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란 May 31. 2020

내 남편은 착한게 아니었다.

덴마크 아빠 파헤치기

한국어의 ‘착하다’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는것 같다. 선하고, 친절하고, 잘 웃고, 상냥하고, 바르고, 남을 배려하고, 잘 돕고, 매너가 좋고, 예의가 바르고 등등. 이 많은 뜻을 다 가질 필요는 없지만 몇가지를 포함하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덴마크 남편과 함께 한국에 가면 가족들이나 지인들은 남편을 보고 ‘착하다’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남편을 처음 보는 사람들도 이 외국인을 잘 모르지만 ‘착해 보인다’ 라고 말한다. 한국어를 많이 알아 듣지 못하는 남편은 많이 웃을 수 밖에 없고 타고난 차분한 성격에 ‘착한’이미지는 남편에게 꽤 잘 맞았다. 또한,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는 그 ‘착한’ 이미지 한 차원 더 완성시켜갔다. 아이의 기저귀를 자연스럽게 갈아주고 아내인 나를 가까이에서 도와주고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모습은 흔히 ‘북유럽 라테 파파 (Latte Papa-육아를 함께하며 유모차를 끌고 라테를 마시는 아빠를 가르치는 말)에 아주 적합했다. 나 또한 ‘남편이 ‘가정적이다’ ‘잘 도와 줘서 좋겠다’ ‘남편이 자상하다’라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 듣곤한다.



하지만 오랜시간 아이들을 키우며 함께 살다보니 남편의 ‘착함’ 이 그저 그의 성격에서 오는 ‘착함’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착함’은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기 보다는 다른것에서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가 자라 온 나라에서 내가 살아보고 이 곳 사람들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를 해 갈수록 그의 ‘착함’이 어디에서 형성되었고 ‘왜’그런지 이해가 되어간다.



남편의 ‘착함’에 대한 몇가지 해석



잘 도와 주는 ‘착한’ 남편이 아니라 그저 ‘기여’하고 있었을 뿐


덴마크에서 내가 참 많이 듣는 단어는 Bidrager (기여하다)라는 단어다. 영어로는 ‘Contribute’ 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서는 가족이나 사회에 ‘기여하는것’을 강조한다.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되고, 어떤 재능을 가졌고, 부의 정도가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사회나 공동체에 기여하는 개인의 책임감을 강조한다. 예상되는 기여도의 수치가 정해져 있진 않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았을때 기여 가능한 레벨을 상호적으로 정하면 된다. 그리고 기여할 ‘의지’가 있는게 중요한 것이며, 그 의지만 있다면 사회와 사람들은 기여할 수 있을때가지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한다.



가족은 가장 기본적인 단위의 공동체다. 남편도 아내도 이  공동체에 ‘기여하는’ 구성원이다. 남편은 그 기여도를 찾는 과정을 좀 더 세분화 시킨다. 기여도를 채우는 요소들은 경제적 활동, 가사활동, 육아, 사회활동 등의 상위 카테고리 분배 수준을 넘어 하위 카테고리까지 세세히 나눈다. 그리고 공평하게 적당히 분배 되었는지를 틈틈이 재평가한다. 그 기여도는 50:50 정확히 반반은 아니어도 괜찮다. 서로가 해야 할 책임과 기여 영역이 정해져 있진 않지만 내가 기여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어 가족을 위해 책임감 있게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육아는 아내를 ‘도와주는 일’이 아닌 서로 ‘기여할 부분을 찾는 일’이다. 여기서 ‘도와주는 것’과 ‘기여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한 사람이 부족하거나 그럴 능력이 없어서 ‘도움’을 주는 ‘평등’이 결여되 있다. 후자는 서로 평등한 관계에서 각자의 기여능력에 따라 기여하는것을 의미한다. 가족을 일구고 육아를 하는것은 부부 중 한명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게 아닌 평등한 상태에서 ‘기여하는 일’이다. 서로를 도와주는 것에도 의미도 있지만 가족 공동체의 최고 목표인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몫을 ‘기여’ 해야한다. 남편은 나를 잘 도와 주고 육아를 돕는 ‘착한’ 남편이라기 보다는 그저 ‘기여’하겠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몫을 하고 있는 것 뿐이었다.


그저 ‘기여’중인 북유럽 라테파파(latte papa)들


잘해주는 ‘착한’ 남편이 아니라 그저 ‘평등’하게만 대하고 있었을 뿐


남자가 나에게 ‘잘해주는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내가 싱글이었을 때 ‘백마 탄 왕자’가 나를 구해 주기를 기대했다. 그는 경제적 여유도 있었으면 좋겠고, 능력도 있는 스마트한 남자면 좋겠고, 마음씨도 착했으면 좋겠도 바라는 김에 우리 가족에게도 잘하는 남자와 결혼하길 바랬다. 그리고 사랑을 표현해주는 ‘로맨틱’함도 겸비한 사람을 만나길 바랬다.



