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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바삭 Oct 30. 2022

탕비실 간식 바구니 보고서

우렁각시의 깐깐한 기준

‘어제는 얼마나들 먹었나. 오늘은 어떤 무엇을 꺼내 놓을까.’ 학원 탕비실의 간식 바구니를 두고 나의 맛있는 고민이 끊이질 않는다. 얼마 전 시작한 학원에서 남편은 수업을, 나는 그 외 모든 것을 담당하고 있다. 오후 4시가 되면 하나둘 학원으로 학생들이 오기 시작하는데, 나는 그때 쓰레기 봉지를 추슬러 학원을 나선다. 그 모습을 보면 회사원 시절 일찍 출근했다가 마주쳤던 청소 아주머니가 생각이 난다. 언제나 사무실 바닥이 깨끗하고 쓰레기통이 비워져 있는데도 그 이유를 궁금해한 적이 없다가 그제야 “아, 저분이었구나” 하고 알았다.


학원에는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만 드나들 것 같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다. 그들이 할 일을 바로 돌입할 수 있도록 완벽한 상태로 만들어 놓지만, 모습이 드러내지 않고 심지어 그 존재를 궁금해하는 이도 없는 것 같아 다소 슬픈 우렁각시. 그게 나다. 학원비 안내 및 수납, 학부모 상담, 일정 조정, 청소, 비품 구매, 각종 관리비 챙기기 등 여러 일 중에서 비공식적으로 내가 가장 중점적으로 노력하는 분야가 간식 바구니 채우기다. 학원을 하겠다고 생각하자마자 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것은 탕비실이었다. 탕비실이야말로 그 공간의 꽃이 아닌가.


요즘 회사의 복지는 탕비실에 집결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판 회사원 토끼들이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물 마시러 가는 옹달샘이다. 뭔가에 몰두하다가 기지개를 켜면서 향하는 그곳에서 갈증을 해소하고 주린 배도 채운다. 탕비실에는 혹시 올 누군가를 위해 주인장이 미리 써놓은 ‘간식’이라는 편지가 있다. 그 편지를 받은 이들은 입도 즐거워지고 덩달아 에너지도 얻어간다. 간식 준비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요즘의 나를 보노라면, 내가 직접 그 편지를 그렇게 쓰고 싶어서 여태껏 다른 탕비실을 어슬렁거리지 않았나 싶다.


처음부터 간식 바구니에 집중한 건 아니다. 크지 않은 학원 공간에 간식 바구니까지 놓아도 될까 하고 의문을 품던 차에 어느 학부모로부터 자신이 들린 학원에서 학생을 위한 식빵과 잼이 준비된 걸 봤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간식 바구니는 위시리스트에서 투두리스트로 바뀌었다. 게다가 학원에 들일 정수기를 검색하는데, 정수기 설치 사진에서 정수기와 간식 바구니는 세트처럼 한 몸이었다. 간식 바구니는 사무실의 성격마다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다. 연배가 있거나 육체노동을 많이 하는 사무실에는 커피믹스와 티백, 물컵에 담긴 티스푼이, 젊고 정신노동 위주의 사무실에는 아기자기한 과자, 사탕류에 다양한 티백까지 가짓수에 집중해 있었다.


인터넷을 뒤져 간식 바구니를 다이소에서 고른 뒤에 본격적인 간식 선정에 들어갔다. 간식은 인상적인 맛이되, 공부에 집중하느라 한껏 구부러진 거북목을 탁 쳐서 바짝 세울 만한 당 수치를 지니고 있어야 했다. 또한 부스러기를 남기지 않고 한입에 쏙 입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 다. 의외로 한입에 강렬한 맛을 남기는 간식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연속적으로 쌓이는 맛으로 기억되는 봉지 과자에 대척점에 놓인 맛이다. “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라는 과자 CM이 탕비실에서는 울려 퍼져야 한다. 무심결에 먹었는데 ‘대체 뭐길래 이렇게 맛있지?’라고 구깃구깃해진 봉지를 다시 펴 보고, 하나 더 먹어도 되나 하고 바구니를 뒤적거리게 되는 맛이어야 한다.


