조금은 남보다 잘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쏠쏠한 재미가 사라진 느낌이다. 나도 모르게 바라 왔던 나에 대한 특별대우를 사람들이 안 해주니 받을 것을 못 받은 것처럼 개운치가 않다. 치켜세워주고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인증하려는 것이 피곤하다 생각했는데 막상 평등한 대우를 받으니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라 별로다. 평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나보다 잘난 사람이나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의 잘난 척이 싫었던 것인지 그것을 나도 하고 싶어 했던 건 아닌지...내가 진정 평등하게 대우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생각해볼 일이다. 경쟁에서 이겨서 누군가의 위나 아래로 가야 하지 않아도 되는 평등이 행복이라 한다면 조금은 나 자신이 특별하다는 자부심도 내려놓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 가족이나 지인이 이곳을 방문하면 심심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한다. 쇼핑몰과 레스토랑들은 일찍 문을 닫는다. 이곳에는 상점이 개장시간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어 그 시간을 초과하거나 공휴일에 문을 여는 것을 제한하는 루케로운(Lukkeloven- 덴마크 소매 법, 개정된 법에는 많이 느슨해졌지만) 있다. 그 시간 넘게 문을 열면 법을 어기게 된다. 재밌고, 신나면 행복한 삶이 될까? 그런 익사이팅한 삶을 산다는 것은 재미와 흥분을 가져다 줄 누군가의 시간이 희생되어야 한다. 긴 노동시간으로 그 시간에 일할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 할 저녁시간, 어느 아빠의 자신의 아이들과 놀아 줄 플레이 타임을 희생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덜 재미있어도 그냥 일찍 문 닫고 집에 가서 가족이랑 시간을 보내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희생하지 않고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고 여유로운 재미들도 시간을 채운다. 너무 재미있는 것도 매일 하면 재미가 사라진다. 소진되는 재미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쉼이 필요한 마음에게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균형을 잡고 오래가는 법이라 생각한다.
열정이라는 말에는 에너지가 있고 긍정의 의미가 담겨 있다. 무엇인가를 열정적으로 해서 나쁠 게 있을까? 하지만 덴마크에서는 그 열정을 불사르지 말고 적당히 해야 할 때도 많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 열심을 다해 승진을 하고 인정을 받고 높은 직책에 오르는 열정적인 삶을 꿈꾸는가?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곳에서 모든 사람이 승진을 하기 위해 열정을 다하지는 않는다. 승진을 한다고 해도 연봉이 올랐다고 하더라도 소득세에 붙는 누진세 적용으로 세금도 함께 올라간다. 다른 사람과 받는 돈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다는것이다. 승진을 했다는 것은 ‘위로 올라갔다’라는 의미보다는 책임(Responsibilities)이 더 늘어났다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을 관리(manage)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다. 리더십은 모든 사람이 다 가진 게 아니며 자신의 자질과 성향이 맞을 때 하는 선택이지 단순히 연봉 상승의 도구는 아니다. 직책에 따른 책임과 의무의 양, 거기에 쓰는 시간이 삶의 균형을 깬다면 굳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노력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덴마크에서 경쟁은 끊임없이 제3자나 아니면 공동의 이익을 대변하는 누군가에 의해 컨트롤되어야 하고 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경쟁을 부추기는 게 아니라 반대로 경쟁을 피하는 방법들을 찾는다. 1살 어린이집을 시작하면서부터 학교 과정을 지나고 사회에서 ‘경쟁’은 ‘열정’이라는 말로 둔갑되지 않고 ‘좋은 가치’로 취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덜 열정적이어도 괜찮다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보는 덴마크는 균형을 깨트리는 익스트림을 싫어한다. 중도와 밸런스를 목숨처럼 아낀다. 밸런스가 무너지는 삶은 불행함 삶을 의미한다. 남자와 여자 성에 있어서도 밸런스를 맞추어 비슷한 양의 파워를 소유하고, 많이 가진 자와 많이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는 최소화하며, 소수의 권리도 대다수에 의해 점령당하지 않아야 하며, ‘나’와 ‘너’의 사이도 위치에 따라 쉽게 변동하지 않고 ‘똑같아야’ 한다. 균형을 지켜내기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선택을 한다. 덜 편하고, 덜 자랑스럽고, 덜 재밌고, 덜 열정적인 것들을 선택하는 게 밸런스를 깨지 않고 오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행복’이라는 말은 무엇인가를 많이 성취하고 높이 뛰어 도달하는 게 아닌 끊임없이 흐트러진 균형을 수평으로 잡는 작업이다. 이것에 덴마크 사람들을 꽤 집착한다. 이곳에 날아든 행복의 파랑새는 눈을 자극하는 짙은 코발트블루가 아닌 차분한 그레이톤의 크기가 아담한 새 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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