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래 Aug 25. 2024

국토종주길에서의 명절 인사

국토종주 10일 차, 상주 구간



설 아침이 밝았다. 방이 어두웠던 덕분에 푹 자고 개운하게 일어났다. 밍기적대며 나올 채비를 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셔터를 어떻게 열 지 몰라 두리번대고 있으니 사장님이 버튼 위치를 알려주셨다.



공기가 차가워서 코가 시리다. 넥워머를 코까지 올려 얼굴을 덮었다. 어제 발견하지 못한 의성 첫 번째 표지판을 만났다.


인스타그램에 국토종주 스토리를 올리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자꾸만 들떴다. 애독자다, 쿠키를 굽겠으니 열심히 올려 달라 등의 반응에 히죽히죽 웃으며 걸었다.



낙단보는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사실 전날 가려면 갈 수 있었는데, 제육볶음 먹고 힘이 다 빠져서 어차피 걸을 방향인 거 내일 걷자며 포기했다. 그래서 아침에 오게 됐다.



나에게 낙단보는 눈물이 배어 있는 이름이다. 10년 전, 그때도 열흘째에 낙단보에 도착했다.  무려 47km를 걸었던 날의 종착지였다.


그날 오후, 해가 질 것 같고 주변에 숙소도 없어서 쉬지도 않고 산길을 열심히 걸었는데도 세상이 어두워지고 말았다. 골반이 너무 아프고 몸도 힘든데 산속에서 쉬기가 무서워 계속 걸었다. 오늘 정말 쉬지도 않고 열심히 걸었는데, 그 노력의 결과가 계속된 고생이냐고, 거의 울부짖으며 낙단보에 도착했다. 도장을 찍는 순간 무너져내려 민박에 픽업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다.


가로등 하나 켜주지 않았던 어두운 낙단보가 그다지도원망스러웠는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산뜻한 기분으로 이곳에 다시 오게 되었다. 이제 낙단보는 내게 한 서린 곳이 아니라, 맛있는 제육볶음과 숙면을 선사해 준 곳으로 남게 되었다.



후다닥 도장을 찍고 다리를 건너준다. 따뜻한 아침밥이 간절했다.



다리를 건너며 상주시 입성! 경상북도에서도 북쪽에 있는 도시까지 걸어서 왔다. 열흘쯤 걸으니 이제 좀 종주하는 것이 실감이 난다.



아침을 먹기 위해 터미널이 있는 동네를 향해 걸었다.  멀리 고양이가 있길래 쳐다봤는데, 하악질을 했다. 상처받는다 나.



낙동면은 생각보다 작은 동네였다. 식당 자체도 그리 많지는 않았던 데다 설을 쇠느라 문을 닫은 가게도 많았다. 편의점에 들어가 간식 봉투를 채우고, 먹을 데가 여의치 않을 듯하여 삼각김밥도 하나 샀다.


문간에 아저씨 한 분이 쪼그려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는 백반집에 들어갔다. 인사를 했는데도 나오는 사람이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아까 그 아저씨가 손을 털며 들어오시더니 "아줌마가 잠깐 어디 갔어." 하신다.

 

자리를 잡고 앉아 된장찌개를 주문했더니 "찌개는 오늘 안 되는데..." 하시는 아저씨. 뭐가 되냐고 물으니 오늘은 한식 뷔페만 주문할 수 있다고 한다. 혼자서 한 상 거하게 먹기 민망했는데 잘됐다 싶어 뷔페를 먹겠다고 했다.



그제야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불을 켜고 뚜껑을 치우신다. 여기 국도 있고, 감자탕도 있고... 튜토리얼을 진행해 주시는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보니 반찬 가짓수가 꽤 된다. 이렇게나 반찬을 많이 하셨는데 손님이 나뿐이라니. 이후로 하루종일 손님이 가득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설에 떡국 한 그릇 먹을 수 있을까 했는데 아니 글쎄 이 푸짐한 밥상에 떡국까지 있다. 특이하게도 두부가 들어간 떡국을 한 국자 크게 떠서 먹었다. 따끈한 계란 프라이와 쌀밥, 각종 나물반찬까지 정말이지 행복한 아침 식사였다.


