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돌아가는 한 마리의 연어처럼
예로부터 이제 막 아이를 낳은 산모와 아이는 감염 위험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멀리해야 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21일이 되기 전까지는 대문에 금줄을 쳐서 가족의 출입조차 삼갔다. 병원과 조리원에 있는 기간을 합치면 대략 이쯤이니, 오늘날까지도 삼칠일은 지켜지고 있는 셈이다. 삼칠일 새벽에는 신에게 흰밥과 미역국을 올리며, 이를 산모가 먹은 후에야 비로소 금줄을 내리고 이웃 사람들의 출입을 허용했다. 시아버지도 이때서야 아이를 처음 대면할 수 있었다.
삼칠일은 육체의 회복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회복하는 시기인데, 나에게는 입맛의 회복을 경험한 시기이기도 했다. 나는 코로나 19가 막 시작했을 때 임신해서 산부인과 출입 때도 발열체크를 하고, 출산 진통 때도 마스크를 껴야 했던 ‘코로나 19 산모’였다. 출산 후 조리원 출입 시 남편은 보건소 받은 코로나 검사 음성 진단서가 있어야 했다. 조리원에 있는 2주 동안은 바깥을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갑갑함이 밀려왔다. 조리원과 남편이 있는 집은 차로 1시간 가까이 걸려서 뭘 사달라고 마음대로 부탁하기도 쉽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사 달라고 하고 싶었던 것은 당연히 과자였다. 조리원에 들어오기 전에는 길가에 널린 게 편의점이요, 아무 곳이나 들어가면 입맛대로 먹고 싶은 과자를 골라오면 되었는데 난 자유롭지 않은 몸이었다.
첫 번째로 생각난 건 시장에서 파는 뻥튀기였다. 여기에서 ‘시장’이 중요하다. 기본 뻥튀기는 입에 들어가는 순간 사르르 녹아 없어질 수 있게 종잇장처럼 얇디얇아야 했다. 그런데 뻥튀기에 건강하게 먹어보겠다는 몇몇 시도들 때문에, 온갖 곡물을 섞이면서 뻥튀기의 두께는 두꺼워졌고 맛 또한 복잡해졌다. ‘시장’ 뻥튀기는 쌀가루에 뉴슈가만 들어 있어서 외양이나 맛이 매우 단순하다. 임신하고서 나는 뱃속의 새로운 생명체의 입맛에 따라 평소에는 입에도 대지 않던 내장, 곱창, 족발에다 매일 아침마다 오겹살을 구워 먹고 회사로 출근했다. 신기하게도 출산하고 나니 내 입맛으로 돌아왔는데, 그 첫 번째 신호가 뻥튀기를 먹고 싶다는 것이었다. 임신 기간에는 전에는 먹지 않았던 느끼한 버터 쿠키나 토핑이 잔뜩 올라간 무거운 쿠키를 즐겼다. 원래 좋아했던 밍밍한 과자는 쳐다보지도 않게 된 것이다.
임신 전 나에게 뻥튀기는 정기적으로 먹어줘야 하는 과자였는데, 임신 기간 내내 거의 먹지 않은 상황이었다. 조리원에 들어와서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나는 산부인과 검진 외출 기회를 얻었다. 오랜만에 나가는 외출에 신나기도 했지만, 더 기대된 건 뻥튀기를 살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근처 슈퍼를 다 뒤져보겠다는 생각으로 산부인과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눈에 보이는 슈퍼마다 들어갔지만 뻥튀기를 찾을 수 없었다. 뻥튀기는 특정 연령층만 찾는 옛날 과자가 되어버려서 어르신들이 계시는 주택가에 위치한 슈퍼에나 있을까 웬만한 가게에서는 찾기가 힘들다. 멀리 있는 남편에게 오일장을 굳이 찾아가서 내가 원하는 뻥튀기를 사 오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임신 중 입덧으로 뻥튀기를 찾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낳고 난 뒤라 그렇게까지 요구할 명분도 없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물품을 시키기 위해 당시 막 이용하기 시작한 쿠팡에 ‘뻥튀기’를 검색했다. 통밀, 오곡, 현미 등을 넣고 튀겨서 작고 통통한 뻥튀기만이 검색됐다. 아쉬운 대로 이거라도 주문하자 싶었다. 6개가 한 묶음이지만, 조리원에 2주간 있을 테니, 이틀에 한 봉지 꼴로 먹는다면 나쁘지 않다. 이틀을 기다리니 큰 박스에 담긴 뻥튀기가 도착했다. 조리원 총무가 택배를 전달해 줬는데, 혹여나 그게 뻥튀기인 걸 들킬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박스를 받아 들었다. 박스를 열고 뻥튀기를 보자니,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한 입 베어서 무니 “그래 이 맛이었지”라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조리원에서 산모들은 임신, 출산으로 고단했던 몸을 회복하고, 더불어 아이에게 좋은 젖을 공급하기 위해 고단백에 모든 영양소가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받는다. 간식도 두유, 과일 등으로 인스턴트식품은 당연히 금물이다. 뻥튀기를 꼭 먹어야 했던 나는 뻥튀기가 그나마 건강한 과자라고 자기 합리화도 시도했다. 출산을 핑계로 그간 불은 살도 빼야 해서 식사량을 조절했던 나는 뻥튀기를 먹기 위해 조리원에서의 식사량을 더 줄이기로 했다. 그렇게 세상에서 제일 건강한 식사를 후다닥 해치우고 조리원 방으로 돌아와 세상에서 제일 불량한 음식(이라고 당시에는 생각한) 뻥튀기 봉지를 열었다.
바삭바삭 소리와 함께 나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을 더듬더듬 찾아가는 한 마리의 연어가 됐다. 내 혀가 맛있다고 느꼈던 맛을 찾고,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조리원에 있으면 수시로 아이에게 수유를 하러 가는데, 뻥튀기를 먹다가 갈 때도 허다했다. 그때마다 이렇게 영양가 없는 음식을 아이에게 간접적으로 먹인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출산 후 원래의 나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뻥튀기는 포기할 수 없는 음식이었다.
뻥튀기 6봉지를 끝내고 나니 어느덧 조리원을 퇴소일이 되었다. 뻥튀기 덕분인지 조리원을 나설 때쯤의 나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또 다른 생명체를 품고만 있는 산모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한 생명체를 독립적으로 대할 수 있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