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밥’만 먹는단 말이오?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지니고 살아야 하는 운명과도 같은 것들이 있다. 태어날 때 내가 이것을 평생 지니고 살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택하지 않았을 그것.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서 인생의 많은 시간을 이것을 억제하는 데 썼던 그것. 이것으로 인해 분명 기쁘고 즐거운 순간도 많았을 텐데 지금 내게는 오히려 어렵고 힘든 순간이 더 많이 떠오른다. 이를 ‘식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이 단어의 생김새부터가 심술궂고 발음 또한 둔탁해서 글자로 옮기지도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다. 차라리 ‘호식’으로 명하겠다. 사전에 따르면 ‘호식’은 남달리 음식을 좋아하여 잘 먹는 것을 뜻한다.
난 먹는 게 무척 좋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좋은 이유는 먹을 수 있어서고, 오늘 살아있어서 좋은 이유도 먹을 수 있어서다. 나에게 ‘상쾌한’ 아침이란 맛있는 음식으로 하루를 시작했을 때 쓰는 부사다. 건강해서 좋은 이유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다. 돈을 벌어서 좋은 이유는 조금 비싼 음식을 먹을 때 돈 걱정을 덜해도 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제아무리 잰 체한들 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각세포들의 반응에 울고 웃는 단순한 동물임이 자명하다.
엄마는 내가 식신인 아빠를 매우 닮았기 때문에 먹을 것을 무척 좋아하고, 잘 먹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본가에서는 매끼를 먹는 데 최소 한 시간 이상을 쓴다. 프랑스 출신 조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 집은 파리의 한가운데 있었다. 이런 식습관이 보편적이지 않음을 깨닫게 된 건 초등학교 첫 급식시간 때였다. 가짓수가 몇 개 되지 않는 식판 하나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소중한 한 끼를 후딱 해결하라니. 이렇게 무성의한 식사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나에게 식신의 피를 준 최초의 조상이 누구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할아버지 역시 장시간 식사를 즐기는 대식가였다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다. 이런 식신 종갓집에 시집온 엄마는 첫제사를 지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남편의 식사량은 이미 알았지만, 남편의 여자 형제까지, 그러니까 여자가(혹은 여자도) 저렇게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봤기 때문이다.
식신 종갓집에서 제일로 따라야 하는 법도는 전체적인 구성을 갖추되, 먹을 때는 그 순서를 지키는 것이다. 매 끼니는 그 자체로 빈틈없는 공격진을 갖춰 순식간에 미각을 점령하고 그걸 장시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국과 주요 반찬, 가지치기 반찬이 적절한 비율로 구성되어야 한다.
권투에서 정면으로 손을 뻗어 약하게 잽잽을 날리다가 강하게 원투 펀치를 날리는 것을 상상해보자. 달짝지근한 밑반찬류와 계절별로 현재 최고의 주가를 누리고 있는 나물류가 잽잽을 담당한다. 묵직한 원투 펀치는 고기, 생선 등의 시각적으로 배가 부른 요리류다. 그럴싸한 요리가 없다면 하다못해 계란 프라이 같은 부침류라도 자리를 채워야 한다.
요리류 옆의 호위병은 쌈채소류다. 장기에 장군의 바로 옆에 있는 두 알의 ‘사’인 셈이다. 쌈채소류와 더불어 국은 권투에서 잽잽원투 후에 이어지는 위빙이다. 위빙은 상반신을 좌우로 흔들면서 권투에서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는 기술이다. 위빙이 받쳐줘야 우리의 혀는 앞서 지나간 날카로운 공격들을 잊고 다시 새로운 ‘맛’들의 공격을 산뜻하게 받아낼 수 있다.
자, 여기까지가 전반전이다. 치열하게 여러 젓가락질이 오갔던 사투의 현장을 정리하고 후반전으로 넘어가자. 배가 너무 부르다고? 항상 기억하자. 늘 처음처럼, 우리는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작지만 강한 녀석들로 준비되어 있다(또는 준비해야 한다). 표면적으로 배를 더 불리지는 않지만 한입 한입들은 확실한 인상을 남길 것이다.
후반전 역시 한 종류로 가는 건 역시 섭섭하다. 물성으로 보면 마실 거리와 씹을 거리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두 가지는 동시에 가야 한다. 빵, 떡과 같이 부피감이 있고, 한입만으로도 대뇌와 발끝까지 강력한 당이 찌릿하고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마실 거리는 이 당들을 골고루 신체에 잔잔하게 분포될 수 있도록 살짝 진정시켜줄 수 있는 종류여야 한다. 따라서 너무 달달한 것보다는 오히려 쓴 커피나 차류가 어울리겠다.
이쯤에서 끝날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밥은 하루에 세 번밖에 먹을 수 없다. 어떻게 이대로 끝낸단 말인가. 제철 과일들로 이 식사의 아쉬움을 달랜다. 당연히 한 가지 이상이면 좋겠으나 그게 어렵다면 질 좋은 한 종류의 과일도 무방하다. 시트러스 향의 마지막 입가심은 모든 옷을 차려입은 후 손목에 한두 방울 뿌리는 몇 방울의 향수와도 같다. 이때 비로소 식사의 대미가 장식된다.
출퇴근이 자유로웠던 부모님이라 삼시 세 끼를 이렇게 여유롭게 먹었다. 결혼 후 남편이 우리 집의 식사에 참여하고서 가장 놀란 부분은 화려한 구성의 긴 식사 시간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먹고 치운 후 세 시간도 되지 않아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끼니를 준비하는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먹었는데 지금 또 먹겠다고?’라며 아연실색하는 그에게 나의 설렘을 차마 드러내지 못하고 겸연쩍은 척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학교가 멀어서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해야 했던 나를 깨운 것은 언제나 밥 냄새였다. 아침이라서 일어나기 싫다는 생각보다 이제는 아침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얼른 일어나고 싶었다. 군인도 아닌데, 간식 창고에서 몰래 챙겨 온 초코파이를 홀랑 까먹고 나면 모든 시름이 사라졌다. 한밤중에 홀로 옥상에서 뻥튀기 한 봉지를 해치운 뒤 올려다본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잊을 수 없다. 이렇게 먹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2차 성징을 겪으면서 심각한 위기에 부딪힌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바로 과자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