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썸머하우스
이웃들의 정원을 보니 정원에 잡초가 한가득이다. 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흔적이 역력하다. 매일 보이던 이웃들은 어디를 간 걸까? 시내에 나가면 사람들로 북적거리지만 그들은 현지인이 아닌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다. 현지 사람들은 대부분 여름휴가를 위해 집을 떠난다. 사람들로 붐비던 거리와 주변 상가는 비었고 한산하기만 하다. 깊은 조용함이 여름을 채운다.
그들은 어디로 떠났는가?
덴마크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2-3주의 여름휴가기간을 가진다. 다른 유럽 나라들로(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 여행을 떠나거나, 한동안 보지 못한 친인척들을 방문하고, 신나는 액티비티와 경험을 찾아 나서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이 기간을 만끽하기 위해 떠난다.
덴마크 달력을 보면 몇 번째 주인지를 알리는 Week Number가 있다. 일 년은 52주가 있고 이번 주를 가리키는 숫자가 있다. 사람들은 이 숫자를 달력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특히 여름이 되면 몇 번째 주에 휴가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다른 가족들과 계획을 세울 때 이 숫자들은 요긴하게 쓰인다. 보통 여름휴가는 해가 바뀌면서 이미 계획이 시작된다. 여름휴가의 의미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컸다.
몇 해의 여름이 지나고 나니 이곳 사람들이 여름을 어떻게 보내는지 알게 된다. 여름은 한해의 반을 보내고 ‘멈춤’과 ‘재충전’의 시간이며 잠시 일상에서 ‘분리’되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기간은 ‘충분’ 해야 한다.
이곳에서 여름이 되면 가장 많이 듣는 단어는 ‘썸머하우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바다로 둘러싸인 덴마크에는 해안선을 따라 썸머하우스들이 밀집되어 있다. 덴마크에는 약 200,000개의 썸머하우스가 있고 인구당 썸머하우스 소유 비율은 어느 나라보다 높다고 한다. 그만큼 덴마크 사람들에게 썸머하우스는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썸머하우스 보통의 ‘하우스(집)’보다는 가격이 낮다. 코펜하겐 외곽지역의 썸머하우스 가격은 대략 (백만~2백만 크로네) 정도다. 소유할 수도 있지만 렌트도 많이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썸머하우스가 있기 때문에 주변에 아는 사람들의 썸머하우스를 빌리기도 한다. 친구들과 시부모님들은 작은 썸머하우스를 가지는 꿈을 꾼다. 썸머하우스에 투자는 부동산 가격처럼 올라서 경제적 이윤을 남기는 게 아닌 ‘어떻게 잘 쉴까’에 대한 투자다.
제2의 집, 썸머하우스(Sommerhus- 여름+집)
럭셔리보다는 소박함
썸머하우스에 간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별장’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인가 고급스럽고 럭셔리할 거라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썸머하우스는 돈 많은 사람의 전유물도 별장의 개념도 아니다. 코펜하겐 인근의 인기가 많은 지역의 썸머하우스는 가격이 높기는 하지만 썸머하우스 자체에 럭셔리가 더해진 것은 아니다. 보통 썸머하우스는 휴식을 취하고 가족들이 머물기에 필요한 기본적 구조로만 지어진 목조건물이 많다. 썸머 하우스의 주요 기능성은 ‘럭셔리’ 보다는 ‘조용함’과 ‘쉼’에 대한 적합성이다.
일상을 떠나 쉼을 계획한다
이름이 썸머하우스이고 보통 여름에 많이 사용되지만 사계절 내내 사용이 가능하다. 썸머하우스느 ‘쉼’이 필요할 때 언제든 갈 수 있는 세컨드 홈 개념이다. 긴 연휴나 부활절 그리고 크리스마스 휴일, 주말에 갈 수 있는 ‘엑스트라’ 공간이다. ‘집’은 루틴이 있는 곳이다. 특히 덴마크인들의 집에서의 일상은 굉장히 계획적이고 타이트하게 돌아간다. 시간에 쫓기고 유동성이 적은 곳에서의 쉼은 ‘질적으로’ 높지 않다. 루틴에서 벗어나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가 없는 곳에 계획적으로 공간을 만들어 그곳으로 떠난다. 그곳에 썸머하우스다.