텔레비전에서는 <미스트롯> 경연이 한참이었다. 다들 일반인일 텐데 어쩜 저렇게 무대에서 능숙하게 춤추며 감동을 주는 노래를 할까, 감동의 연속이었다. 트로트 프로그램이라면 으레 그렇듯이 어린 참가자들도 있었는데, 괜히 내 또래 참가자들을 응원하게 됐다. 뭐랄까, '어린데 대단하네'보다 '이 나이에도 꿈을 좇으며 더 어린 친구들한테 밀리지 않네' 하고 생각하게 된달까.


곶감이 모티브인 듯한 상주시 캐릭터들. 귀엽다!
손으로 정성스레 쓴 '주금차지' 표지판과 바로 뒤에 주차한 트럭
예쁜 하늘색 처마


걷다가 시고르잡종 강아지를 발견했다. 목에 달랑거리는 방울까지 달았다. 어유 흰 빵이야 뭐야. 그으냥 깨물어주고 싶어서 이리 오라고 손짓하니 겁이 많은 건지 다가오다가 물러서고 다가오다가 물러서고를 반복해서 애가 탔다. 덥석 집어다가 예뻐해 줄 수는 없었기에...


영원한 밀당을 하는 와중에 뒤에서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미개인가보다 싶어 '네 강아지를 괴롭히는 게 아냐!' 해명할 생각으로 개집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그런데 세상에, 또 다른 아기 시고르잡종 탄 빵 에디션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귀여움이 한도를 초과하는 바람에 잠깐 어지러웠다. 누구라도 껴안고 귀여워해주고 싶었지만 둘 모두 낯을 가려서 나에게 다가와주지 않았다.


수십 분의 대치로 그나마 경계를 좀 푼 듯한 흰색 강아지가 용기를 냈는지 다가와 내 손가락을 핥아주었지만 그뿐이었다. 심지어 직후에 물을 할짝이기까지. 야, 나 손 닦았거든?! 이 이상의 진전은 없을 것 같아 아쉬움을 안고 일어섰다.



장사를 접은 듯한 주유소. '영업 중'에서 '중'만 잘라냄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그나저나 기름값 표시하는 가격표 숫자 어떻게 바꾸는 건가 했는데 그 비밀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다름 아닌 자석이었음.



한때는 북적거렸을 동네가 텅 비어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헛헛해졌다. 한국에 이런 동네가 얼마나 많을까?


교과서에서만 보던 '바르게 살자' 슬로건


이날은 자전거길보다 국도로 걸을 일이 많아서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컸다. 아무래도 도로가 고르게 닦여 있지 않다 보니 넘어지지 않으려면 집중해야 한다. 차가 많이 안 다니는 날이었지만 그래도 차가 오는지 귀를 기울이고 피해 주는 일이 쉽지만은 않기도 했다.


걷다 보면 가지가 새빨간 흰말채나무를 자주 보게 되는데, 한 가족이 길가에 차를 세워 놓고 이 나무를 베어서 가지를 모으고 있었다. 사연이 궁금해지는 장면이었다.



바람도 막아주고 의자도 제공해 주니, 시내버스 정류장은 단연 최고의 쉼터라고 할 수 있겠다. 보통은 작은 마을이다 보니 버스도 거의 오지 않는다. 이따금 지나가는 버스 기사님들이 경적을 울리는 일도 종종 있다. 이걸 놓치면 버스가 없는데 왜 안 타냐는 식으로. 정류장 안에 시간이 붙어 있는 경우는 미리 확인해서 이런 오해(?)를 방지한다.


무인점포가 늘고 있는 요즘이지만 건빵 무인판매는 좀 신선하다


국토종주를 하면서 무덤을 정말 많이 마주치게 된다. 메멘토 모리 여행이라고 한 적도 있는데, 정말 잊을만하면 보이는 게 무덤이다. 그런데 이 날 만난 무덤들은 좀 달랐다. 성묘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북적했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섬뜩했던 무덤들도 한때는 누군가의 가족이었고, 누군가에 의해 돌봐져오고 있었구나 싶어 갑자기 달라 보였다.



