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너무 떨려
지난겨울이던가. 영감님과 뮤지컬을 보러 가던 중이었지 아마. 재미있고 즐거운 기분이 가득한 와중에.
- 영감영감, 나랑 결혼한 거 어때?
-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 갑자기? (가족끼리 그런 질문하지 않는 게 불문율 아닌가)
- 그냥, 나는 영감님 덕분에 조기은퇴도 하고, 하고 싶던 운동도 하고, 좋은 공연도 보러 다니고 좋아서. 고마워.
희망퇴직을 한 이후로 경단녀, 혹은 전업 주부 타이틀을 달고 다니다가, 그날 이후로 나는 내 마음대로 조기 은퇴자라고 자칭하고 다녔다. 좋아. 일을 하면 좋겠지만 굳이 일을 못 구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지. 게다가 아직 손이 필요한 아이들도 있고. 물론 내가 손을 떼도 아이들이 알아서 자신의 몸 하나 챙길 만한 나이가 되었지만 급하게 손을 떼지 않아도 될 터이다.
-앞으로 무얼 할 거야? 은퇴하고 싶었는데 이미 했잖아.
-하하하 그렇지 은퇴는 했지.
-은퇴하고 싶은 일이 있어?
-글쎄, 음, 글을 쓰고 싶어.
한 3년쯤 후에는 다른 일을 구해서 월급 생활도 같이 하고.
입이 근질근질하다. 하필이면 브런치 작가 선정된 날 이런 걸 물어보다니. 됐다고 이야기할까. 아냐 아직 아직이야. 아직 낯간지럽고 부끄럽다. 그러게 앞으로 무얼 할까.
그날 밤에는 둘째와 같이 잠드는데 귓가에 속살거린다. 요즘 한창 하고 싶은 게 많아진 아이. 선생님도 되고 싶고, 아이돌도 되고 싶고, 미용사도 되고 싶고, 화가도 되고 싶고, 보석디자이너도 되고 싶고. 세상 모든 게 되고 싶은 아이.
-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
엄마는 이제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는데.
이룰 수 있을까.
엄마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