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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삭 Oct 30. 2022

식후 초코파이의 참맛

사춘기 소녀의 간식창고 탈취 

어느 순간부터 먹을 것을 좋아하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2차 성징을 거치면서 말랐던 몸에 살이 붙었기 때문이다. 살이 쪘다고 해도 비만도 아니었고, 다소 통통한 정도였다. 돌아보면 호르몬으로 인한 당연한 변화였는데 나는 이 모든 게 ‘그놈의 먹성’ 탓으로 돌렸다. 내가 먹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다면 혹은 내가 양껏 먹는 모습을 본다면 다들 ‘저렇게 먹기를 좋아하니 저렇게 살찔 수밖에’라고 말할 것 같았다. 말하지도 않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사실인 양 확신하고, 유독 다른 사람 시선에 민감해진 건 이때부터였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엄마부터 떠오른다.     


타고나기를 마른 데다가 힘들면 입맛부터 떨어졌던 엄마는 힘들수록 더 먹는 아빠와 나, 그러니까 ‘신 씨 일가’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성별로 다른 외모와 먹기 기준을 강조했다. ‘자고로 남자는 살집이 좀 있고 퉁퉁해야 한다’며 아빠의 먹기는 그렇게 권장하면서도, ‘여자는 너무 덩치가 커 보이면 드세 보인다’며 여자의 먹기는 무척 제한했다. 페미니스트가 이 말을 들었다면 도저히 넘어갈 수 없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페미니즘을 몰랐으며 엄마는 외모로나 능력으로나 모든 면에 있어서 내가 닮고 싶은 완벽한 여성이었다. 특히 나는 내가 키도, 골격도 커서 여자치고는 ‘떡대’이기 때문에 살이 찌면 몸무게보다 뚱뚱해 보일 게 분명하단다.     


식후 초코파이를 몇 개씩이나 먹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먹을라치면 엄마는 내게 매서운 눈길과 함께 비수 같은 한 마디를 날렸다. “왜, 너도 먹게?”. 의문문이지만 내 의사를 묻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또 먹을 수 있니’라는 한탄이 섞인 감탄문이자 ‘한 입조차 안 된다’는 엄격한 명령문이었다. 나는 초코파이를 다시 내려놓으면서 ‘아니, 밥도 배불리 먹었는데 설마 내가 이걸 먹겠어요. 구경이나 하려 했지요’라는 듯한 표정으로 최대한 무심하게 내려놓았다.


사실 나는 수치스러웠다. 당시 십몇 년간 나의 자존감을 지탱해온 기둥이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이어서 엄청난 슬픔이 나를 덮쳤다. 그럭저럭 봐줄 만하고 예쁠 때도 있는 나는 사라지고, 뚱뚱한 몸으로 먹을 것만 탐하는 추녀가 된 듯했다. 나는 먹어도 또 먹고 싶고, 먹을 때 정말 행복한데,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이 모습이 ‘못나’ 보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당시 자주 만나던 허약한 사촌 언니에게는 다들 제발 좀 먹으라고 성화였는데, 어린 내 눈에는 그게 얼마나 눈꼴셨는지 모른다. 먹을 수 있는데 일부러 저러는 거 아니냐고 의심했던 나는 그녀가 조금 먹었을 뿐인데도 체했다고 하는 걸 보면서 저렇게 좁은 위, 짧은 입맛이 왜 내게는 없는지 내 신세를 한탄했다.       


먹기와 관련된 10대 소녀의 스트레스는 점차 높아졌다. 엄마로부터 먹지 말라는 면박을 당하면 나도 안 먹을 법한데, 힘들수록 더 먹는 유전자 때문이었을까 금지할수록 더하겠다는 사춘기 소녀의 오기였을까. 나는 엄마 몰래 맛있게 먹기로 했다. 잔소리를 듣지 않고 마음 놓고 먹으면 이 맛있는 음식이 더 맛있을 게 분명했다. 내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자리한 붙박이장 간식 창고에는 간식을 즐기는 아빠 덕에 대용량 간식들이 쌓여 있었다. 


문제는 간식 창고 문을 열 때마다 경첩 부분에서 소리가 나는 바람에, 이 행위가 엄마한테 발각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간식을 탈취하려다 미수에 그친 이후로 나는 탁월한 기술을 체득하게 된다. 호흡을 잠깐 멈춰 손끝에 온 신경을 집중시킨 후 왼손으로는 여닫이문의 고리를, 오른손으로는 경첩을 단단히 붙잡으면서 열기 각도를 벌여나가며 쥐도 새도 모르게 탈취에 성공한 것이다. 양궁이나 골프나 집중력을 요하는 스포츠를 업으로 했다면 진짜 잘했을 텐데, 나는 애먼 곳에서 재능을 확인하며 희열을 만끽하고 있었다.      


먹기는 나에게 생명 유지보다는 나를 위로하는 행위가 되었다.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더라도, 내가 먹고 싶은 그것만 눈앞에 있다면 나는 평화로워졌고 충만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속삭였다. ‘다른 건 필요 없어. 너만 있으면 돼. 넌 내게 전부야.’ 힘들어지면 스스로에게 무엇을 먹고 싶은지부터 물었고, 그걸 먹을 기대로 나를 도닥였다. 학교에 다녀온 후 저녁을 먹기 전에 한 조각만 먹으려 했던 다이제스티브를 한 통 다 먹어버렸을 때, 이렇게나 많이 먹을 수 있나 싶어서 놀라긴 했지만 심각하다고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과자로 배를 채울 수 없다는 걸 확인했고 밀가루로 입이 텁텁해졌으니 촉촉한 밥이 더 당긴다는 정도였다. 혼자 먹을 때 훨씬 많이 먹는다는 게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나중에 이런 식습관이 제어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상상하지 않았다.       


혼자 먹기의 즐거움에 빠진 나는 스무 살이 되자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지방에 있었던) 본가에서 독립하게 된다. 당장 누구의 간섭도 없이 마음껏 혼자 먹을 수 있다는 해방감에 홀가분했다. 같이 먹고 싶은 순간에도 혼자 먹어야 한다는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게다가 독립 직전에 나는 석 달 만에 6kg 정도를 빼서, 매우 마른 몸을 획득한 터였다. 대학에 들어가면 곧바로 연애하게 되는 줄 알고, 수능을 마치자마자 열심히 다이어트를 했기 때문이었다. ‘너 좀 먹어야겠다’를 제법 듣는 마른 몸이 되자 나를 보는 엄마의 눈길도 따뜻해진 듯했고, 나도 나를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았다. 본가로부터의 독립과 다이어트의 성공, 막연하게나마 바랐던 꿈이 현실로 펼쳐지자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일장춘몽일 뿐이었다. 이 두 가지는 그야말로 나를 환장하게 하는 짝꿍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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