유독 햇살이 따뜻했던 날. 바람이 쌀쌀한데도 날씨에 기분이 좋아 자꾸만 히죽히죽 웃음이 났다.



작은 공중화장실이 있길래 들어갔는데 이상하리만치 잠이 쏟아졌다. 히터 때문에 따끈따끈했던 탓이었을까. 참지 못하고 벽에 기대 10분을 잤다. 하다 하다 화장실에서까지 자는군. 정말이지 여행하기에 특화된 특성이다.


자고 나와 걷기 시작했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 힘들었다. 걷는 데에 저항이 느껴질 정도의 강풍이었다. 누가 미는 것을 이겨내며 걷는 기분이었다. 아무


너무 낡아서 전후를 알아볼 수 없게 되어버린 사업 홍보 표지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찍은 10년 전 사진...


상주보에 도착했다. 인증부스 안에 사람이 있어서 나올 때까지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청년과 중년 사이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었는데, 도장을 찍더니 차에 올라타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차로 국토종주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담. 그들의 사정이려니 하고 내 수첩에 도장을 찍었다.



10년 전 상주보는 내게 '스쳐간 곳'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낙단보 민박에 도착하기 위해 정말 도장 찍고 사진 찍고 후다닥 출발했던 기억이다. 이날은 여유가 좀 있어서 사진도 마음껏 찍고 앉아서 쉬기도 했다. 남쪽으로 향하던 10년 전과 북쪽으로 가는 현재, 조형물의 방향이 다르다.



당시 와구와구 김밥을 먹었던 그때 바로 그 장소를 찾아냈다. 마침 가방에 아침에 산 삼각김밥도 있겠다, 배가 많이 고프진 않았지만 오로지 이 사진을 재현하기 위해 점심 식사를 했다. 장소와 구도는 잘 맞췄지만 좌우 방향에 약해서 정확히 재현해내지는 못했다. 흑흑.



잘 먹고 출발. 상주보를 건너오는데 어디선가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서 엿장수가 온 줄 알았다. 다리 아래 오토캠핑장이 있는데, 거기에서 여럿이 놀러 와서 셀프 노래방을 연 듯했다. 이 겨울에도 오토캠핑 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10년 전에는 오토캠핑장은커녕 오토캠핑이란 단어를 들어본 사람도 몇 없었을 것 같은데, 코로나로 고통받는 동안 트렌드가 많이 변했나 보다.



상주보를 넘어오니 크지도 작지도 않은 경천섬 관광단지가 시작되었다. 길거리 음식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뭘 먹어야 하나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와플을 하나 사 먹었다.


어떤 맛을 고를까 한참 고민하다가 지난 1월 휘닉스파크 스키장에서 미처 먹지 못한 와플이 생각나 블루베리를 선택했는데, 그곳의 와플처럼 보라색 블루베리 크림이 아니고 생크림에 블루베리 잼을 얹어 주는 와플이었다. 다 식은 와플이었지만 정말이지 맛있었다. 와플은 역시 고급 재료 아예 없는 기본이 최고.



어딜 가도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붐비던 경천대 관광지. 10년 전엔 이렇게 축제 분위기였던 곳을 지나온 기억이 없는데 명절은 명절인가 보다.



평소 같았으면 우회로를 탔겠지만, 이날만큼은 자전거길을 타기로 결심했다. 유독 10년 전 남겨둔 사진이 많았던 구간이다. 사진 재현을 위해 또다시 언덕을 오른다.


사진을 많이 찍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결국 찍은 사진만큼 기억하는 건 맞다고 생각한다. 10년 전 국토종주를 하며 많은 일을 겪고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풍경을 보았지만, 이제 와서 기억나는 건 기록해 둔 사건과 찍어둔 장면들뿐이다.


