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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나 Oct 07. 2024

글을 읽는다는 건

화면의 글을 스크롤하다.

전자책이 처음 나왔을 때 너무 좋았다. 


 그 무거운 책들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돼. 자리를 차지하지도 않고 핸드폰을 들고 다니다가, 가볍게 읽을 수 있다니 너무 좋은데. 종이책은 금방 망하겠구나. 없어지겠어.


하지만 책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금은 전자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도무지 글을 읽는 맛이 나지 않는다. 종이에 적힌 글을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내려가는 게 화면으로는 잘 안된다. 스크롤 내려서 후다닥 넘어가는 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영상을 보는 것 같은 기분. 그런 매체에서 글을 잘 읽히게 하기 위해서는 행간도 크게 주고 가독성이 좋은 글자와, 띄어쓰기가 필요하다. 문단의 개념은 사라지고 한 번의 시선에 하나의 내용이 눈에 콕콕 박혀야 했다. 


 블로그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쓰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있다. ㅋㅋㅋ 나 이모티콘 같은 것들, 쉽게 쓰는 괄호들 없이 글을 쓰고 싶었다. 사실 그렇게 쓰는 게 읽기 편하고 재미있다. 스크롤 속도와 눈의 속도가 맞아서 놓치는 부분이 없기도 하고 놓쳐도 무방한 부분들도 많을 테지. 하지만 줄 글로 길게 길게 꾹꾹 눌러서 쓰고 싶었다.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로 글을 쓰고 싶었다. 흔하고 고전적인 작문 방법으로 글을 쓰고 싶었다. 단어 하나하나 줄 하나하나 꾹꾹 시선이 따라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글을 쓰지만. 

 

하지만 역시나 그런 건 잘 읽히지 않는다. 


막상 나도 그렇게 읽지를 못한다. 아직 종이로 인쇄되지 않아 내가 쓴 글을 내가 읽으면서도, 남의 글을 읽을 때도 스크롤과 터치가 먼저 나간다. 눈은 아직 채 읽지 못했는데 손이 먼저 움직인다. 노트북으로 브런치에 올라온 장문의 글을 본다. 정말 얼핏 보기만 해도 정성껏 쓴 글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면 그에 맞게 나도 찬찬히 스크롤을 내려가며 읽어야 하는데 이놈의 마우스는 휘리릭 하고 내려간다. 한 칸 한 칸 스크롤의 따닥 거림을 느끼면서 내려줘야 하는데 성질이 급해서 그런 건지 환경이 이래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종이로 읽었다면 좀 더 시간을 들여 읽어 내려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스크롤이 빨라질수록 키워드 되는 단어들만 눈에 박고 읽었다고 지나간다. 읽었는데 그 글을 쓴 사람이 의도한 바를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 수가 없다. 똑같은 글을 읽어도 읽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건 각양각색이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정말 키워드만 읽고 내용을 유추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휘리릭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주르륵 써 내려갔으면서 막상 주르륵 읽어 내려간다고 아쉬워하다니. 좀 이기적이기도 하다.


 너무 고리타분한가. 웹소설은 신나게 화면을 넘기며 보면서 여기선 왜 이렇게 엄격한 건데. 사실 화면으로 보게 되는 글이라면 생각할 여유 없이 확확 넘겨주는 게 인지상정. 그러면서 그렇지 않은 글쓰기를 지향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하다니. 이건 좀 욕심쟁이인데.


2024.09.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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