안타깝게도 나의 덴마크 남편은 로맨티스트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그리고 이곳에서 보는 대부분의 덴마크 남자들이 그렇다. 차를 타고 내릴때 문을 열어 주거나 나를 위해 문을 일부러 잡아 주는 ‘매너 남’을 찾는가? 예쁜 보석이나 디자이너 브랜드 선물로 서프라이즈 해주길 원한다면

덴마크 남자는 후보에서 빼라고 말하고 싶다. 덴마크 남자들은 좀 더 ‘실용적’이며 여자의 마음을 얻기위해 선물을 사주는 로맨티스트와는 거리가 있다. 남녀 성평등이 강한이곳에서 덴마크 남자들은 여자를 대할때 ‘약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지 않는다. 데이트를 할때도 여자가 먼저 상대가 맘에 든다면 대쉬를 해도 되고 여자도 굳이 남자가 리드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여자는 ‘보호받을 대상’이기 보다는 ‘평등하게 대우 받을 존재’라는 생각이 강하다.



남편은 항상 나에게 ‘잘해주거나’ ‘나를 보호하려거나’ ‘나를 약한 존재’로 생각하기 보다는 ‘나도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꿈 꿀 수 있고,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내 자신을 자꾸 내 안에 가두고 나의 꿈을 줄인다. 나를 무엇인가 정해진 역할 속에 스스로를 가두곤 한다. ‘약해야 하는 여자이기 때문에’ ‘애가 있는 엄마이기 때문에’....등등의 이유로. 남편이 나에게 ‘잘해주는 방식’은 나를 평등하게 대하고 나의 능력을 믿어주고 나를 정해진 역할에 가두지 않는 것이다.



무조건 퍼주는 ‘착한’남편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합리적’ 선택을 한 것 뿐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을 보고 절을 한다.’ 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외국인과 결혼을 해도 성립될까? 내가 예쁜짓을 많이 하고 사랑 받을 일을 하면 남편이 우리집에도 잘할까?


덴마크에서는 우리가 흔히 쓰는 ‘용돈’이라는 개념이 없다(여기서 ‘용돈’은 한달 예산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돕고자 주는 ‘현금’을 의미한다.) 덴마크에서는 가까운 사람에게 도움을 줄때 ‘돈’을 주는 일이 드물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 인것 같다. 첫째로 많은 사람들이 ‘현금적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안정적인 사회 복지 시스템덕에 오늘 당장 음식을 사 먹을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은 드물다. 몸이 아픈 사람도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가는 사람도 없다. 병의 상태가 약하든 강하든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기에 돈이 없어 치료를 못받는 일은 없다 (치료의 질이나 치료 속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다른 의견이 있지만 말이다). 나도 시부모님이나 시댁 가족들에게 용돈을 드려 본 일이 없다. 두번째는 이곳 문화가 그렇다. 마음을 표현하는데 있어 보통 ‘현금’보다는 ‘선물’로 하는게 일반적이다. 이곳에는 ‘축의금’이나 ‘조의금’등도 볼 수 없다.



하지만 나의 한국가족의 상황과 문화는 다른점이 많기에 ‘현금’으로 도움을 주거나 마음을 표현해야 할때가 있다. 처음에는 나의 가족들이 힘들거나 경제적 도움이 필요하다면 서양인 남편이 얼마나 도울까 좀 궁금했다. 하지만 남편은 나의 가족을 돕는데 있어 ‘당연’하다고 말하며 ‘필요한 만큼’ 돕자고 한다.

남편은 또한 나의 막내 동생이 덴마크에서 공부를 끝마칠 수 있도록 우리집에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돕자고 했다. 덴마크에서 5년동안 동생과 함께 살았다. 남동생은 지금은 학교를 잘 졸업하고 독립하여 잘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고맙다는 표현을 할때면 남편은 우리 가족을 돕는것이 아내인 나를 도와는것이고, 내가 행복하면 자신이 속한 자신의 가족도 행복한 일이라며 그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한것 뿐이며 서로 도울 수 있다면 돕는게 당연하다고 한다. 그저 착한 마음에서 돕는 마음도 있겠지만 자신의 가족도 나의 가족도 우리가 함께 도와야 할 공동체이고 그것이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맞는일’ ‘합리적인 일’일 뿐 이라고 말한다.






함께 살아가며 인생이 던지는 커브볼을 함께 받으며 울고 웃고 살아간다. 함께 도전하고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가고자 노력한다. 남편은 단점도 있고 약점도 있지만 뚜렷한 몇가지 가치관이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착한’ 사람이 되고자 집중하기 보다는 자기가 중시 여기는 여러가지 가치관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 가고 있을뿐 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굳이 그에게 ‘잘해야만’ ‘예쁜짓을 해야만’하는 조건이 없으니 아내로서 마음이 편하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이전 01화 덴마크 사람 남편과 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