당시에 사진을 많이 찍어둔 덕분에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그때의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었다. 당시에 너무 힘들어서, 배터리가 없어서 찍지 못하고 흘려보낸 장면들이 있겠지만 괜찮다. 현재 이 여행으로 채워가면 되니까.



상주시 캐릭터가 리뉴얼되었는지 깜찍한 친구들이 바닥에 서서 영어로 말을 걸고 있었다. 말이 잘 안 이어지는 것 같긴 하지만... 귀여우니까 괜찮음. 볼 한번 꼬집어 준다.


영업을 하지 않는 것 같은 유원지. 눈썰매 타고 싶다.


'찾지 못하면 어쩌지' 노심초사하며 걷고 있는데 그때의 그 데크가 눈에 들어왔다. 데크의 모습, 어떻게 갔는지 등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지만 이 사진은 선명하게 남아 있으니. 덕분에 찾았다. 당시에는 뒤로 보이는 낙동강에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는데, 이제는 강이 얼기는커녕 졸졸 흐르고 있다. 최대한 비슷한 각도로 10년 전 사진을 재현해 보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많은 도움 주고 있는 나의 전속 포토그래퍼, 고릴라 삼각대.



아름다운 낙동강 풍경에 감탄하며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왔다. 영아지 창아지 마을 언덕을 넘을 때만큼 힘들지 않았다. 역시, 다리가 강해지고 있다.



할아버지댁에 가 있던 엄마가 영상통화를 걸었다. 설인데도 찾아뵙지 못해 아쉽고 죄송했는데 덕분에 친척들에게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작은 화면 안으로 할아버지, 둘째 이모와 이모부, 셋째 이모, 동생, 막내 이모들이 차례로 들어와서 내 근황을 물었다. 짧은 통화에서 많은 응원을 받았다.



낙동강길 종주는 이 지점에서 안동댐을 향해 가고, 국토종주는 여기에서 새재길을 향해 간다. 내일이면 국토종주 낙동강 길 구간이 끝난다. 부산에서 330km 가까이 걸어왔다. 난 해낼 거야, 못할 리가 없어... 하는 확신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상주상풍교 인증센터 도착! 이로써 하루에 인증 도장을 세 개나 찍게 되었다. 꽤나 긴 여정이었는데 그렇게까지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앞으로도 쭉 이렇게 무탈하게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종주길을 살짝 벗어나 미리 예약해 둔 민박으로 향했다. 낙단보 민박은 명절 연휴라 영업을 안 하시는데 상주상풍교 민박은 설 당일에도 문을 연다고 하시니 참 다행이었다. 시끄럽게 짖는 개를 뒤로하고 민박에 입성했다.

 


호쾌하신 민박 사장님으로부터 부산스러운 환대를 받았다. 빨랫감을 바구니에 넣어 내놓고 방에 들어갔다. 잠옷까지 내주셔서 옷을 남겨둘 필요가 없어 좋았다. 방에 '뿌리는 파스 금지, 붙이는 파스 가능'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스프레이 파스가 매캐하긴 하지요.


걸으면서 먹다가 남은 젤리를 마저 까먹고 있는데 나와서 식사하라는 사장님 목소리가 들린다. 따뜻한 흰쌀밥에 먹음직스러운 반찬과 찌개를 받아 들었다. '봄가을에는 손님이 많아서 반찬을 많이 하는데, 겨울에는 거의 오는 사람이 없어서 반찬이 많이 없어요...' 하시길래 충분히 진수성찬이라고 말씀드렸다.


식사하며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당신도 자전거 국토종주를 두 번이나 하셨다고 한다. 도보 종주자도 종종 보는데 여성 도보 종주자는 두 번째라고 하셨다. 2016년부터 장사를 하셨다고 하니 내가 첫 국토종주를 할 당시에는 이곳을 발견할 수 없었을 수밖에. 10년 전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지만 숙소는 어째 한 번도 재현한 적이 없다.


샤워하고 들어와 뜨끈하게 켜놓은 전기정판과 포근한 이불 사이로 파고들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이전 22화 설 만찬으로 한우를 먹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