익숙함에서 벗어나 불편함에서 얻는 행복
루틴과 일상은 우리가 익숙함으로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게 목표라면 썸머하우스에서는 그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게 목표다. 이곳에는 일상에서 벗어나 불편할 수도 있는 다른 것을 한다. 벽난로의 땔감을 구해보고 익숙하지 않은 다른 환경에서 장을 본다. 인터넷도 잘 통하지 않는다. 같은 동선이 있는 일상, 익숙함에서 벗어나 다 갖추어지지 않은 ‘불편함’에서 작은 행복을 느낀다.
아무것도 안 하는 재미
처음 몇 해는 나에게 주어진 썸머하우스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심심해했던 적이 있다. 쉬는 법에 익숙하지 않아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썸머하우스에서는 보통 엄청난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삼시세끼 밥을 해 먹고 주변의 자연 속에서 해 질 녘 산책을 하고 가족들과 밀렸던 대화를 하고 조용한 방으로 돌아가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가끔 다운타운에 작은 콘서트가 열리고 주변에 워터파크나 놀이동산을 가기도 하지만 큰 행사나 ‘큰 재미’가 따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이곳에서 하는 이야기는 다운타운 베이커리에 사람들이 줄이 길었다는 것, 어느 베이커리 빵이 맛있다는 것, 생선가게에 연어가 얼마나 싱싱했는지, 바닷가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생겼다는 이럼 소소한 주제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이런 이야기 속에서 천천히 일상을 잊어가고 있었다.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나와 가족에게 쉼을 가지는 시간에서 소소한 것에 재미를 찾는 재미가 있다.
썸머하우스는 모두를 위한 곳
우리 시아버님은 은퇴를 하셨지만 일하셨던 근로자 협회가 몇 개의 썸머하우스를 소유하 있다. 그 협회의 멤버이면 썸머하우스를 회원 가격으로 렌트할 수 있다. 매년 썸머하우스를 렌트하신다. 은퇴를 하신 시부모님들은 작은 썸머하우스 꿈꾸신다. 하지만 나이가 든 사람들만 은퇴 후 조용한 삶을 위해 가는 것은 아니다. ‘쉼’은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대학교에 다니는 젊은 친구들도 썸머하우스에 그룹 프로젝트를 하고 휴식을 위해 가기도 한다.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은 가족들과 추억을 만들고 집중된 ‘퀄리티’ 시간을 보내기 위해 썸머하우스에 가기도 한다.
‘쉼’에 투자하는 사람들
맞다. 긴 휴가기간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경제적 여유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은 이 ‘쉼’에 투자하고 계획했다는 생각이 든다. 휴가기간이 있어 ‘쉼’을 가질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쉼’이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일을 제쳐두고서라도 ‘쉼’을 우선순에 둔 게 아닐까? 그리고 그 ‘쉼’을 위해 그 시간에 벌 수 있는 경제적 소득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돈이 많진 않지만 있는 돈 중에 부분을 떼어 썸머하우스나 작은 휴식을 위한 공간에 투자한다.
쉼, 그렇게 중요한가?
중간에 찍는 것은 쉼표. 마지막에 찍는 것은 마침표. ‘쉼’은 중간중간하는 것이며 그 쉼을 잘할수록 힘을 충전하고 더 멀리 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쉼을 계획할 수 있는 자유는 삶의 질을 높여준다. 배부른 소리일지 모른다. 그 시간이 아까울 수도 있고 여유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배분을 떼어놓고 쉼의 시간 고정해서 잠가놓는다. 누구도 건드리면 안되는냥 휴식의 시간을 죽을힘을 다해 지켜내려 노력한다. ‘쉼’이란 모든 것에 마지막에 오는 보상이 아니다. ‘쉼’이란 계획하지 않고 투자되지 않으면 그 시간은 주어지지 않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