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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나 Sep 12. 2024

기로

나는 지금 어느 방향으로 걸어갈 것인가.

 15년간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게 되었다.


 그전부터 이 거지 같은 회사를 왜 내가 다니고 있을까, 이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일적으로 성취감을 주지도 못하고, 돈으로 만족을 주지도 못하면서 편하고 쉽지도 않은 곳이었다. 그렇다고 이 일을 하지 않으면 가정 경제가 위태해지는가 하면 다행히도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불만만 가득한 채로 이 회사를 왜 다니고 있는 것일까. 나에게 가장 소중한 건 과연 이런 마음으로 이렇게 회사를 다니는 일상인 걸까.


그러던 차에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시작했다.


 날이면 날마다 퇴사를 하기 위해 용기를 모은다고 이야기하고 다니던 나는 오히려 우물쭈물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다. 내가 이 회사에 왜 입사하게 되었더라. 생각해 보니 나는 참 책이 좋아서 그거 하나 때문에 입사해더랬다. 그리고 우리 회사를 참 사랑했다. 희망퇴직을 고민하고 있는데 회사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다니. 남아야겠다 생각이 들다가도 어느 날엔 그래봤자 짝사랑인걸! 이런 짝사랑 따위 더 이상 하지 않겠어! 오락가락 하루에도 열두 번씩 아니 스물네 번씩 마음이 바뀌었고 좀 더 버티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지금까지는 거지 같았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겠지. 아냐 이제까지 거지 같았는데 달라지겠어? 감언이설에 넘어가면 안 된다고!! 하지만 이렇게 한번 대대적인 소용돌이를 견뎌내면 남은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분위기의 조직문화가 생길 수도 있잖아. 아니 그렇게 될 수 도 있다고 하자. 그때 네 나이는 몇 살인데? 젊은 열정을 이길 수 있을까? 어른의 지혜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결국 퇴직을 신청했다.


 내가 회사를 사랑하는 이유는 여전히 있었지만 더 이상 내가 하는 일에서는 그 이유를 찾기가 어려웠다. 남아야 하는 이유와 떠나는 이유를 적어보면서 떠나는 산더미 같이 쌓여 가는데 하나도 적을 수 없는 남아야 하는 이유도 마음이 아팠다. 엄청 열심히 회사를 다녔던 것 같은데 조금 허무하다.

 늙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나의 나이도 용기를 주었다. 10년 후에  아니 5년만 지나도 내 결정에 후회할 수 도 있겠지만 그때가 되었을 때 그런 마음이 들지 않게 지금 무어라도 시작해야 한다. 회사를 사랑한다고 매달 들어오는 작은 월급에 만족해야 하며 남게 된다면 10년 후, 15년 후에는 그땐 어쩔 것인가. 더 이상 회사에서 월급을 주지 않을 때  더 이상 사회에서 월급쟁이를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어쩔 것인가. 지금이라도 월급이 주는 익숙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월급을 받으면서 벗어나면 더 좋겠지만 때 마침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받겠다니 회사에 미련이 철철 남았지만 어쩌면 이건 기회였다. 바로 보물이 묻힌 땅바닥에서 자고 있으면서 그걸 모르고 전 세계를 돌다 돌아온 그 사람이 어리석은 게 아니다. 그 꿈을 꾼 사람은 단지 그 사람뿐이 아니었으며 기회가 왔을 때 알아보고 움직인 사람이 그 사람 밖에 없었던 것이다. 퇴직 이후의 삶에 진짜 보물이 있는지 없는지는 우선 움직여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결심을 하고 일주일.


 너무 많은 생각과 계획들이 머릿속에 머물며 어지럽게 떠다니고 있다. 이건 무슨 퇴직 라이프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많은 계획들로 벌써부터 피곤하다. 이렇게 계획을 세우는 게 맞는 걸까? 15년이나 일했으니 남편은 우선 쉬라고 한다. 그게 맞을까? 나는 쉬기 시작하면 끝없이 늘어질 만 같은데. 근데 아직 시작도 않은 계획들이 쌓이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나도 조금 지치는 기분이긴 하다.


 자잘 자잘하게 쌓아둔 계획은 치워버리고 크게 크게 가자.


 앞으로 좌충우돌. 몇 번째 라이프 시작하자.


20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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