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이 뚜렷한 게 우리나라의 장점이라는 거
사실 세뇌당한 걸 수도 있대.
봄여름 가을겨울이 나누어져 있으니
철마다 옷을 사고 옷 정리를 해야 하잖아.
계절이 하나 거나 여름과 겨울이 비슷하면
훨씬 편할 텐데.
어디서 들은 내용을 그대로 읊는다.
책을 많이 읽고 신문을 많이 보고
여하튼 많이 보고 들을 때 빠지기 쉬운 함정.
내 생각인 양 옮기기.
그런데 영감은 듣더니 그럴듯하네 하다가.
하지만 발전한 도시들은 사계절이 뚜렷한 위도일 텐데.
그럼 사계절이 있다는 것은 장점이 맞는 게 아닐까.
오오. 그럴듯하다.
나는 또 이렇게 배운다.
많이 보고 읽는 걸 좋아해서 그게 내 생각인 양 말하고 다닐 때가 많다. 몰랐다 내가 그랬는 줄은. 그런데 나 말고도 내가 본 기사와 거의 흡사하게 혹은 책과 거의 비슷한 내용을 자기의 생각인 양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만약 먼저 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아는 것은 더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는 다르다. 사실을 공유할지 생각을 공유할지, 그냥 전달자가 될지 생산자가 될지. 어쩌면 어디선가 보고 본 사실을 잊고 내가 생산자인 척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도 조금은 있다.
내 머릿속에 내 생각이라고 가지고 있는 것들 중 대부분이 내 생각이 아니라 타인의 생각일 수 있다. 그렇다면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아니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모를 수도 있겠다. 이건 더 어릴 때부터 일어나는 일이라서 특히 부모 자식 사이에서는 더 아무렇지 않게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생각할 시간과 여유를 주고 있을까. 나와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면 단칼에 잘라버리지는 않았을까. 생각의 씨앗이 생기면 거기서 생각을 키워나가는 것은 오롯이 자기의 몫이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많이 보고 듣는 것은 과연 좋은 습관일까. 당연히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보고 듣기만 해서 외우는 게 아니라 충분히 생각하고 거기에 내 생각을 보태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가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 그 사람이 생각인지 그저 옮기고 있는 중인지 정도의 최소한의 판단이라도 할 수 있다. 다만 생각할 시간을 줄 것. 그다음 생각을 적어서 정리하기. 보고 듣고 그저 넘긴 건 오래도록 남지 않는다. 그냥 잔상만 흐릿하다.
나는 참 생각을 많이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그 생각들을 글로 옮기고 보니 생각을 많이 하고 있긴 하지만 보통 여러 가지에 대해 생각하는 게 아니고 하나의 생각에 자꾸 파고들고 다듬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처음엔 러프하게 생각을 떠올렸다가 다음에는 그 생각을 가지고 요리조리 보고 그다음엔 그 생각을 조각해서 정리해 본다. 그리고 어느 정도 모양이 갖춰지면 글로 적어보는데 막상 적고 보니 그동안 생각을 계속하고 있긴 했지만 내가 느꼈던 것만큼 다양한 주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래 생각하고 있어도 새로워지지 않고 마냥 생각의 크기가 커지는 것도 아니고 머릿속에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면서 놀았나 보다. 그래도 한참을 생각하다 글로 내뱉고 나면 머리가 반쯤은 텅 비어진 느낌. 그런데 우습게도 오히려 그렇게 텅 비어서 그런가 더 정리가 안되고 어수선한 기분이 든다. 촘촘히 무언가 들어차 있어야 더 정리된 듯 보이는 것처럼. 거기에 다시 무언가를 집어넣어 본다. 궁금한 게 많고 알고 싶은 게 많아서 내 생각을 붙이지 않더라도 우선 수집해 본다.
그러다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계속 파고든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는 안타깝게도 그게 일이었다. 출퇴근 길에도 집에 와서도 풀리지 않은 숙제가 있으면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해결이 되면 다른 문제를 가져와서 또 생각한다. 일을 다니고 있을 때 더 많은 생각과 더 다양한 것들을 접해보고 시도해 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일만 생각하는 건 직장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나에게는 크게 남지 않은 것 같다. 또 그만큼 회사일을 생활에 끌어들여 더 번잡하고 여유가 없었다. 아쉽긴 하지만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어서 어쩔 수 없다. 지금은 글쓰기에 꽂힌 것 같다. 하루에 한두 글이라도 계속 내 머릿속을 깨끗이 비워나가려고 한다. 하지만 다 비우기 전에 자꾸 뭐가 끼어든다. 여전히 혼란한 내 머릿속. 그렇지만 쓰고 있지 않을 때도 계속 머릿속으로 느는 써 내려가고 있다. 좋은 걸까. 현생을 살아야 하는데 자꾸 지금 이 시간을 살아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다 털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자기만의 생각을 가진 사람은 단단해 보인다. 그게 고집이나 선입견이어서는 안 되겠지. 고집이나 선입견인지 그걸 본인이 판단할 수 있을까. 고집쟁이나 아집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본인 스스로는 그럴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하고 있겠지. 나도 그런 게 아닐까.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단단하지만 말랑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3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