나의 선택은 푹 삶은 두툼한 고기를 씹는 듯 우수한 식감의 오키오 젤리, 하나씩 먹다가 봉지째 털어 넣게 되는 호주의 국민 초코볼 몰티져스다. 공부 간식은 등산 간식과도 통하는 면이 있는데, 등산이 육체적 에너지 소진으로 인한 당 수치를 끌어올린다면, 공부는 정신적 에너지와 연관된다. 당 수치를 일시적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파이만 한 게 없으나, 파이의 가장 큰 단점은 부스러기다. 청소 담당자에게 부스러기는 척결 대상 1순위다. 몽쉘통통, 초코파이, 후레쉬베리, 카스타드 등의 파이류가 결코 간식 바구니에 들어올 수 없는 이유다. 파이류를 먹을 때 입에서 물이 나올 정도로 수분이 있지 않은 이상 부스러기를 흘리지 않고 먹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후렌치 파이를 떠올려보라. 봉지를 뜯을 때부터 1/3은 가루가 되어 봉지에, 1/3은 입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허공에 날아가고, 그 나머지만 입으로 들어간다. 잼마 저도 봉지에 들러붙어서 비닐봉지 재활용도 안 되는 난감한 간식이다, 셀프 뒤처리가 가능할 때만 먹어야 하는 파이다. 간식을 먹을 때 턱밑에 종 이를 받쳐서 부스러기 한 톨 흘리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처음부터 안 놔두는 게 상책이다. 간식 부스러기가 많으면 바닥은 물론이고 쓰레기통에 액체류랑 만나기라도 하면 쓰레기통을 물청소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추가된다. 그런 이유에서 작게 포장한 닥터유 단백질 바, 에너지바, 핑크 포장지가 예쁜 피코크 라이트 바를 골랐다. 한 가지로 채우면 재미없으니 오키오 젤리 포도맛, 복숭아 맛, 망고맛을 한 바퀴 돈 다음에는 마이쮸로도 넘어간다.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마이쮸가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사탕 버전이 외관으로도 우수하다.


간식 소믈리에로서 나만의 편의점을 운영한 이후로 인터넷 마트 장보기를 하는 재미가 생겼다. 생소한 간식이면 후기를 살펴보면서 맛을 상상해 보고, 좋은 제품은 들여와서 선보이고 싶은 마음에 설렘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건이 배송돼서 오면 보기 좋게 세팅하고, 다음 날 몇 개나 없어졌나 확인하고 반응을 기억해 둔다. 신상을 선보이기라도 한 날이면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오늘 간식 어땠어요”라는 질문부터 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오늘 수업 어땠어요?”라는 질문부터 먼저 하고 다음 질문을 던질 타이밍을 기다린다. 그러다가 “실장님(학원에서 나의 호칭)은 정말 좋은 분이시네요. 이 간식을 두시다니요”라는 말을 들으면 어깨가 으쓱해지고, 어떤 학생은 아예 싹쓸이해 와서 같이 듣는 친구한테 맛있다며 나눠 주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과자를 마치 내가 만든 것인 양 흐뭇해진다. 학생들이 이제는 은근히 뭐가 있나 하고 보러 가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입가가 싱글벙글해진다. 그 학생을 기억했다가 그 학생이 수업에 오는 날이면 한두 개 더 채워두기도 한다.


간식 바구니가 크지 않아서 들어갈 수 있는 종류는 3종류가 최대치다. 종류나 양을 더 늘리면 간식 바구니를 바꾸는 게 나을 정도이기 때문에, 이쯤에서 만족해야 한다. 정수기가 학원에 들어오고 나서 종이컵보다 먼저 간식 바구니를 구매한 나를 보고 남편은 경고했다. “한 번 채워 넣으면 계속 있어야 하는 거 알죠?” 간식을 찾는 이가 없고, 탕비실에 들어서기 전 맛있는 상상을 하지 못하게 될 날을 두려워할 뿐, 내가 그들을 찾지 않는 이상 나는 그들을 향해, 백설 공주가 있는 난쟁이 집 대문을 두드렸던 왕비처럼 “이거 한 입만 먹어 보시게. 맛이 참 좋다오”라고 끊임없이 그들을 향해 두드릴 것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 일주일 간식비로만  달에 3  정도가 드는데 학원이 커지고 간식 바구니도 커진다면 견과류, 초코스틱처럼 키가 크고 부피가  간식들도 들여올  있기를 꿈꾼다. 쇼케이스 냉장고를 둬서 음료와 아이스크림까지 선보일 날이 올지도 모르는  아닌가.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차라리 편의점을 열지,  학원에서  꿈을 펼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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